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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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산 흑돼지인데, 제주도에선 먹을 수 없다니"

최근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제주산 돼지고기를 판매하는 한 TV홈쇼핑 프로그램의 방송화면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제주산 흑돼지 모듬세트를 할인된 가격에 특별 판매하면서 '제주 및 도서·산간 배송 불가'란 자막이 달린 걸 이상하게 여긴 네티즌들이 많았다.
한 홈쇼핑 방송화면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한 홈쇼핑 방송화면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제주산 흑돼지를 정작 제주도민은 값 싸게 즐기지 못 하는 게 황당하다”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었다. 이 캡쳐 화면은 제주 일부 식당에서 기름이 가득한 돼지고기를 판매하면서 배짱영업을 하다가 사회적 파장이 커진 시점에 확산해 더 관심을 모았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상당량의 제주산 신선식품에 적용되는 독특한 유통 구조 때문이다. 돼지고기의 경우 흑돼지를 포함한 도내 돼지고기의 약 70%가 내륙으로 먼저 보내지고 있다는 게 지역 도매업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1+’ 혹은 1등급인 고품질의 돼지고기는 내륙에 있는 홈쇼핑 등 대형 유통업체가 대부분 선점해 납품받고 있다.

높은 등급의 제주산 돼지고기가 육지로 먼저 나가기 때문에 현지에서 질 좋은 고기를 구하려면 웃돈을 주고 사 먹어야 하는 게 웃지 못 할 현실이란 얘기다. 현재 제주도 내 9곳의 흑돼지 전문 식당에 고기를 납품하고 있다는 40대 도매업자 김모씨는 "도내에서 판매되는 흑돼지는 가격이 결코 내륙보다 싸지 않다"며 "가격 경쟁력을 갖춰 제주도보다 더 싸게 흑돼지를 판매하는 육지 식당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사진=게티이미지 뱅크
사진=게티이미지 뱅크
한 도내 양돈농가 관계자는 "백화점, 대형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도내 도매업자들보다 가져가는 물량이 훨씬 많다"며 "제주도에 있는 질 좋은 돼지고기 대부분은 내륙에 있는 유통업체들에 먼저 납품되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돼지고기뿐만 아니라 소고기 등 다른 품목도 사정이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제주도민이 홈쇼핑이나 인터넷을 통해 질 좋은 제주산 흑돼지를 구입하려면 비용을 추가로 내야 하는 일도 자주 발생한다. 온라인 쇼핑 플랫폼에 등록된 '제주산 흑돼지 모듬세트' 중 상당량은 제주도로 배송 시 3000~5000원의 추가 배송료가 붙는다. 내륙으로 나간 제주산 고기가 웃돈이 붙어 다시 제주로 돌아오는 셈이다.

생산량 적은 흑돼지…제주로 돌아오면 '비싼 몸'

제주산 흑돼지가 유전적 요인 때문에 높은 등급을 받는 비율이 일반 돼지보다 훨씬 낮다는 점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다. 제주 흑돼지는 일반 돼지보다 사육 기간이 길다 보니 지방 두께가 두꺼운 특징이 있다.

고품질 고기의 비중이 작으니 흑돼지 가격이 원천적으로 비싸질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제주특별차지도에 따르면 제주산 흑돼지 1+ 등급의 비율은 전체의 11.1%로, 일반 돼지 20.7%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3년째 제주도에 거주하고 있는 20대 정모씨는 "처음 제주도에 왔을 때 흑돼지 가격이 생각보다 비싼 것을 보고 놀랐다. 요즘은 식당에선 아예 사 먹지 않는 편"이라며 "그나마 마트가 저렴한 편이긴 하지만, 서울에 있는 마트에서 파는 백돼지 가격과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제주에서 논란이 된 흑돼지 삼겹살 (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제주에서 논란이 된 흑돼지 삼겹살 (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일각에선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된 제주도 일부 식당의 '비계 고기' 논란도 이 같은 유통구조 때문에 벌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원가를 낮추기 위해 도내에서 납품을 받은 게 원인 아니냐는 추측이다. 이에 대해 제주특별자치도 농축산식품국 관계자는 "최근의 논란은 유통 과정에 원인이 있다기보다는 고기를 손질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