서울 영등포구 LG트윈타워 전경. LG화학 제공
서울 영등포구 LG트윈타워 전경. LG화학 제공
그간 대사질환 치료제를 중심으로 개발해 온 LG화학이 본격적으로 항암제 사업에 뛰어든다. 올해 키메릭항원수용체 T세포(CAR-T) 치료제와 항체신약 등 면역항암제 두 건이 임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2020년 손지웅 사장 부임 이후 ‘신약 개발 명가’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항암제로 혁신신약 노린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고형암(난소암)을 대상으로 한 CAR-T 치료제 임상을 위한 미국 식품의약국(FDA) 임상시험계획(IND)을 다음달 신청할 계획이다. CAR-T 치료제는 면역세포인 T세포가 암세포를 표적으로 삼도록 조작해 제거하는 면역항암제다. 한 번 투여로 대량의 암세포를 사멸할 수 있어 ‘꿈의 항암제’로 불린다.

이외에도 LG화학은 환자가 아닌 건강한 사람의 면역세포(NK세포)로 제조하는 동종 유래 CAR-NK 치료제 등 총 두 개의 세포치료제 후보물질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동종 유래 치료제는 대량생산이 가능해 수억원대의 세포치료제 단가를 크게 낮출 수 있다.

임상이 예정된 다른 면역항암제는 항체신약으로 알려졌다. 미국 머크(MSD)의 ‘키트루다’, BMS의 ‘옵디보’ 등 글로벌 블록버스터 항체신약은 대부분 면역관문물질 ‘PD-(L)1’을 표적으로 한다. 반면 LG화학이 준비 중인 물질은 ‘LILR’이라는 신규 표적을 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국 FDA에서 IND 승인을 받은 상태로 임상을 앞두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임상 중인 물질이 거의 없을 정도로 생소한 표적”이라며 “임상에 성공하면 계열 내 최초 신약(first-in-class)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약개발 대신 제네릭 선택한 LG


LG화학은 국내 신약 개발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다. 항생제 ‘팩티브’는 2003년 국내 최초로 FDA 승인을 받았다. FDA 품목허가를 받은 해외 국가가 10개국에 불과하던 시절이었다. 국산 신약 당뇨병 치료제 ‘제미글로’는 지난해 매출 1440억원을 기록했다. 연구원들이 마음껏 신약을 연구하도록 그룹이 전폭적으로 지원한 덕분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신약 개발 사업을 LG생명과학으로 분사한 2002년을 기점으로 급변했다. 팩티브의 글로벌 판권을 갖고 있던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권리를 반환하면서 매출로 연결 짓는 데에도 실패했다. 게다가 항응혈제, 항암제 등에 부작용이 발견돼 임상이 잇따라 중단되면서 자금난도 심화했다.

회사가 어려워지자 구조조정과 함께 연구개발(R&D) 전략이 대폭 수정됐다. 신약 개발보다 제네릭(복제약)이나 당장에 돈이 되는 당뇨 등 대사질환 치료제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진행하던 항암제 프로젝트는 전면 중단됐고 수십 명의 연구원이 퇴사했다. 나간 인재들은 리가켐바이오, 알테오젠, 와이바이오로직스 등 국내 굵직한 바이오 기업을 창업했다. LG화학이 ‘바이오 인재 사관학교’라는 오명이 붙은 배경이다.

20년 만에 면역항암제로 돌아오다


LG생명과학은 2017년 LG화학으로 흡수 합병됐고 2020년 손 사장이 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장(사장)으로 승진하며 새 국면을 맞이했다. 그는 서울대 의대 출신으로 아스트라제네카에서 항암제 신약 물질탐색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괄 등을 지낸 전문가다. 그는 오랫동안 항암제 신약 개발에 공을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LG화학은 항암신약 중심의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밝힌 바 있다. 신약 개발을 위한 R&D 예산도 2020년 1740억원에서 지난해 약 4000억원으로 크게 늘렸다. 2022년 인수한 미국 항암제 신약 개발사 아베오파마슈티컬스는 이를 위한 발판이다. LG화학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을 노리기 위해 자체 개발 중인 면역항암제를 아베오로 이관해 후기 임상 개발 및 미국 상업화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