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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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직장으로 전화해 대뜸 장구 하나 사 와라라고 했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서둘러 퇴근해 종로3가 악기점을 들렀다. 사정을 얘기했더니 두서너 개를 골라줬다. 그중 장인의 작품이라며 북을 같이 사라고 해 할인된 가격으로 샀다. 장구를 받아든 아버지가 한참을 둘러 보다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조율을 마친 아버지가 바로 부른 노래가 사발가. “석탄 백탄 타는데, 연기만 펄펄 나고요./ 요내 가슴 타는데 연기도 김도 없구나./ (후렴)에 에헤 에헤야 어여라난다 디여라 허송세월을 말아라.” 아버지가 소리 높여 부르는 노래도 놀라웠지만, 장구로 굿거리장단을 맞추는 모습에 말문이 막혔다.

사발가(沙鉢歌)1910년 국권침탈 무렵 민족이 지닌 울분을 토로한 경기민요다. 본래의 사설에는 사발이란 말이 없고, 후에 생겨난 사설에 사발이란 노랫말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에 기인하여 사발가라 지칭된 듯하다고 사전은 설명하고 있다. 아버지는 다섯 자락을 장구로 장단을 맞춰가며 연달아 불렀다. 잠깐씩 눈을 감고 들으면 내 아버지가 부르는 노래가 아닐 만큼 절창이었다. 흥이 난 아버지는 목포의 눈물’, ‘용두산 엘레지’, ‘모정등 트로트를 몇 곡 더 불렀다. 북을 잡은 아버지는 내가 처음 들어보는 사설시조(辭說時調)를 마지막으로 뽑은 뒤 북채를 내려놓았다.

음악을 모르는 내가 들어도 잘하는 이유는 군 병원에서 재활훈련 중에 아버지 표현대로는 당대 최고 명창에게 피나는 노력으로 전수한 때문이라고 했다. “다리를 잃고 마음 둘 데가 없어 밥 먹을 때 빼고는 잠 안 자고 노래를 배웠다고 회고했다. 때로 손장단을 맞춰가며 노래를 부르긴 했지만, 그날 장구와 북을 치며 공연하듯 노래하는 모습은 전혀 딴 사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아버지는 몇 군데 노래자랑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휩쓸었다라고 술회했다. 어렴풋이 기억을 되살려보니 아버지가 그동안 노래를 부르지 않은 것은 제대한 뒤 요정에서 기생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본 어머니와 부부싸움을 크게 한 뒤부터였다.

아버지는 인간의 능력은 대체로 비슷하다. 성패는 누가 더 그 일에 집중하느냐에 달려있다. 집중력이 차이를 만든다고 했다. 이어 집중력을 방해하는 요소 중 가장 큰 것은 목표에 대한 중압감에서 오는 스트레스다. 그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데 몸이 불편한 내게는 음악만 한 것이 없었다라고 했다. “음악이 최고의 치료제다라며 일러준 고사성어가 삼월부지육미[三月不知肉味]’.

삼월부지육미는 논어 술이편(述而篇)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다. 원문은 공자가 제나라에서 순임금의 음악인 소()를 듣고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잊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음악을 하는 것이 이런 경지에 이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子在齊聞韶, 三月不知肉味, 不圖爲樂之至於斯也’].” 공자가 음악에 얼마나 열광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다. 제나라를 방문했던 공자는 그곳의 아름다운 음악인 소에 감탄한 나머지 3개월 동안 음식을 맛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음악이 가진 강력한 감동력과 영향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공자의 깊은 예술적 감성을 드러내는 말이다. 아버지는 어떤 일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다른 것을 잊어버릴 수 있다. 공자도 당시 스트레스를 무척 많이 받았을 텐데 그걸 음악으로 치유했을 거다라고 유추했다.

아버지는 당시 지리한 행정소송에 해를 넘기며 매달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스트레스가 심했을 일이 짐작만 해도 크다. 결국, 아버지는 승소해 지금의 국가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의 탄생을 끌어냈다. 훗날 재판에서 이겨 한껏 고조된 아버지는 나를 불러 네가 사다 준 장구와 북 덕분이다라며 저녁을 거르며 노래를 불렀다. 전에 듣지 못했던 흥취가 담긴 노래였다. “노래가 마음 치료제라고 불리는 이유는 감정 표현과 공감, 스트레스 해소, 기분 전환, 자존감 향상, 인지 기능 향상 등 다양한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노래는 정신 건강과 삶의 질 향상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강력한 도구다라고 했다.

집중력은 공부는 물론 업무나 일상생활에서 중요하게 역할하는 능력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스마트폰, SNS, 인터넷 등 다양한 자극으로 인해 집중력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집중력은 꾸준한 노력과 훈련을 통해 향상된다. 손주들에게도 서둘러 일깨워줘야 할 소중한 품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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