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스공사 사장이 어제 “차입에 따른 이자비용만 하루 47억원”이라며 정부에 가스요금 인상을 촉구했다. 현재 13조5000억원에 달하는 미수금이 연말에는 14조원을 넘을 것이라고도 했다. 가스공사는 원가보다 싸게 가스를 공급하면서 손실분을 ‘나중에 받을 돈’, 즉 미수금으로 회계처리한다. 그래서 재무제표만 보면 막대한 이익을 내는 것 같지만 착시효과일 뿐 실제로는 부실이 쌓이고 있다.

한국전력 사장도 얼마 전 “한전 노력만으로 대규모 누적 적자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했다”며 전기요금 인상을 호소했다. 한전은 최근 3개 분기 연속 흑자를 냈지만 2021~2023년 국제 연료비 급등기에 쌓인 누적 적자가 40조원이 넘는다. 부채가 200조원에 달하고 지난해 이자비용만 4조5000억원, 하루 120억원이 넘었다.

한전과 가스공사의 부실이 이렇게 커진 건 정부가 제때 필요한 만큼 요금을 올려주지 않은 탓이다. 문재인 정부는 두 회사의 요금 인상 요구를 대부분 묵살했다. 현 정부는 그나마 요금을 몇 차례 올렸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찔끔찔끔 올렸을 뿐이다.

국민 부담을 고려해야 하는 정부의 고충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런 상황을 방치할 순 없다. 국가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이 커지고 결국 나중에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한전의 설비투자 감소로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에 필수인 안정적 전기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우려가 크다. 자금 압박에 시달린 한전과 가스공사가 회사채를 마구 찍어내는 바람에 대기업들도 회사채 발행에 차질을 빚는 등 자금시장이 교란된 게 불과 1~2년 전이다. 한국 증시에 대한 신뢰도에도 부정적이다. 지난해 한전 주요 주주인 영국계 펀드가 ‘원가 이하로 전기를 팔아 대규모 적자를 내는데도 왜 요금을 못 올리느냐’는 취지의 항의 서한을 한전에 보낸 일도 있었다.

물론 한전과 가스공사도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부실은 자구 노력만으로 털어낼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서민과 자영업자에게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전기·가스요금을 현실화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