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재일교포의 처절한 삶, 사랑으로 이겨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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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이민진 <파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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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한일합방 이후 많은 조선인이 일본으로 건너가거나 끌려갔다. 1945년 일본이 우리 땅에서 떠났지만, 공산 정권이 들어선 북한이나 혼란을 겪다가 전쟁이 터진 남한으로 돌아오는 일은 쉽지 않았다.
세계적 화제작으로 떠오르다
두 번째 장편소설 <파친코>는 대학교 3학년 때인 1989년에 구상해 쓰고 고치기를 거듭했다. 2007년 일본계 미국인 남편이 도쿄로 발령 나 일본에서 지내며 조선계 일본인 수십 명을 인터뷰한 뒤 다시 썼다. 2017년에 <파친코>가 출간되자 75개 이상의 주요 해외 매체가 ‘올해의 책’에 이름을 올리면서 세계적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2022년 애플TV에서 드라마로 만들어 또다시 화제가 되었다.![[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재일교포의 처절한 삶, 사랑으로 이겨내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405/AA.36710607.1.jpg)
공부를 잘하는 노아는 와세다대학에 들어가지만, 출생의 비밀에 충격받아 가족과 인연을 끊는다. 공부에 흥미가 없던 모자수는 파친코에서 열심히 일해 인정받고, 떠돌던 노아도 파친코에서 일하게 된다. 파친코는 일본에서 밑바닥 일밖에 할 수 없는 재일교포가 돈과 권력과 신분 상승을 이룰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남한 여권을 갖고 사는 사람들
파친코 업체를 인수해 크게 성공한 모자수는 아들 솔로몬만큼은 자신과 다른 삶을 살기를 바라며 어릴 때부터 영어 공부를 시킨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에 진학한 솔로몬은 훌륭하게 성장해 일본 금융회사에 취직하지만 계략에 빠져 해고되고, 결국 아버지처럼 파친코에서 일하기로 결심한다.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어에 능통한 모자수에게는 일본 귀화라는 길이 있었고, 미국 유학까지 마친 솔로몬은 미국인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일본에서 태어나 남한 여권을 갖고 사는 사람들’로 남았다. 특별한 각오나 선조들의 당부 때문이 아닌, 부당한 일을 수없이 자행한 일본에 합류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친코>를 읽으면 고생하는 조선인보다 변하지 않는 일본인이 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4대에 걸쳐 단단히 뿌리내려도 조선인이라는 굴레로 끝내 차별하는 일본의 아집이 지금도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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