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 어느 호젓한 곳에 조용히 열려있는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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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배세연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전시와 연구를 아우르는 아카이브 전문 미술관
북한산을 배경으로 한 공간의 미학
시민과 가까운 친근한 미술관 설계
현대미술의 기록을 담은 화이트 큐브 공간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전시와 연구를 아우르는 아카이브 전문 미술관
북한산을 배경으로 한 공간의 미학
시민과 가까운 친근한 미술관 설계
현대미술의 기록을 담은 화이트 큐브 공간
연구실에 두 학생이 찾아왔다. 평소에도 친하게 지내는 아이들이 그날은 과잠까지 똑같이 맞춰 입고 유난히 들떠있길래 그 연유를 물어보니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전시를 보고 왔다고 한다. 용건을 마치고 연구실을 나가는 그 뒷모습마저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학생들에게 디자인을 가르치며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좋은 것을 많이 '보는 것'이다. 대학생이었던 시절 필자는 전시를 많이 보러 다녔었는데 그날 두 녀석의 즐거운 뒷모습은 그 시절을 반추해보게 만들었다.
요즘 대학생들이 전시를 보거나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 많이 찾는 장소는 단연 성수동이다. 필자가 대학생이었던 시절에는 삼청동, 인사동을 비롯하여 종로구에 위치하고 있는 미술관들이 그 대상이었다. 그런데 과거에도, 그리고 요즘도 갈까 말까를 고민하게 하는 동네가 하나 있는데 평창동이 바로 그곳이다. 평창동에 전시를 보러 가는 것을 꺼렸던 많은 이들의 사유는 "거긴 너무 멀어." "거기에 놀게 뭐가 있어?" 였다. 이런 평창동에 2023년,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가 들어섰다. 접근성 측면에서만 봤을 때 처음에는 '왜 평창동에?'라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들었다. 평창동은 북한산과 북악산 사이에 위치하여 주변에 산이 가깝게 보이고 그 아래 건물들이 낮은 높이로 위치한 경관을 가진 동네이다. 오래전부터 집에 가기 위해 평창동을 종종 지나다녀야만 하는 필자에게 이곳은 서울의 많은 동네들 중 경관과 인상이 크게 변하지 않은 동네 중 하나이다.
이러한 동네에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는 주변의 건물들과 높이를 맞추어 낮게 자리를 잡았고 본래 있던 길을 사이에 두고 여러 동으로-모음동, 배움동, 나눔동- 분리하여 각 건물을 위치시켰다. 그리고 모음동과 배움동 사이에 위치한 경사로를 따라 건물을 전개하여 북한산을 배경으로 건물들이 층층이 자리 잡고 있는 동네에 본래부터 있던 건물인 양 자리하였다. 세 개의 동이 각각 분리된 이 중심성 없는 미술관은 가장 큰 덩어리이자 전시, 보존, 연구가 행해지는 메인 건물인 모음동 마저 네 덩어리로 쪼개어 기능을 분산시킴으로써 이러한 성격을 극대화하였다. 공간들이 기능에 따라 분리되었기에 각 공간에 진입할 수 있는 방법 또한 다양하며 방문객들은 본인들의 목적에 맞는 곳을 찾아가면 된다.
미술관에서는 보통 로비와 같은 공용공간을 거쳐 안쪽에 자리 잡은 전시실에 입장하게 되는데, 필자가 선택했던 입구에서는 들어가자마자 전시 공간을 맞닥뜨리게 되는 새로운 공간 경험이 펼쳐졌다. 이곳은 일반적인 미술관이 아닌 ‘아카이브 전문 미술관’으로, 전시뿐 아니라 한국 현대미술의 기록 및 자료들을 수집하고 보관하는 곳이다. 이에 모음동 1층에 위치한 레퍼런스 라이브러리에서는 미술 관련 서적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고, 신청한 자료를 따로 열람할 수 있는 리서치랩이 모음동 3층에 별도의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다. 이처럼 기록의 공간, 즉 특정 분야의 사(史)를 담고 있는 공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미술관이 평창동에 자리 잡은 것이 썩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의 내부는 백색의 공간으로, 현대 미술관의 보편적인 방식으로 자리 잡은 화이트 큐브의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는 백색의 전시 공간을 의미) 성격을 가진다. 하지만 외부를 향해 크게 나있는 창들은 주변을 안으로 수용하기도, 내부를 밖으로 연계시키기도 하며 장소에서의 형태적 조화뿐 아니라 이용의 경계를 낮추려는 의도를 보인다.
이러한 건물 외부에는 메탈 패브릭이 건물을 한 겹 둘러싸고 있는데, 이는 내부로 들어오는 햇빛의 양을 조절하는 역할도 하겠지만 필자에게는 그 장소에서 건물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자리를 잡는 또 다른 방식으로서 더 인상 깊게 느껴졌다. 이처럼 권위를 앞에 두지 않고 시민들이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된 미술관은 건물을 끼고 이어지는 경사로와 4개로 나누어진 모음동 각 건물의 옥상마저 자연스럽게 연계된다. 이에 미술관의 옥상정원은 동네의 공원처럼 인지되고 그곳에 설치되어 있는 작품들은 주변 경관에 활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과거에 비해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을 찾고 있지만 아직 대중들에게 미술은 마냥 편하지 않은 분야이다. 하지만 그런 대중들을 위해 평창동의 한 곳에서 조용하게, 하지만 다양한 자료와 접근방식을 가지고 활짝 열려있는 미술관이 있다. 동네도, 아카이브라는 명칭도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할 수 있지만 어쩌면 미술에 대한, 그리고 공간에 대한 경험을 시작하기에 좋은 장소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권해본다.
