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이라면서…통화량, 금융위기 이후 최대폭 증가 [강진규의 데이터너머]
국내 통화량이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9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한국은행이 긴축적 통화정책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통화량이 역대급으로 증가한 것이다. 한은은 "기저효과가 크다"며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한다"고 밝혔다.

통화량,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폭 증가

1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3월 통화 및 유동성'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 광의통화(M2)는 3994조원(평잔)으로 나타났다. 전월 대비 64조2000억원(1.6%) 증가해 4000조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

통화량이 한달 새 1.6% 증가한 것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지난 2009년 2월 2.0% 증가 이후 15년 1개월 만에 가장 큰 것이었다. 2020년 이후 코로나19로 유동성이 확대됐을 때도 한달새 이정도 통화량이 늘어난 적은 없었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4.9% 증가했다. 2월(3.4%)에 비해 증가폭이 커지면서 2022년 11월(5.7%)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수시입출식저축성 예금이 18조6000억원, 정기예적금이 12조9000억원, 머니마켓펀드(MMF)가 10조7000억원, 수익증권이 9조2000억원 증가했다. 반면 시장형 상품은 4조9000억원 줄었다. 경제주체별로 구분하면 가계 및 비영리단체(35조6000억원)와 기업(7조5000억원), 기타부문(9조8000억원) 등에서 모두 증가했다.


통화량 증가 3요소 : 경상 흑자·금리 인하 기대·대정부 대출

한은은 이날 이같은 통화량에 대해 "한동안 광의통화량 증가세가 둔화하다가 올해 들어 증가율이 상승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증가의 이유로는 경상수지 흑자 폭 확대,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 등을 꼽았다. 한은 관계자는 "3월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커지면서 통화량이 증가한 측면이 있다"며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나타나는 긍정적인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도 영향을 준 것으로 파악됐다. 수시입출식저축성예금에는 금리 인하가 단행되면 투자할 목적으로 대기자금이 쌓였고, 정기예적금은 예금 금리가 내려가기 전에 자금을 예치하려는 수요가 많아지면서 증가했다는 것이다. 3월 31일이 일요일이어서 결제일이 4월로 이연된 것도 수시입출식예금 증가의 요인으로 한은은 꼽았다.

한은의 대정부 대출금이 3월에 크게 늘어난 것도 통화량 증가의 이유로 지적됐다. 한은이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3월 35조2000억원을 일시 대출했다. 상환액까지 감안한 대출 잔액은 2월말 9조9000억원에서 3월말 32조5000억원으로 늘었다.

한은 관계자는 "정부의 일시 차입금 규모는 작년과 큰 차이가 없지만 통화량이 크게 줄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증가세가 나타나는 상황"이라며 "정부 대출금이 더해지면서 증가폭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한은 "긴축 여부 판단, 통화량 보다는 금리"

한은의 기준금리는 연 3.50%다. 한은에선 현재 금리 수준을 긴축적 수준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런 통화정책 환경에서도 통화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긴축적 환경이 맞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은은 이와 관련해 "통화량을 정책 목표로 삼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1998년 한은법이 개정되면서 통화량목표제는 폐지되고 물가안정목표제가 도입됐다. 한은이 물가안정을 위해 금리를 결정하면 이에 따라 장단기 금리가 변동하고, 금융기관이 여건 변화를 고려해 신용을 공급하면서 통화량이 결과적으로 확정되는 흐름이다.

금융상황의 긴축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선 통화량이라는 물량지표보다는 금리수준, 장단기금리차, 신용스프레드 등 가격지표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이같은 지표를 종합한 금융상황지수도 긴축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다. 0 이하면 긴축적인데, 현재 수준은 -1 부근에서 움직이고 있다.

4월 이후 추이에 대해선 한은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국내외 금융시장에 '언젠가는 피벗(금리 인하로의 정책 전환)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며 "금리 수준은 높지만 신용스프레드는 줄어드는 등 가격지표가 움직이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또 은행 등의 적극적인 대출태도가 기업대출 확대에 영향을 주는 등 민간부문을 중심으로 통화량 증가가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완화적인 환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조금씩 늦춰지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추이를 최소 1분기 정도는 더 지켜봐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