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신라젠 티슈진처럼 되는 거 아닌가요.”

바이오 기업 HLB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신약 승인 실패로 2거래일 연속 하한가를 맞으면서 투자자들의 불안이 확산하고 있다. 이 기간 HLB그룹 시가총액은 약 8조원 증발했다. 이 여파로 20일 한미약품(-2.47%) 셀트리온(-2.35%) 녹십자홀딩스(-2.30%) 등 제약바이오 기업이 줄줄이 약세로 마감했다. 금리 인하 기대감으로 모처럼 반등한 바이오주 투자심리가 다시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HLB 쇼크…되살아나던 바이오株에 불똥

그룹 시총 8조원 증발

이날 HLB는 코스닥시장에서 전 거래일 대비 29.96% 하락한 4만7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HLB는 지난 16일까지만 해도 코스닥 시가총액 2위 기업이었지만 에코프로, 알테오젠에 밀려 4위로 주저앉았다. 시총은 12조5335억원에서 6조1497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2거래일 새 6조3838억원이 증발했다.

HLB는 부산은행 뱅커 출신인 진양곤 회장이 구명정 기업 현대라이프보트를 기반으로 인수합병(M&A)을 통해 45개 계열사로 키워낸 기업이다. 실적은 줄곧 적자였지만 신약 허가 기대에 힘입어 올 들어 주가가 2배 넘게 급등했다. 이 회사는 자체 개발 중이던 간암 치료제 리보세라닙과 중국 항서제약의 면역항암제 캄렐리주맙을 함께 사용하는 임상을 진행해 FDA 승인에 도전했다. 그러나 17일 FDA에서 보완 요청을 받았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주가가 폭락했다. 진 회장은 “이른 시일 내에 문제점을 보완해 재도전하겠다”고 밝혔지만 시장에선 실망 매물이 쏟아지며 하한가로 직행했다.

앞서 임상 실패로 주가가 휘청인 사례는 수차례 있었다. 2016년 9월 한미약품의 표적 항암제 권리 반환 때와 2019년 4월 코오롱티슈진의 골관절염 치료제 ‘인보사 사태’, 2019년 8월 코스닥 시총 2위였던 신라젠의 임상 중단 권고 등이 대표적이다. 이 사태로 투심이 차갑게 식으면서 바이오주는 한동안 암흑기를 겪었다.

“투심 악화” vs “확산 우려 적어”

증권가에선 이번 사태로 바이오기업에 대한 개인투자자의 신뢰가 무너지면 업종 전반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기술 수출이나 임상에 성공하면 수십 배씩 주가가 뛰는 바이오주 특성상 개인 자금이 많이 몰리기 때문이다. 온라인 주식 카페 등에선 “회사 측에서 FDA 원문을 공개해야 한다” “실패 원인을 명확히 공개하지 않으면 믿지 못하겠다” “다시는 바이오주를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바이오주로 전이될 가능성이 작다는 의견도 있다. 국내 바이오 시장이 도약기에서 성숙기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주주의 이해도가 높아졌고 임상 실패에 대한 학습 효과가 축적됐다는 점에서다. 이날 삼성바이오로직스(0.25%) 차바이오텍(0.76%) 휴젤(4.47%) 알테오젠(0.21%) 등은 상승 마감했다. HLB그룹주 중에서도 HLB이노베이션(11.57%) HLB바이오스텝(4.09%) HLB파나진(2.93%) HLB테라퓨틱스(2.40%) 등은 반등에 성공했다.

강대권 라이프자산운용 대표는 “2020년 전까지 바이오는 생소한 업종이었지만 이후 수년간 경험이 쌓이면서 투자자도 학습 효과를 얻었다”며 “HLB 사태가 다른 바이오주의 펀더멘털(기초체력)과 관련성이 작은 만큼 전체 바이오주가 흔들릴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