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 첫 배경화면 찍은 미즈락, 정신병동에 '나무 사진' 건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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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포토그래피 거장 리처드 미즈락 국내 첫 개인전
서울 이태원 페이스갤러리서 6월 15일까지
'코끼리 우화' 시리즈 최초 공개 등 15점 전시
서울 이태원 페이스갤러리서 6월 15일까지
'코끼리 우화' 시리즈 최초 공개 등 15점 전시
현대 컬러 포토그래피의 르네상스를 이끈 리처드 미즈락(74). 문명과 자연이 충돌하는 미국 서부의 현장을 카메라에 옮겨온 남자. 동시대 가장 정치적인 사진가로 꼽히는 그가 처음 한국을 찾았다. 그것도 '정치색을 쏙 뺀' 신작 나뭇가지 연작과 함께.
서울 한남동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리처드 미즈락 개인전은 그의 반세기 사진 여정을 만나볼 흔치 않은 기회다. 인간이 파괴한 자연을 선명한 대형 화면에 옮긴 대표작부터 그가 팬데믹 기간에 제작한 신작 '코끼리 우화(Elephant Parable)'까지 15점이 걸렸다. 작가의 첫 국내 개인전이자, 2017년에 문을 연 페이스갤러리 서울의 첫 사진전이다. 국내에선 생소한 이름이지만, 미즈락은 1970년대부터 자연을 촬영한 대형 컬러 사진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다. 2010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를 처음 공개했을 때 배경 화면이 미즈락의 사진이었다. '사막 캔토스(Desert Cantos)' 등 그의 대표작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휘트니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등 유수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전시장 1층부터 넘실대는 파도가 시선을 압도한다. 집채만 한 파도에 위태롭게 올라탄 서퍼를 가로 227.3㎝, 세로 147.3㎝ 크기로 인화한 '이카로스 모음집(Icarus Suite)'(2019)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태양에 가까이 다가가며 추락한 이카로스처럼, 금단의 영역을 넘보는 무모한 인간을 지적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의 배경들을 묶는 키워드는 '캔토스'다. 20세기 미국의 대표 시인 에즈라 파운드(1885~1972)의 역작 <캔토스>에서 영감을 받았다. 파운드가 고대 그리스부터 오늘날까지 정치사를 포괄한 대서사시를 남겼다면, 미즈락은 환경·반전(反戰)·동물권 운동 등 사회적 이슈의 최전선을 한데 엮었다. 유타주의 메마른 소금 사막, 네바다주의 핵실험 시설, 동물 사체 매립지 등 논란의 중심에 있는 장소들이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2층에 걸린 '코끼리 우화' 시리즈 10점이다. 코로나19가 창궐했던 지난 2020~2021년 제작한 신작으로,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샌프란시스코에 들어선 낸시 프랜드 프리츠커 정신병동에 걸기 위해 만든 작품이다.
정신병동 측이 작품을 의뢰했을 때 걸었던 조건은 단 한 가지. '정치적인 것은 안 된다'였다고 한다. 지금까지처럼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다룬 사진이 아닌, 병원 구성원한테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작품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고심하던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예전에 찍고 버려둔 하와이의 대나무숲 이미지였다. '실패작'이라고 여겼던 사진에 새 숨결을 불어 넣으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작가는 "원본 이미지는 지금껏 촬영한 사진 중 가장 좋아하지 않았던 작품"이라며 "흥미롭지 않은 것으로부터 흥미로운 요소를 찾는 게 작업의 시작이었다"고 했다.
팬데믹으로 인해 자유롭게 출사(出寫)하지 못하는 환경에서의 일종의 고육지책이었다. 자택에 머물며 포토샵을 진득하게 파헤치기 시작했다. 사진 일부분을 확대하거나 축소하고, 색상을 반전하는 등 디지털 작업을 거쳤다. 1000여번의 조작 실험 끝에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작품 수십점이 태어났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같은 이미지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어렵다. 밋밋했던 원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영락없이 비현실적인 이미지다. 사인펜으로 그린 듯한 사진부터 유화, 수묵화, 프레스코화를 연상케 하는 작품까지 질감과 색상에서 천차만별이다.
