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드보르자크(Antonín Leopold Dvořák)를 좋아한 것은 그가 서양음악사 안에서 정신이 건강한 사람 중 하나여서가 아니었다(차이콥스키, 슈만, 말러, 모차르트, 바그너 등등에 비교하자면 말이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음악 인생에서 의미 있는 순간에 그의 음악은 항상 옆에 있곤 했다. 최근 몇 개월 사이만 해도 그의 교향곡 7번, 8번, 9번 그리고 첼로협주곡 등을 연달아 지휘했을 정도로 매우 자주 만나는 작곡가이다.

어렸던 30여년 전, 아빠가 CD플레이어가 달린 층층의 인켈 전축을 집에 들여놓으셨었다. 그때 사은품으로 딸려온 10장의 클래식 음악 CD 중 처음으로 개시한 곡이 내가 처음으로 만난 오케스트라 작품이며, 수년 동안 주구장창 들었던 곡인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이었다.

▶▶▶(관련 칼럼) "미국을 보지 않았다면…'교향곡 신세계'는 쓸 수 없었다"
드보르자크 © WWW.ANTONIN-DVORAK.CZ
드보르자크 © WWW.ANTONIN-DVORAK.CZ
시간이 지나 대학생이 되어 바로 대학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를 맡게 되었는데 대학에 들어와 처음으로 가진 연주회서 지휘한 곡은 이미 정해져 있던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6번이었다. 내가 익히 들어왔던 곡과는 조금 결이 달랐던 이 작품은 나에게 체코와 슬라브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하였다. 그 관심이 조금 엉뚱한 곳으로 벗어나긴 하였지만….

대학 시절인 2000년대 초에는 특히 대학가에서 세계맥주 전문점이 유행했었다. 대부분이 국적을 알 수 없는 인테리어로 바(Bar) 중앙에는 얼음 더미 속에 여러 종류의 외국 맥주병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때 특히 조금 가격이 나갔었고 인기가 있던 맥주가 하얀 라벨에 빨간 글씨로 새겨진 ‘버드와이저(Budweiser)’였다.

다른 나라 맥주를 처음 접한 2001년의 나는 종업원의 설명대로 한동안 그 맥주가 체코의 맥주라고 알고 있었다. 한동안 돈이 생기면 세계맥주 전문점에서 버드와이저로 유럽의 감성을 마신다고 폼을 내다가 문득 본 뒷 라벨에 원산지가 미국이라는 것을 알고 적지 않게 놀랐었다. 독일 출신의 양조업자가 체코의 체스케부데요비체, 독어로 부트바이스(Budweis)에서 배운 공법으로 미국에서 성공을 하는데 그 이름이 미국식 발음인 ‘버드와이저(Budweiser)’였다.
버드와이저(Budweiser) 맥주
버드와이저(Budweiser) 맥주
체코에서는 현재 국영양조장의 맥주 ‘부트바이저 부트바(Budweiser Budvar)’로 체코의 국민 맥주로 사랑받고 있다. 그러나 상표권 분쟁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는지 일부 지역에서는 원지역명을 체코어로 그대로 사용하여 ‘부데요비치 부트바’로 판매된다. 개인적으로 오랜 시간이 지나 체코에서 마신 체코 맥주 ‘부트바이저’는 미국의 ‘버드와이저’와는 전혀 다른 맥주였다. 발효 시 높은 알코올 함량을 갖도록 만든 후 저장 시에 정제수를 섞어 알코올 도수를 조절하는 하이그래비티 공법으로 한 미국의 버드와이저와 전통적인 양조방식으로 양조하는 체코의 부트바이저와는 이미 서로 다른 길의 맥주이다.

체코의 부트바이저는 어찌 보면 단순할 정도로 아름다운 금빛을 띤다. 풍부한 거품을 지나 금빛 물을 마시며 느끼는 첫 느낌은 오랜 숙성기간을 거쳐서인지 탄산의 쏘는 맛 대신 은은함이 있다. 또한 체코의 민속음악의 우수에 찬 활기처럼 홉의 쌉쌀함과 맥아의 달콤함이 있다. 마지막으로 남는 여운은 마치 체코의 한적한 마을을 여행하고 숙소에 돌아와 석양을 바라보며 마시는 맥주처럼 행복하고 깔끔한 맛이 있다. 주관적이지만 매우 체코다운, 체코를 담은 맥주이다.
부트바이저 부트바(Budweiser Budvar) 맥주
부트바이저 부트바(Budweiser Budvar) 맥주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쩜 이리 드보르자크와 닮았을까? 체코의 유산을 간직하고 슬라브 민속 음악의 향기를 간직한 그의 음악에는 귀에 쏙쏙 들어오는 단순할 정도로 아름다운 선율, 색채감 있는 풍부한 화음과 보헤미아 민족의 색깔이 물든 향수가 녹아있다. 나는 이따금 연주회 프로그램에 작곡가들의 세계적 성공 바로 이전의 작품들을 올리곤 한다. 나는 대가들의 성공 이전의, 즉 성공을 가져다준 작품들이 가진 그들의 날것의 모습에 매력을 느낀다.

아직 원숙미와 대중이 요구하는 맛은 적지만 젊었던 그들이 하고자 했던 음악과 열정 그리고 희망이 느껴진다. 1873~1874년 이 시기의 드보르자크에게는 새로운 인생의 대문이 열리는 시기였다. 결혼도 하고 오스트리아 국가 장학금을 수여 받으며 세상에 한 발 더 작곡가로서 알려진다. 오랜 멘토이자 지원군이었던 심사위원 요하네스 브람스와의 만남도 이때였다.

그 시작을 가져다준 그의 날것의 모습이 담긴 교향곡 3번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그때의 젊은 작곡자들이 그랬듯이 드보르자크 역시 바그너의 영향을 받아 바그너의 색깔이 아직 나오는 이 혈기 왕성한 작품에는 그 색깔을 뛰어넘는 젊은 드보르자크의 희망과 부트바이저의 황금빛과 같은 화사함이 담겨있다.

당시 체코의 거장인 스메타나(Bedřich Smetana)의 지휘로 이루어진 그의 교향곡 3번의 초연은 그에게는 매우 뜨거운 순간이었을 것이다. (재미나게도 스메타나는 맥주 양조업자의 장남이었다) 부트바이저의 행복하고 깔끔한 여운처럼 드보르자크는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하고 소박한 삶을 추구한듯하다. 그러한 따듯함이 묻어나오는 그의 음악들을 나는 좋다.

오늘 찬사를 받아도 내일 조롱을 받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해도 우쭐대며 자만심을 가질 수 없다. 다만 진실한 마음으로 곡을 쓰며 최선을 다할 따름이다.
-안토닌 드보르자크


지휘자 지중배

[ 지휘자 이르지 벨로흘라베크와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드보르자크 교향곡 3번 3악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