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국회의사당의 '위대한' 태권브이
국가적 위기 상황이 벌어지자 남산타워에서 전파가 발신된다. 63빌딩이 그 전파를 국회 쪽으로 반사하자 의사당의 돔이 열리며 태권브이가 발진한다. 아재들이 어릴 적 하던 개그다. 그런 농담이 유행했을 정도로 의사당 디자인은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말이다. 건물 비례도 그렇고 그 위의 돔은 로봇 보관소가 아니라면 용도도 디자인도 영 어색하다. 어쩌다 저렇게 디자인했을까?

우리 국회는 총독부 청사, 나중에는 중앙청이라 불리던 곳에서 시작했다. 그 뒤엔 일제가 지은 경성부립극장, 지금의 서울시의회 건물을 사용했다. 이쯤 되면 자존심이란 것도 있는데 우리 손으로 지은 민의의 전당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올 수밖에. 그렇게 1975년, 여의도에 의사당이 들어섰지만 그 과정은 이해 불가의 연속이었다.

아직 식견이 부족해서 그랬을까? 디자인의 중요성을 미처 몰랐던 ‘그분’들이 설계 예산을 왕창 깎아버려 해외 설계사는 물론이고 국내 유명 설계사들마저 공모에서 빠졌다. 그래도 최초 디자인은 날렵한 모더니즘 스타일이라서 봐줄 만했다. 초안에는 평등을 의미한다며 지붕을 평평하게 설계했는데 ‘서양식 건축물인데 돔이 없으니 웅장미가 떨어진다’는 의원들의 주장으로 ‘웅장한’ 억지 돔을 붙였다. 그림이 좀 이상해졌다. 이번에는 대통령이 나섰다. 적어도 총독부 건물이었던 중앙청보다는 높아야 하지 않겠냐는 말씀에 즉시 한 층이 추가되는 대신 건물 폭이 좁아졌다. 상당히 이상해졌다. 이번엔 의원들이 의사당 모습이 마치 상여처럼 생겼다며 돔에 전통적 기와지붕을 올려달라고 했다. 돔에 기와지붕이라 참으로 ‘창의적’이시다. 완전히 이상해질 뻔했으나 다행히 기와지붕은 무산됐다. 내 눈엔 사공이 많은 배로 보이는데 그분들에겐 상여로 보였나 보다. 한참 뒤엔 연두색 돔을 황금빛으로 칠하자고 예산을 제출하는 해프닝에 촌스러움의 끝판왕이 완성될 뻔했다. 예나 지금이나 깊은 사색과 고민은 하기 싫은데 공연히 존재감을 한번 드러내고 싶을 때를 잘 참고 견뎌야 한다. 주변에서 떠받드니 내가 제일 잘났고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서 나서는 순간 50년이 지나고도 나같이 고약한 사람한테 욕먹는다.

인류 최초의 돔은 로마의 판테온이다. 그들이 섬기는 온갖 신을 몽땅 모셔놓은 만신전이다. 그런데 돔이란 게 건축 과정이 까다롭고 비용이 엄청나서 쉽게 짓기 어렵다. 그래서 ‘내가 이런 낭비까지 할 수 있는 위대한 존재’라는 걸 과시하고 싶을 때 거금을 들여 건축했다. 이스탄불의 아야소피아, 피렌체의 두오모가 대표적이다. 그래서일까? 독일어로 돔(Dom)은 의미가 아예 성당이다. 근대에는 독일제국의 의사당이 돔을 선택했다. 철거된 조선총독부도 돔이었다. 그 건물들, 범접하기 어려운 위상으로 주변을 압도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내재돼 있다. 그래서일까? 2차대전 이후 새로 지어진 각국의 의사당에는 돔 디자인이 잘 없다. 유별난 어떤 나라만 빼고 말이다.

독일제국의 권위적인 그 의사당, 2차대전 때 폭격으로 부서진 채 방치됐다. 통일되고 수도를 베를린으로 다시 옮긴 1999년이 돼서야 공모를 통해 방치된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그 건물을 폭격으로 박살 낸 영국 출신인 노먼 포스터를 설계자로 선정했다. 독일인의 포용력 진짜 대단하다. 민주주의 원조 국가에서 온 설계자는 기존의 돔을 철골과 유리로 바꾼다. 완전 투명하게! 누구나 돔에 올라가 주변 전경을 둘러볼 수 있는데 절정은 유리돔을 통해 회의장을 빤히 내려다볼 수 있다는 대목이다. 회의장 위에서 내려다보고 계시는 ‘국민님’들이 거기 머무르는 4년 동안 그 시선을 의식하며 바짝 긴장하셔야 할 ‘의원님’보다 위에 계시다는 걸 표현한 거다.

산전수전 겪으며 아재가 돼버린 우리는 그 돔에서 위대한 태권브이가 나오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자기가 위대하다는 착각을 피하려고 전문가의 이야기를 최대한 듣는, ‘자기들’에게 유리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옳은 것을 추구하는 상식적인 분들이 나오길 기대할 뿐이다. ‘국가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헌법 46조)’하는 그런 대표? 21번이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는데 22번째는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