이번 연작은 '맹인과 코끼리' 우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여섯 명의 맹인 승려가 코끼리 한 마리를 만지고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은 이야기다. "우화 속 코끼리는 인생 그 자체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죠. 정신병동에 들어오는 사람들도 각자의 경험을 가지고 있고, 우리와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습니다." 전시는 6월 15일까지. 안시욱 기자
서울 한남동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리처드 미즈락 개인전은 그의 반세기 사진 여정을 만나볼 흔치 않은 기회다. 인간이 파괴한 자연을 선명한 대형 화면에 옮긴 대표작부터 그가 팬데믹 기간에 제작한 신작 '코끼리 우화(Elephant Parable)'까지 15점이 걸렸다. 작가의 첫 국내 개인전이자, 2017년에 문을 연 페이스갤러리 서울의 첫 사진전이다. 국내에선 생소한 이름이지만, 미즈락은 1970년대부터 자연을 촬영한 대형 컬러 사진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다. 2010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를 처음 공개했을 때 배경 화면이 미즈락의 사진이었다. '사막 캔토스(Desert Cantos)' 등 그의 대표작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휘트니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등 유수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전시장 1층부터 넘실대는 파도가 시선을 압도한다. 집채만 한 파도에 위태롭게 올라탄 서퍼를 가로 227.3㎝, 세로 147.3㎝ 크기로 인화한 '이카로스 모음집(Icarus Suite)'(2019)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태양에 가까이 다가가며 추락한 이카로스처럼, 금단의 영역을 넘보는 무모한 인간을 지적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의 배경들을 묶는 키워드는 '캔토스'다. 20세기 미국의 대표 시인 에즈라 파운드(1885~1972)의 역작 <캔토스>에서 영감을 받았다. 파운드가 고대 그리스부터 오늘날까지 정치사를 포괄한 대서사시를 남겼다면, 미즈락은 환경·반전(反戰)·동물권 운동 등 사회적 이슈의 최전선을 한데 엮었다. 유타주의 메마른 소금 사막, 네바다주의 핵실험 시설, 동물 사체 매립지 등 논란의 중심에 있는 장소들이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2층에 걸린 '코끼리 우화' 시리즈 10점이다. 코로나19가 창궐했던 지난 2020~2021년 제작한 신작으로,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샌프란시스코에 들어선 낸시 프랜드 프리츠커 정신병동에 걸기 위해 만든 작품이다.
정신병동 측이 작품을 의뢰했을 때 걸었던 조건은 단 한 가지. '정치적인 것은 안 된다'였다고 한다. 지금까지처럼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다룬 사진이 아닌, 병원 구성원한테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작품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고심하던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예전에 찍고 버려둔 하와이의 대나무숲 이미지였다. '실패작'이라고 여겼던 사진에 새 숨결을 불어 넣으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작가는 "원본 이미지는 지금껏 촬영한 사진 중 가장 좋아하지 않았던 작품"이라며 "흥미롭지 않은 것으로부터 흥미로운 요소를 찾는 게 작업의 시작이었다"고 했다.
팬데믹으로 인해 자유롭게 출사(出寫)하지 못하는 환경에서의 일종의 고육지책이었다. 자택에 머물며 포토샵을 진득하게 파헤치기 시작했다. 사진 일부분을 확대하거나 축소하고, 색상을 반전하는 등 디지털 작업을 거쳤다. 1000여번의 조작 실험 끝에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작품 수십점이 태어났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같은 이미지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어렵다. 밋밋했던 원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영락없이 비현실적인 이미지다. 사인펜으로 그린 듯한 사진부터 유화, 수묵화, 프레스코화를 연상케 하는 작품까지 질감과 색상에서 천차만별이다.
이번 연작은 '맹인과 코끼리' 우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여섯 명의 맹인 승려가 코끼리 한 마리를 만지고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은 이야기다. "우화 속 코끼리는 인생 그 자체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죠. 정신병동에 들어오는 사람들도 각자의 경험을 가지고 있고, 우리와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습니다." 전시는 6월 15일까지. 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