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엽이 30년간 열 다섯 번 이사 끝에 당도한 운명적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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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윤희의 작가들의 별난 아틀리에
작가 정정엽의 안성 작업실
작가 정정엽의 안성 작업실
안성 미리내성지로 가는 길 어디쯤 좌회전해서 외길로 끝까지 들어가면 정정엽 작가의 작업실이 있다. 정정엽의 작업실은 가장 높고 막다른 곳에 있어서, 눈이 많이 내렸던 지난 겨울 어느 날은 차를 길에 버리고 올라가야 했다.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오는 높이였다. 하지만 어쩌면 오르막이야말로 정정엽 작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올해 초 킬리만자로 정상 등반을 했을 정도로 산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눈을 비비며 정상 등반 확인증 사진을 전송받고서야 ‘아니, 선생님은 왜 또 위험하게 그런 험한 산을... 그런데 킬리만자로가 어디 있더라...’하고 검색을 해 보았다. 정정엽 작가가 올랐던 우후루 피크는 해발 5895m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으며 드넓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라고 한다. 바로 할 말을 잃었다.
김혜순 시인이 정정엽 작가를 떠올리며 썼던 시 <물구나무 팥>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정엽이는 집 떠나고 싶으면 등산용 배낭을 짊어지고 설거지를 한다. / 2층 마당으로 트렁크를 던지기도 한다.”[1] 그리하여 높이로 치자면 참으로 작가와 잘 어울리는 이 작업실은, 차로 들어가도 구불구불 좌우의 바퀴 앞이 닿는 곳을 확신하지 못한 채 긴장하며 들어가야 한다. 낭떠러지에 떨어질 것만 같은 기분으로 구석에 주차를 하고 현관을 열면, 또다시 높은 계단이 시작된다. 어떤 작가의 작업실이나 문을 열고 발을 디디면 그 자신의 작품이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법이지만, 정정엽 작가의 현관 계단 양쪽 벽에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이 걸려 있다. 정정엽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한 점 판매될 때마다 다른 작가의 작품을 한 점씩 구매한다. 혹은 젊디젊은 작가의 전시에서 예기치 않은 구매를 하기도 한다. 작품 컬렉션을 한다니 자금력의 여유가 상당한 작가인 것인가 오해가 발생될 수 있는 대목이지만, 그는 그야말로 허리띠를 졸라매 현 작업실의 잔금을 갚은 지도 얼마 되지 않는다. 이 계단 컬렉션은 다른 예술가들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자 성원의 마음을 담고 있다. 계단을 다 오르고 나면 넓은 작업실이 나온다. 전면에 두 개의 층을 이루며 걸려 있는 작품들이 보인다. 아래쪽에는 정정엽 작가의 가장 잘 알려진 팥 연작이 세 점 걸려 있다. 멀리서 보면 화산이 분출하는 것 같고 회오리바람이 치는 모습 같기도 하지만, 팥 알갱이 한 알 한 알이 모여 만든 광경이다. 그의 팥 알갱이들은 모이고 헤쳐 어느 때는 별처럼 빛나기도 하고 어느 때는 격렬하게 움직이기도 한다. 이 작품들은 삼십년간 다양하게 변주되었지만 그 어느 한 점도 비슷하지 않다.
벽면 위쪽에는 꽃이 핀 양파를 비롯해 싹이 난 감자와 마늘 등 식재료들(?)이 각자의 생명을 이어나가는 작품들이 걸려 있다. 정정엽 작가는 일찍이 '사대부가 난을 쳤다면 나는 파를 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 스스로 생명이면서도 우리를 살게 하는 식물들의 위대함이, 사대부가 애호하는 관념으로서의 식물보다 덜 위대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화업의 초기부터 콩팥과 나물 등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가로 길이가 2미터가 넘는 거대한 나물 더미는 마치 성인들처럼 후광이 빛나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모두 위대한 장면이다. 올봄에는 정정엽 작가가 겨우내 또다시 깜빡 잊고 있던 감자 상자가 생각나 열어 보았다. 감자싹이 그려진 미완성 작품 앞에 천을 펼쳐놓고 한 개씩 꺼내 보니, 닫힌 상자의 어둠 속에서도 어찌나 고운 색으로 길게 자라 있던지. 정작 감자는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쪼글쪼글 늙어 있었다.
