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 '풀밭 위의 점심 식사' 나체 여성은 매춘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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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전유신의 벨 에포크
마네 그림 속의 그 여자, 빅토린 뫼랑
마네 그림 속의 그 여자, 빅토린 뫼랑
![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 식사> (1862-1863), 오르세 미술관 소장.](https://img.hankyung.com/photo/202405/01.36770165.1.jpg)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3), 오르세 미술관 소장.](https://img.hankyung.com/photo/202405/01.36770166.1.jpg)
뫼랑은 16살 되던 해인 1860년에 토마스 쿠튀르라는 화가의 스튜디오에서 모델 일을 시작했고, 여성들을 모아 지도하던 그의 아틀리에에서 그림 수업도 받았다. 2년 뒤부터는 마네 작품의 모델로도 활동했다. 뫼랑은 모델이라는 직업 이외에도 바이올린과 기타 레슨을 하고 카페에서 연주도 하던 음악가였고, 캉캉 댄서로 해외 순회공연을 다니던 전문 무용가이기도 했다. 마네가 처음 그린 그의 모습 역시 ‘거리의 가수’라는 작품에 나오는 것처럼 음악가로서의 뫼랑이었다.
![에두아르 마네 <거리의 가수> (1862), 보스턴 미술관 소장.](https://img.hankyung.com/photo/202405/01.36770163.1.jpg)
마네는 르네상스 거장들의 회화를 바탕으로 한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통해서는 당대에 센 강변에서 유희를 즐기던 젊은 남녀들의 방탕한 모습을 포착하고자 했다. 르네상스의 거장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1538)나 신고전주의의 대가 앵그르의 ‘그랑 오달리스크’(1814)를 연상시킨다는 평가를 받는 ‘올랭피아’ 역시 마네 자신이 살던 당대 파리의 밤 문화의 현장을 보여준다. 이로써 마네는 당대 파리의 근대적인 생활상을 그린 모던한 작가로 평가받게 되었지만, 그림 속의 뫼랑은 방탕한 여성이자 매춘부로 영원히 그림 속에 박제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직업을 가진 여성들은 대부분 하위계층이었고, 이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매춘을 강요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가수나 무용가 등 오늘날에는 전문직으로 여겨지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라 하더라도 당대에는 그저 생계를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을 하위계층의 만만한 여성으로 인식되었다. 카페의 가수이자 무용가로 얼굴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던 뫼랑 역시 남성 관객들에게는 그런 존재로 인식되었다. 마네의 작품을 통해 당돌한 시선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한 뫼랑은 남성 관객들에게는 불쾌한 대상일 뿐이었다. 마네 작품의 불편함은 고전적인 회화의 문법을 비튼 그의 작품 스타일이 지닌 생경함과 아는 여자 뫼랑의 조합에서 기인한 것이다.
![빅토린 뫼랑의 사진 (1865년경)](https://img.hankyung.com/photo/202405/01.36770162.1.jpg)
이런 활동 이력에도 불구하고 뫼랑은 여전히 마네 그림의 모델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지만, 벨 에포크 시기에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여성으로 당당한 삶을 살았던 그의 이야기는 꽤 다양한 분야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2000년대 이후부터 최근까지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들이 여러 차례 출간되기도 했다. 2021년에는 뫼랑의 자화상이 미국의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되면서 그의 작품에 대한 재평가도 시작되는 것처럼 보인다.
![빅토린 뫼랑 <자화상> (1876), 보스턴 미술관 소장.](https://img.hankyung.com/photo/202405/01.36770164.1.jpg)
전유신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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