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을 높이는 건 각 나라마다 정치적 핵심 과제이자, 경제적 성공의 중요한 지표가 돼 왔다. 대니얼 서스킨드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교수는 그의 신간 <성장: 역사와 평가>에서 경제 이념과 정책 목표, 불안의 근원으로서의 성장을 다룬다.
경제 발전 초기에는 부의 불평등 심화된다, 하지만… [WSJ 서평]
서스킨드는 "석기 시대 수렵 채집인과 18세기 사람 간 공통점이 많았을 것이라고 상상하긴 어렵다"면서도 "두 시대 사람 모두 지독한 생존 투쟁에 갇혀 경제적 정체를 겪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장기 침체는 1939년 이 용어를 처음 언급한 앨빈 한센 하버드대 교수나 2014년 세계 경제 장기정체론을 주장한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내놓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거의 모든 인류가 공통적으로 겪은 역사라는 설명이다. 토머스 맬서스의 연구에 뿌리를 둔 저자는 "새로운 번영의 결과 필연적으로 인구가 증가했기 때문에 그 어떤 개선도 일시적인 것일 뿐이었다"고 설명한다.

서스킨드는 경제 도약 원동력을 분석하는 경제학자의 생각 진화 과정을 따라간다. 먼저 1930년대와 1940년대 각각 건물, 기계, 도로 등과 같은 물리적 자본의 축적을 연구한 로이 해로드와 에브시 도마로부터 출발한다. 이어 1950년대 로버트 솔로우와 트레버 스완은 자본 축적이 수익률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성장은 설명할 수 없는 기술 향상으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폴 로머와 로버트 루카스는 1980년대 특별한 유형의 자본, 즉 지식이 축적되면 경제 전체에 걸쳐 수익률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조엘 모키르의 연구도 아이디어와 지식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동한다는 로머와 루카스의 견해를 뒷받침한다.

책은 성장의 정치적인 측면도 살핀다. 대공황 기간 동안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생산량을 측정한 사이먼 쿠즈네츠는 불평등이 국부에 따라 처음에는 증가했다가 감소하는 것을 나타내는 '쿠즈네츠 곡선'을 정립했다. 경제 발전 초기에는 부의 불평등이 심화하지만, 경제가 점점 성숙하고 안정될수록 빈부 격차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경제 발전 초기에는 부의 불평등 심화된다, 하지만… [WSJ 서평]
쿠즈네츠의 주장은 미국 정책 입안자들이 경제 성장을 우선 목표로 세우도록 유도했다. 저자에 따르면 냉전 시기엔 이러한 경향이 더욱 강화됐다. 미국과 소련 중 경제적으로 누가 얼마나 더 빨리 성장하는지가 냉전에서 누가 이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근거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성장이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간략히 언급한다. 저자는 벤자민 프리드먼이 <경제 성장의 도덕적 결과>(2005)를 통해 경제성장은 도덕적으로 유익한 사회·정치적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고 주장한 내용을 인용했다. 성장으로 인한 대다수 시민의 생활 수준 상승은 더 많은 기회와 다양성에 대한 관용, 사회적 이동성, 공정과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을 촉진한다는 설명이다.

성장과 관련한 정책 제언도 내놓는다. 서스킨드는 현재의 지적재산권 제도에 대해 "과거에 아이디어를 발견한 사람들을 지나치게 보호하면서 미래에 그 아이디어를 재사용하려는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대안으로 특정 분야에 한해 아이디어 창조자에게 특허 대신 상금을 제공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독점을 만들지 않으면서 혁신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자는 설명이다. 더불어 연구개발(R&D) 지출을 확대하고, 환경을 보호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혁신에 지출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만 서스킨드가 내놓는 정책 제안은 다소 모호하고 설명이 부족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이 책을 실질적인 정책 입문서보다는 경제 성장과 관련한 사상적 역사서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정리=신연수 기자

이 글은 WSJ에 실린 에드워드 글레이저의 서평(2024년 5월 13일) 'TheUrge To Grow'를 번역·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