2023년 개인전의 제목이었던 “모욕을 당한 자이면서 위대한” 자들 가운데는 싹이 튼 감자도 있었지만, 벌레와 나방들이 작품의 주인공이었다. 작업실의 한쪽 면의 커다란 유리창은 주변의 풍경을 시원하게 담지만, 여름밤에는 바로 그 창에 불빛을 향해 모여든 각종 벌레와 나방이 징그러운 배를 보여주면서 새카맣게 붙어 있다. 정정엽 작가에게도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던 각종 벌레들을 마주보며 관찰할 계기가 마련된 것은 안성 작업실의 큰 창 덕분이었다. 그가 그린 각종 다양한 벌레들은 각자 생긴 대로의 매력을 한껏 뽐내는 모습 같기도 하다. 정정엽 작가의 안성 작업실은 떠돌이 작업실 생활 30여년 만에 발견된 곳이다. 자꾸 오르는 월세를 피해 작업실을 알아보던 중, 과거에 그의 작품을 구매했던 지인이 ‘살면서 집값을 갚는’ 좋은 조건으로 이곳을 정정엽에게 넘겨주었던 것이다. 작은 침실과 주방이 딸려 있는 이 집은 원래부터 거주용 작업실 용도로 만들어진 곳이었기에, 정정엽 작가에게는 운명적인 만남이 아닐 수 없었다. 1985년 대학 졸업 후 얻었던 혜화동 작업실로부터 현재 안성 작업실에 이르기까지 열다섯 번의 이사를 거쳤다.[2] 열다섯 번의 작업실 이사라니, 떠올리기만 해도 지긋지긋한데, 크고 작은 캔버스를 싸고 풀고 싸고 풀었을 그 세월은 정정엽의 말마따나 ‘인간사 진퇴양난’이었을 것이다. 먼 미래를 계획하기보다는 한 걸음 움직이면 딱 그만큼의 길이 생기는 현실적 조건 속에서 차선, 그도 안 되면 차차선을 찾아 끊임없이 궁리하는 과정이었다. 2009년 즈음에 그는 ‘더 이상 낯선 곳도 익숙한 곳도 없음’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2011년에 이르러서야 안착한 안성 미리내 작업실에서는 주변이 더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정착 2년 차에는 온갖 열매와 나물로 먹을 수 있는 식물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작업실을 둘러싼 모든 산을 한 번씩 다 올라갔다 왔고, 산으로 통하는 모든 길을 익힌 터라 자신만의 산책로를 한 시간, 두 시간 코스로 개발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정정엽 작가가 안성 작업실에 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정엽의 기동력은 앞서 킬리만자로 건에서 언급했듯이 홍길동 저리가라이다. 하지만 그의 발길이 닿는 곳에서는 반드시 무엇인가가 그려지고, 그 드로잉들이 작품이 되어 돌아오니, 정정엽의 작품을 사랑하는 감상자로서는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의 작업실은 안성 미리내를 거점으로 하여 더 큰 세상으로 확산되는 중일 수도 있겠다. /이윤희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1]김혜순 시인의 시집 『날개환상통』(2019)에 수록된 시. 이 시집은 한국 작품으로는 최초로 미국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시 부문상을 수상했다. 또한 1975년 출범한 협회상 사상 번역 시가 시 부문을 수상한 것도 처음이다.
[2] 작업실 이전의 과정은 정정엽이 출간한 『나의 작업실 변천사 1985~2017』(헥사곤, 2018)에 담겨 있다. 그는 2005년 청년 작가들의 스쾃(squat, 빈 장소를 점거하여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사용하는 일종의 점거 프로젝트)을 지지하면서 목동 예술인회관에서 일주일간 머물렀다. 이때 트레이싱지에 1985년부터 2005년에 이르는 작업실 변천사를 그렸고, 이후의 작업실 변천 과정들을 추가해 그렸다. 이 드로잉들은 2018년 청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부드러운 권력>전에 출품되어 대중에게 선보였다.
