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대형 프로젝트가 십중팔구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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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설계자
벤트 플루비야·댄 가드너 지음
박영준 옮김 / 한국경제신문
416쪽|2만5000원
136개국 1만여개 프로젝트 중
계획대로 진행된 건 고작 8.5%
시작부터 하고 보는 게 큰 문제
프로젝트 실패를 막기 위해선
"천천히 생각하고 빠르게 행동"
美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건설 전에 볼트 숫자까지 추산
벤트 플루비야·댄 가드너 지음
박영준 옮김 / 한국경제신문
416쪽|2만5000원
136개국 1만여개 프로젝트 중
계획대로 진행된 건 고작 8.5%
시작부터 하고 보는 게 큰 문제
프로젝트 실패를 막기 위해선
"천천히 생각하고 빠르게 행동"
美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건설 전에 볼트 숫자까지 추산
지난해 군산 새만금에서 열린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는 부실한 행사 진행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참담한 심정을 안겼다. 모든 것이 안일했다. 날씨가 좋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는지 폭염, 폭우 대비책이 없었다. ‘플랜B’가 없어 조기 철수 후에도 혼란이 이어졌다.
동병상련으로 위안 삼을 만한 것이 있다면 세계적으로 대형 프로젝트가 ‘수렁’에 빠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프로젝트는 2008년 본격화됐다. 330억달러를 쏟아부어 2020년 1단계 구간을 개통하면 로스앤젤레스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2시30분 걸려 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비용은 걷잡을 수 없이 늘었고, 공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2030년 이후에나 1단계 공사가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어떻게 하면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을까. <프로젝트 설계자>는 이에 대한 답을 담은 책이다. 원제인 ‘How Big Things Get Done’이 더 직관적이다. 책을 쓴 벤트 플루비야는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다. 프로젝트 관리 분야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그는 언론인 출신인 댄 가드너와 함께 쓴 이 책에서 풍부한 사례를 통해 프로젝트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요인이 무엇인지 파헤친다.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 것은 예외가 아니다. “대형 프로젝트가 처음의 약속대로 수행되는 예는 대단히 드물다. 오히려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같은 사업이 평범한 쪽에 가깝다.” 저자는 136개국 20개 분야에서 이뤄진 약 1만6000개 프로젝트를 직접 살펴봤다. 비용과 일정 계획을 예정대로 달성한 경우는 8.5%뿐이었다. 여기에 기대 편익까지 충족한 프로젝트는 전체의 0.5%에 불과했다. 계획대로 되는 프로젝트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1991년 미국 보스턴 도심을 가르는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지하에 터널을 뚫는 ‘빅 딕’ 공사는 16년을 질질 끌었다. 당초 예산의 3배가 넘는 비용을 집어삼키며 도시 전체를 곤경에 몰아넣었다. 캐나다 정부가 주도한 총기 등록 관련 정보기술(IT) 프로젝트의 최종 비용은 예산의 590%였다. 2004년 지어진 스코틀랜드 국회의사당 건물도 완공이 3년 지연됐다. 공사 비용은 원래 예산의 978%에 달했다.
프로젝트가 대부분 지연된다면 더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한국에서도 박정희 시대에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대규모 프로젝트를 단기간에 성공시킨 사례가 있다. 그런 성공 사례들이 있다는 것은 저자도 인정한다. 하지만 아주 예외적인 경우다. 무작정 시작하고 보자는 것은 실패로 향하는 지름길이라고 책은 지적한다.
저자가 추천하는 방법은 “천천히 생각하고 빠르게 행동하라”다.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102층짜리 초고층 건물이다. 1930년 3월 17일 공사를 시작해 약 13개월 만인 1931년 5월 1일 문을 열었다. 설계를 맡은 건축가 윌리엄 램은 “아무리 사소한 세부 사항이라도 건설업자와 전문가들을 통해 철저히 분석했다”며 “공사 지연을 초래할 만한 문제는 사전에 조율하고 변경했다”고 말했다. 리벳과 볼트가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 몇 개의 창문이 설치될지, 대리석 블록은 몇 개가 들어가는지, 알루미늄·스테인리스강·시멘트·회반죽이 몇 t 필요한지도 사전에 정확히 파악돼 있었다.
일단 시작했으면 “빠르게 행동하라”고 한 데도 이유가 있다. 저자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기간을 ‘열린 창문’에 비유한다. 열려 있는 시간이 길수록 창문을 통해 뭔가 날아들 가능성도 커진다. 경기가 갑자기 나빠질 수도 있고,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이 돌 수도 있다. 홍수가 날 수도 있고, 영화라면 배우가 스캔들에 휘말릴 수도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 즉 ‘블랙스완’이 발생할 위험은 항상 존재하고, 이를 줄이려면 가능한 한 빨리 프로젝트를 끝내야 한다.
