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금리를 비롯한 대부분 금융 변수는 해당 국가의 ‘머큐리(mercury, 펀더멘털)’와 마스(mars, 정책) 요인을 고려해 예측한다. 하지만 통화 교환 비율인 환율은 상대국의 양대 요인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원달러환율의 경우 우리보다 미국의 머큐리와 마스 요인이 더 크게 영향을 미친다.

우려되는 것은 연초 예측 기관이 발표한 환율 자료를 보면 미국의 마스 요인에 치중해 달러 가치가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 점이다. 지난해 12월 점도표와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기자회견을 감안하면 올해 미국의 기준금리는 최대 여섯 차례까지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예측 기관은 Fed의 금리인하가 본격화되는 올 하반기에는 달러인덱스 80, 엔달러환율 125엔, 원달러환율 1200원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연초 발표한 환율 자료가 잉크도 마르기 전에 과도한 금리인하 기대에 따른 ‘숙취(hangover)’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Fed의 1선 목표인 물가지표에 헤드 페이크 현상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3.4%로 한 달 전 3.2%보다 높게 나오자 과도한 금리인하 기대가 약화되고 있다.

머큐리 요인에서도 과도한 금리인하 기대는 이해되지 않는다.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은 2%대 후반으로 예상돼 달러인덱스를 구성하는 모든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질적으로도 완전고용하에 물가가 통제되고 연착륙이 가능해 달러인덱스 구성 국가에 비해 가장 건전한 것으로 평가된다.

마스 요인도 금리를 크게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Fed의 통화정책 잣대가 되는 근원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여전히 목표치에 비해 높은 여건에서 금리를 과도하게 내리면 ‘볼커의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볼커의 실수는 1980년대 초 폴 볼커 Fed 의장이 물가가 다 잡히기 전에 금리를 내려 다시 오른 현상을 말한다.

탈달러화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지만 법정통화(legal tender)로 현재 달러화를 대신할 수 있는 통화는 없다. 지난해 11월 결제통화에서 위안화 비중은 4.61%까지 높아졌지만 달러화의 47.08%, 유로화의 22.95%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각국 외환 보유액에서 위안화 비중은 결제통화 비중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위안화 비중 제고 속도는 올해를 계기로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공산당이 인민은행(PBOC)을 포함해 모든 금융사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위안화 결제권의 중앙은행 격인 PBOC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통화 주권을 놓고 다른 참가국 간 마찰이 불가피해 탈위안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대체 통화도 마찬가지다. 미국 증권거래소(SEC)의 상장지수펀드(ETF) 승인은 비트코인의 자산 등 유틸리티 기능만 인정했을 뿐 화폐 기능까지 인정한 것은 아니다. SEC의 승인이 궁극적으로 화폐 기능을 안정시키기 위한 수순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비트코인을 법화로 사용한 엘살바도르의 실패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매우 어려운 문제다.

Fed는 가능한 한 디지털 화폐(CBDC) 도입을 늦추고 있다. 비트코인과 가상화폐에 대한 인식도 부정적이라 앞으로 CBDC를 발행할 경우 독립적으로 한다는 방침이다. 위안화와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가 대체해나가면 달러 가치가 급락할 것이라는 시각에 한계가 있어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환율 리스크, 경고등 켜질까
최근 대내외 환율 변수는 1년 5개월 전과 너무나 유사하다. 원달러환율뿐 아니라 양대 대외환율 변수인 달러인덱스와 위안화환율은 각각 105대, 7.1위안대로 같다. 오히려 코스피 지수는 300포인트 정도 더 올라 일부 경제 각료가 국내 금융시장은 문제없다는 자화자찬에 귀가 솔깃할 만큼 외형상으로는 착각을 들게 할 정도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지난 1년 5개월 동안 외국인 자금은 추세적으로 들어온 반면, 내국인 자금은 빠져나갔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대책이 나온 지난 1월 중순 이후에는 외국인 자금 유입액과 내국인 자금 이탈액이 거의 일치한다. 국내 금융시장에 손님은 들어오고 주인은 나가는 자본 공동화와 함께 윔블던 현상이 재현되고 있다.

윔블던 현상이 심했던 외환위기 때와 다른 점이 바로 이 대목이다. 1990년대 후반에는 해외 부동산투자는 국내 기업과 금융사의 해외 점포 마련 등을 위한 실수요 외에는 없었다. 개인의 해외 주식투자는 생각지도 못하던 때였다. 최근처럼 자본의 공동화가 수반되지 않고 외국인 자금이 들어오는 여부에 따라 윔블던 현상이 나타났다.

윔블던 현상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순기능으로는 ▲금융 서비스 개선 ▲금융 제도 및 감독 기능 선진화 ▲대외신인도 제고 등을 꼽을 수 있다. 영국의 경우 1986년 금융 빅뱅을 단행한 이후 초기 단계에서 역기능이 우려됐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순기능이 나타나면서 국제 금융시장의 중심지로 다시 태어났다.

포트폴리오의 위상이 선진국인 영국과 달리 우리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상 신흥국으로 떨어진 지 10년이 됐다. 최근에 윔블던 현상이 무서운 것은 포트폴리오상 지위가 신흥국이면서 자본의 공동화까지 수반돼 역기능이 가장 심하게 나타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했기 때문이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4·10 총선에서 ‘야대여소’의 입법적 한계를 깨지 못한 정책 여건에서 외국인 자금은 금융 수익을 최우선시함에 따라 현 정부의 정책에 비협조적일 때가 많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우리 경제 주권의 약화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금융과 실물 간 따로 노는 이분법 여건에서는 외국인 자금은 우리 경제와 함께 발전하는 공생적 투자가 되지 못하고 국부 유출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윔블던 현상이 심화될 때마다 국부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뉴질랜드의 ‘키위 뱅크’ 같은 금융사를 설립하거나 국민연금(NPC) 등 공적 연기금이 대신 수행해야 한다는 요구가 끊이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의 경영권도 위협받을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펀드가 능동적으로 수익을 창출해나가는 행동주의 움직임이 강화되는 추세에서는 종전과 같은 수준의 외국인 비중이라 하더라도 기업이 느끼는 경영권 위협 정도는 더 높아진다. 이 밖에 소득 불균형을 심화시켜 신용불량, 자살 등 사회병리 현상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서든스톱, 즉 잘 들어오던 외국인 자금이 갑자기 중단되고 곧바로 유출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경우다. 최근처럼 국제 간 자금 흐름이 각종 캐리트레이드 자금에 의해 주도되는 여건에서는 우리 주가와 경기 향방, 그리고 원달러환율이 1400원을 넘어설 것인가는 서든스톱 발생 여부와 현 정부의 대응에 따라 좌우될 확률이 높다.
환율 리스크, 경고등 켜질까
현시점에서 우리 외환당국이 원달러환율의 움직임을 돌려놓는 역행적 시장 개입을 하지 않는 한 외국인 자금의 서든스톱이 발생할 확률은 낮다. 하지만 외국인 자금이 유입될수록 주가 저평가 정도와 환차익 소지가 감소돼 이미 고수익을 얻은 스마트성 외국인 자금이 차익을 실현해 선도적으로 이탈될 소지도 만만치 않다.

국내 금융시장을 유일하게 받쳐주는 외국인 자금이 이탈세로 돌아서면 주가가 급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면서 갑자기 대혼란에 빠지는 ‘싱크홀형 푹꺼짐 위기’가 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정책당국자는 손 놓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조기경보체제(EWS)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부터 검토하고 선제적 위기 방지책을 강구해야 할 때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