그는 올해 초 킬리만자로 정상 등반을 했을 정도로 산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눈을 비비며 정상 등반 확인증 사진을 전송받고서야 ‘아니, 선생님은 왜 또 위험하게 그런 험한 산을... 그런데 킬리만자로가 어디 있더라...’하고 검색을 해 보았다. 정정엽 작가가 올랐던 우후루 피크는 해발 5895m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으며 드넓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라고 한다. 바로 할 말을 잃었다.
김혜순 시인이 정정엽 작가를 떠올리며 썼던 시 <물구나무 팥>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정엽이는 집 떠나고 싶으면 등산용 배낭을 짊어지고 설거지를 한다. / 2층 마당으로 트렁크를 던지기도 한다.”[1] 그리하여 높이로 치자면 참으로 작가와 잘 어울리는 이 작업실은, 차로 들어가도 구불구불 좌우의 바퀴 앞이 닿는 곳을 확신하지 못한 채 긴장하며 들어가야 한다. 낭떠러지에 떨어질 것만 같은 기분으로 구석에 주차를 하고 현관을 열면, 또다시 높은 계단이 시작된다. 어떤 작가의 작업실이나 문을 열고 발을 디디면 그 자신의 작품이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법이지만, 정정엽 작가의 현관 계단 양쪽 벽에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이 걸려 있다. 정정엽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한 점 판매될 때마다 다른 작가의 작품을 한 점씩 구매한다. 혹은 젊디젊은 작가의 전시에서 예기치 않은 구매를 하기도 한다. 작품 컬렉션을 한다니 자금력의 여유가 상당한 작가인 것인가 오해가 발생될 수 있는 대목이지만, 그는 그야말로 허리띠를 졸라매 현 작업실의 잔금을 갚은 지도 얼마 되지 않는다. 이 계단 컬렉션은 다른 예술가들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자 성원의 마음을 담고 있다. 계단을 다 오르고 나면 넓은 작업실이 나온다. 전면에 두 개의 층을 이루며 걸려 있는 작품들이 보인다. 아래쪽에는 정정엽 작가의 가장 잘 알려진 팥 연작이 세 점 걸려 있다. 멀리서 보면 화산이 분출하는 것 같고 회오리바람이 치는 모습 같기도 하지만, 팥 알갱이 한 알 한 알이 모여 만든 광경이다. 그의 팥 알갱이들은 모이고 헤쳐 어느 때는 별처럼 빛나기도 하고 어느 때는 격렬하게 움직이기도 한다. 이 작품들은 삼십년간 다양하게 변주되었지만 그 어느 한 점도 비슷하지 않다.
벽면 위쪽에는 꽃이 핀 양파를 비롯해 싹이 난 감자와 마늘 등 식재료들(?)이 각자의 생명을 이어나가는 작품들이 걸려 있다. 정정엽 작가는 일찍이 '사대부가 난을 쳤다면 나는 파를 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 스스로 생명이면서도 우리를 살게 하는 식물들의 위대함이, 사대부가 애호하는 관념으로서의 식물보다 덜 위대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화업의 초기부터 콩팥과 나물 등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가로 길이가 2미터가 넘는 거대한 나물 더미는 마치 성인들처럼 후광이 빛나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모두 위대한 장면이다. 올봄에는 정정엽 작가가 겨우내 또다시 깜빡 잊고 있던 감자 상자가 생각나 열어 보았다. 감자싹이 그려진 미완성 작품 앞에 천을 펼쳐놓고 한 개씩 꺼내 보니, 닫힌 상자의 어둠 속에서도 어찌나 고운 색으로 길게 자라 있던지. 정작 감자는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쪼글쪼글 늙어 있었다.