구체적인 전략도 제시한다. 계획을 짤 때 희망하는 미래의 모습을 그린 뒤 필요한 일을 역순으로 도출해보고, 거대한 프로젝트를 작은 크기의 모듈로 쪼개보라고 말한다.
프로젝트가 지연되거나 실패하는 또 다른 주요 원인은 정치다. 이 부분을 다루지 않은 것은 책의 약점이다. 그래도 책은 지금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내용을 다룬다. 정치인, 관료, 기업가, 하물며 개인적인 작은 프로젝트를 하는 일반 사람들에게도 유용한 책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동병상련으로 위안 삼을 만한 것이 있다면 세계적으로 대형 프로젝트가 ‘수렁’에 빠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프로젝트는 2008년 본격화됐다. 330억달러를 쏟아부어 2020년 1단계 구간을 개통하면 로스앤젤레스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2시30분 걸려 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비용은 걷잡을 수 없이 늘었고, 공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2030년 이후에나 1단계 공사가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어떻게 하면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을까. <프로젝트 설계자>는 이에 대한 답을 담은 책이다. 원제인 ‘How Big Things Get Done’이 더 직관적이다. 책을 쓴 벤트 플루비야는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다. 프로젝트 관리 분야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그는 언론인 출신인 댄 가드너와 함께 쓴 이 책에서 풍부한 사례를 통해 프로젝트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요인이 무엇인지 파헤친다.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 것은 예외가 아니다. “대형 프로젝트가 처음의 약속대로 수행되는 예는 대단히 드물다. 오히려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같은 사업이 평범한 쪽에 가깝다.” 저자는 136개국 20개 분야에서 이뤄진 약 1만6000개 프로젝트를 직접 살펴봤다. 비용과 일정 계획을 예정대로 달성한 경우는 8.5%뿐이었다. 여기에 기대 편익까지 충족한 프로젝트는 전체의 0.5%에 불과했다. 계획대로 되는 프로젝트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1991년 미국 보스턴 도심을 가르는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지하에 터널을 뚫는 ‘빅 딕’ 공사는 16년을 질질 끌었다. 당초 예산의 3배가 넘는 비용을 집어삼키며 도시 전체를 곤경에 몰아넣었다. 캐나다 정부가 주도한 총기 등록 관련 정보기술(IT) 프로젝트의 최종 비용은 예산의 590%였다. 2004년 지어진 스코틀랜드 국회의사당 건물도 완공이 3년 지연됐다. 공사 비용은 원래 예산의 978%에 달했다.
프로젝트가 대부분 지연된다면 더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한국에서도 박정희 시대에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대규모 프로젝트를 단기간에 성공시킨 사례가 있다. 그런 성공 사례들이 있다는 것은 저자도 인정한다. 하지만 아주 예외적인 경우다. 무작정 시작하고 보자는 것은 실패로 향하는 지름길이라고 책은 지적한다.
저자가 추천하는 방법은 “천천히 생각하고 빠르게 행동하라”다.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102층짜리 초고층 건물이다. 1930년 3월 17일 공사를 시작해 약 13개월 만인 1931년 5월 1일 문을 열었다. 설계를 맡은 건축가 윌리엄 램은 “아무리 사소한 세부 사항이라도 건설업자와 전문가들을 통해 철저히 분석했다”며 “공사 지연을 초래할 만한 문제는 사전에 조율하고 변경했다”고 말했다. 리벳과 볼트가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 몇 개의 창문이 설치될지, 대리석 블록은 몇 개가 들어가는지, 알루미늄·스테인리스강·시멘트·회반죽이 몇 t 필요한지도 사전에 정확히 파악돼 있었다.
일단 시작했으면 “빠르게 행동하라”고 한 데도 이유가 있다. 저자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기간을 ‘열린 창문’에 비유한다. 열려 있는 시간이 길수록 창문을 통해 뭔가 날아들 가능성도 커진다. 경기가 갑자기 나빠질 수도 있고,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이 돌 수도 있다. 홍수가 날 수도 있고, 영화라면 배우가 스캔들에 휘말릴 수도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 즉 ‘블랙스완’이 발생할 위험은 항상 존재하고, 이를 줄이려면 가능한 한 빨리 프로젝트를 끝내야 한다.
구체적인 전략도 제시한다. 계획을 짤 때 희망하는 미래의 모습을 그린 뒤 필요한 일을 역순으로 도출해보고, 거대한 프로젝트를 작은 크기의 모듈로 쪼개보라고 말한다.
프로젝트가 지연되거나 실패하는 또 다른 주요 원인은 정치다. 이 부분을 다루지 않은 것은 책의 약점이다. 그래도 책은 지금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내용을 다룬다. 정치인, 관료, 기업가, 하물며 개인적인 작은 프로젝트를 하는 일반 사람들에게도 유용한 책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