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말하길) 핵은 철저하게 자기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사용할 생각은 전혀 없다. 우리가 핵 없이도 살 수 있다면 뭣 때문에 많은 제재를 받으면서 힘들게 핵을 머리에 이고 살겠는가.”

문재인 전 대통령이 17일 출간한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에 공개한 내용 일부다. 퇴임 2주년을 맞아 이날 출간된 회고록은 최종건 전 외교부 차관(현 연세대 교수)과의 대담 형식으로 여러 일화와 컬러 사진 100여 컷을 실었다. ‘외교안보편’이란 부제가 시사하듯 2017년 5월~2022년 5월 재임 중 세 번의 남북 정상회담, 58번의 순방 외교 등 외교안보 순간에 초점을 맞췄다.

회고록에서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자신들의 비핵화 의지를 불신하는 것에 대해 매우 답답한 심정을 거듭 토로했다고 밝혔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양측이 상호를 비방하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2019년 2월에야 열린 배경도 공개됐다. 문 전 대통령은 “북한은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에 와서 실무교섭을 하면서 ‘핵 리스트’를 내놓아야 한다고 해 정상회담이 늦어졌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내게 한 표현으로는 ‘신뢰하는 사이도 아닌데 폭격 타깃부터 내놓으라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었다”며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그 말을 그대로 전했더니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후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영변 핵시설 폐기를 요구한 미국과 주요 대북 제재 해제를 요구한 북한 간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노딜’로 끝났다.

회고록에서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에 대해 “보도를 보면 북한에서는 굉장히 폭압적인 독재자로 여겨졌는데, 내가 만난 그는 전혀 다른 모습이어서 예의 바르고 존중이 몸에 뱄다”며 “말이 통한다고 느껴지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다만 김정은이 지난해 남북 관계를 ‘적대적, 교전 중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것을 두고 “매우 유감스럽다”며 “결코 평화를 지향하는 국가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전혀 이념적이지 않았고, 서로 조건이 맞으면 대화할 수 있고, 거래할 수 있다는 실용적 생각을 갖고 있었다”며 “그런 면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하는 나로서는 아주 좋았다”고 평가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