2023년 개인전의 제목이었던 “모욕을 당한 자이면서 위대한” 자들 가운데는 싹이 튼 감자도 있었지만, 벌레와 나방들이 작품의 주인공이었다. 작업실의 한쪽 면의 커다란 유리창은 주변의 풍경을 시원하게 담지만, 여름밤에는 바로 그 창에 불빛을 향해 모여든 각종 벌레와 나방이 징그러운 배를 보여주면서 새카맣게 붙어 있다. 정정엽 작가에게도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던 각종 벌레들을 마주보며 관찰할 계기가 마련된 것은 안성 작업실의 큰 창 덕분이었다. 그가 그린 각종 다양한 벌레들은 각자 생긴 대로의 매력을 한껏 뽐내는 모습 같기도 하다. 정정엽 작가의 안성 작업실은 떠돌이 작업실 생활 30여년 만에 발견된 곳이다. 자꾸 오르는 월세를 피해 작업실을 알아보던 중, 과거에 그의 작품을 구매했던 지인이 ‘살면서 집값을 갚는’ 좋은 조건으로 이곳을 정정엽에게 넘겨주었던 것이다. 작은 침실과 주방이 딸려 있는 이 집은 원래부터 거주용 작업실 용도로 만들어진 곳이었기에, 정정엽 작가에게는 운명적인 만남이 아닐 수 없었다. 1985년 대학 졸업 후 얻었던 혜화동 작업실로부터 현재 안성 작업실에 이르기까지 열다섯 번의 이사를 거쳤다.[2] 열다섯 번의 작업실 이사라니, 떠올리기만 해도 지긋지긋한데, 크고 작은 캔버스를 싸고 풀고 싸고 풀었을 그 세월은 정정엽의 말마따나 ‘인간사 진퇴양난’이었을 것이다. 먼 미래를 계획하기보다는 한 걸음 움직이면 딱 그만큼의 길이 생기는 현실적 조건 속에서 차선, 그도 안 되면 차차선을 찾아 끊임없이 궁리하는 과정이었다. 2009년 즈음에 그는 ‘더 이상 낯선 곳도 익숙한 곳도 없음’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2011년에 이르러서야 안착한 안성 미리내 작업실에서는 주변이 더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정착 2년 차에는 온갖 열매와 나물로 먹을 수 있는 식물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작업실을 둘러싼 모든 산을 한 번씩 다 올라갔다 왔고, 산으로 통하는 모든 길을 익힌 터라 자신만의 산책로를 한 시간, 두 시간 코스로 개발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정정엽 작가가 안성 작업실에 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정엽의 기동력은 앞서 킬리만자로 건에서 언급했듯이 홍길동 저리가라이다. 하지만 그의 발길이 닿는 곳에서는 반드시 무엇인가가 그려지고, 그 드로잉들이 작품이 되어 돌아오니, 정정엽의 작품을 사랑하는 감상자로서는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의 작업실은 안성 미리내를 거점으로 하여 더 큰 세상으로 확산되는 중일 수도 있겠다. /이윤희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1]김혜순 시인의 시집 『날개환상통』(2019)에 수록된 시. 이 시집은 한국 작품으로는 최초로 미국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시 부문상을 수상했다. 또한 1975년 출범한 협회상 사상 번역 시가 시 부문을 수상한 것도 처음이다.
[2] 작업실 이전의 과정은 정정엽이 출간한 『나의 작업실 변천사 1985~2017』(헥사곤, 2018)에 담겨 있다. 그는 2005년 청년 작가들의 스쾃(squat, 빈 장소를 점거하여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사용하는 일종의 점거 프로젝트)을 지지하면서 목동 예술인회관에서 일주일간 머물렀다. 이때 트레이싱지에 1985년부터 2005년에 이르는 작업실 변천사를 그렸고, 이후의 작업실 변천 과정들을 추가해 그렸다. 이 드로잉들은 2018년 청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부드러운 권력>전에 출품되어 대중에게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