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세액공제 거래 규모 470억弗
친환경 사업 안해도 살 수 있어
구매자 30%가 석유·가스 기업
'석유 중개' 비톨, 1억弗어치 사
거래 플랫폼 개설…시장 급성장
블랙스톤, 3.5억弗 거래 중개도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세액공제 권리를 거래하는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고금리 등으로 자금 사정이 여의찮은 친환경 기술 기업들은 세액공제 권리를 판 돈으로 유동성을 확보하고, 구매자는 이를 사들여 세금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은행(IB), 사모펀드(PEF) 운용사뿐만 아니라 대기업들도 세액공제 권리 거래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제3자 판매도 허용
글로벌 투자자문사 에버코어ISI는 16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IRA를 통해 AMPC(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 크레디트)의 제3자 양도를 폭넓게 허용한 뒤 관련 시장이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에버코어ISI는 올해 시장에 풀릴 세액공제 권리 규모를 470억달러로 추산하고 2030년이면 1000억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2년 발효된 IRA는 그해 12월 31일부터 미국에서 생산 및 판매된 풍력·태양광, 배터리 등 부품 판매에 대한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다. 미국 내 친환경 첨단 기술 관련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됐다. 미국 정부는 IRA 이전에도 재생에너지 부문에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해당 권리를 사고팔 수 있게 했다. 다만 거래 대상이 재생에너지 개발 프로젝트에 ‘세액 투자 금융(tax equity financing)’으로 참여한 은행, 사모펀드 운용사 등에 국한됐다.
IRA는 세액공제 폭과 대상을 늘렸을 뿐만 아니라 친환경 프로젝트와 무관한 제3자에게도 세액공제 권리를 판매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고금리, 인플레이션 등으로 자금 사정이 열악해진 친환경 기술 산업 부문은 세액공제 권리를 할인된 가격에 판매함으로써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 정부의 세금 환급 시기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게 장점이다.
세금 부담을 덜고 싶은 기업은 저렴하게 매입한 세액공제 권리를 통해 절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지난해 말 미국 태양광 모듈 제조사 퍼스트솔라는 핀테크기업 파이저브에 세액공제 권리를 달러당 0.96달러에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해 총 7억달러의 자금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세액공제권 구매 일상화될 것”
슈나이더일렉트릭은 지난해 에너지 기업 엔지로부터 8000만달러 규모의 세액공제 권리를 사들인 데 이어 최근 태양광 패널 제조사 실팹솔라와도 관련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사모펀드 운용사 블랙스톤은 이와 관련된 하이브리드 거래 구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재생에너지 기업 아레본과 3억5000만달러짜리 세액 투자 금융을 체결해 배터리저장장치 프로젝트에 참여한 뒤 여기서 나온 세액공제 권리는 미국 IB 스티펠에 판매했다.
미국 IB 훌리한로키 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세액공제 권리의 제3자 판매 조항은 게임 체인저”라며 “기업 납세자들에게 세액공제 권리를 구매하는 건 이제 일상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액공제 권리의 주요 구매자 가운데 30%가량은 석유가스 기업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최대 석유 중개업체 비톨이 아방그리드로부터 1억달러 상당의 세액공제권을 구매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영국 발전 기업 드랙스의 한 관계자는 “미국 정부에 대한 세금 부채가 없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는 세액공제 권리를 판매할 수 있는 조항이 더욱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드랙스는 최근 미국에 탄소포집저장(CCS) 시설을 갖춘 목재펠릿 연료발전소를 건설키로 해 미국 정부로부터 세액공제 혜택을 받게 된 기업이다. 래디언트미디어스튜디오도 회사의 태양광 발전소에서 나온 세액공제권을 판매해 영화 제작비를 충당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래디언트미디어스튜디오는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애인으로 유명한 미식축구 선수 트래비스 켈스가 공동 제작자로 참여하고 있다.
거래 플랫폼까지 개설되는 등 시장이 급팽창하고 있지만,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친환경 에너지 프로젝트의 불확실성 등을 고려하면 세액공제 권리의 가치를 제대로 산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크레디트 중개업체 크럭스는 “올해 실제 거래되는 세액공제권 규모는 200억달러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