배세연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조교수
요즘 대학생들이 전시를 보거나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 많이 찾는 장소는 단연 성수동이다. 필자가 대학생이었던 시절에는 삼청동, 인사동을 비롯하여 종로구에 위치하고 있는 미술관들이 그 대상이었다. 그런데 과거에도, 그리고 요즘도 갈까 말까를 고민하게 하는 동네가 하나 있는데 평창동이 바로 그곳이다. 평창동에 전시를 보러 가는 것을 꺼렸던 많은 이들의 사유는 "거긴 너무 멀어." "거기에 놀게 뭐가 있어?" 였다. 이런 평창동에 2023년,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가 들어섰다. 접근성 측면에서만 봤을 때 처음에는 '왜 평창동에?'라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들었다. 평창동은 북한산과 북악산 사이에 위치하여 주변에 산이 가깝게 보이고 그 아래 건물들이 낮은 높이로 위치한 경관을 가진 동네이다. 오래전부터 집에 가기 위해 평창동을 종종 지나다녀야만 하는 필자에게 이곳은 서울의 많은 동네들 중 경관과 인상이 크게 변하지 않은 동네 중 하나이다.
이러한 동네에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는 주변의 건물들과 높이를 맞추어 낮게 자리를 잡았고 본래 있던 길을 사이에 두고 여러 동으로-모음동, 배움동, 나눔동- 분리하여 각 건물을 위치시켰다. 그리고 모음동과 배움동 사이에 위치한 경사로를 따라 건물을 전개하여 북한산을 배경으로 건물들이 층층이 자리 잡고 있는 동네에 본래부터 있던 건물인 양 자리하였다. 세 개의 동이 각각 분리된 이 중심성 없는 미술관은 가장 큰 덩어리이자 전시, 보존, 연구가 행해지는 메인 건물인 모음동 마저 네 덩어리로 쪼개어 기능을 분산시킴으로써 이러한 성격을 극대화하였다. 공간들이 기능에 따라 분리되었기에 각 공간에 진입할 수 있는 방법 또한 다양하며 방문객들은 본인들의 목적에 맞는 곳을 찾아가면 된다.
미술관에서는 보통 로비와 같은 공용공간을 거쳐 안쪽에 자리 잡은 전시실에 입장하게 되는데, 필자가 선택했던 입구에서는 들어가자마자 전시 공간을 맞닥뜨리게 되는 새로운 공간 경험이 펼쳐졌다. 이곳은 일반적인 미술관이 아닌 ‘아카이브 전문 미술관’으로, 전시뿐 아니라 한국 현대미술의 기록 및 자료들을 수집하고 보관하는 곳이다. 이에 모음동 1층에 위치한 레퍼런스 라이브러리에서는 미술 관련 서적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고, 신청한 자료를 따로 열람할 수 있는 리서치랩이 모음동 3층에 별도의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다. 이처럼 기록의 공간, 즉 특정 분야의 사(史)를 담고 있는 공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미술관이 평창동에 자리 잡은 것이 썩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의 내부는 백색의 공간으로, 현대 미술관의 보편적인 방식으로 자리 잡은 화이트 큐브의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는 백색의 전시 공간을 의미) 성격을 가진다. 하지만 외부를 향해 크게 나있는 창들은 주변을 안으로 수용하기도, 내부를 밖으로 연계시키기도 하며 장소에서의 형태적 조화뿐 아니라 이용의 경계를 낮추려는 의도를 보인다.
이러한 건물 외부에는 메탈 패브릭이 건물을 한 겹 둘러싸고 있는데, 이는 내부로 들어오는 햇빛의 양을 조절하는 역할도 하겠지만 필자에게는 그 장소에서 건물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자리를 잡는 또 다른 방식으로서 더 인상 깊게 느껴졌다. 이처럼 권위를 앞에 두지 않고 시민들이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된 미술관은 건물을 끼고 이어지는 경사로와 4개로 나누어진 모음동 각 건물의 옥상마저 자연스럽게 연계된다. 이에 미술관의 옥상정원은 동네의 공원처럼 인지되고 그곳에 설치되어 있는 작품들은 주변 경관에 활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과거에 비해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을 찾고 있지만 아직 대중들에게 미술은 마냥 편하지 않은 분야이다. 하지만 그런 대중들을 위해 평창동의 한 곳에서 조용하게, 하지만 다양한 자료와 접근방식을 가지고 활짝 열려있는 미술관이 있다. 동네도, 아카이브라는 명칭도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할 수 있지만 어쩌면 미술에 대한, 그리고 공간에 대한 경험을 시작하기에 좋은 장소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권해본다.
배세연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