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바이올린 여제' 힐러리 한
‘바이올린 여제’ 힐러리 한은 천재가 보여줄 법한 삶을 살아왔다. 세 살 때 바이올린을 처음 시작해 열 살 때 줄리아드 음대보다 더 들어가기 힘들다는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했다.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바이올리니스트로 대중 무대에 데뷔한 것은 열두 살 때.

커티스 시절에는 졸업을 3년이나 미뤄가면서 독일어·프랑스어를 완벽히 익혔고, 일본어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셰익스피어에 심취한 그의 제안으로 커티스에 연기 수업까지 생겼다. 세계 최고 권위 음악상인 그래미 어워즈의 최우수 기악독주자(바이올린 부문) 세 번 수상이 그의 연주 실력을 웅변해준다.

올해 44세인 그는 30년 이상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힘은 천부적 재능에 더해 특유의 성실함을 바탕으로 한 연습이다. 인스타그램에 ‘#100daysofpractice’로 100일간 연속 연습하는 동영상을 올리는 프로젝트를 지속하고 있다. 무대 뒤 분장실에서, 낯선 호텔 방에서, 두 딸과 보내는 어질러진 거실에서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영상들이다. 그렇게 100일 연속 연습 영상이 벌써 7시즌째나 된다. 팬들이 여기에 호응해 같은 해시태그로 단 게시물도 80만 건이나 된다.

그는 “무대 위에서 솔리스트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결과가 아니라 무대 아래에서 매일 연습으로 시간을 보내는 연주자의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연습이 삶의 일부로 체화되면 어떤 상황이 와도 두렵지 않게 된다. 힐러리 한이 갑작스러운 인후통과 고열에 시달린 피아니스트 손열음 대타 제안을 ‘why not’이라며 흔쾌히 수락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는 27일 발간될 한국경제신문의 문화 예술 전문 매거진 ‘아르떼’의 창간호 커버 스토리 주인공은 힐러리 한이다. 힐러리 한이 지난 5월 9~10일 서울 시립교향악단과의 협연에서 손열음 대타로 무대에 오른 뒷이야기와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을 위한 멘토링 동행 취재기 등이 담겨 있다. 대가는 ‘공연을 위한 연습’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서 연습’하는 사람임이 느껴진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