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돌이표 일상 탈출…도쿄 '스위트' 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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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엔 없는 도쿄 럭셔리 호텔5
한국엔 없는 도쿄 럭셔리 호텔5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사는 곳을 바꾸라”는 말이 있다. 공간이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문장이 아닐까. 우리가 ‘호캉스’를 떠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인지 모른다. 단 하루일지라도, 정갈한 공간에서 말끔히 정돈된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
이런 갈망을 안은 채 일본 도쿄로 향했다. 지금 도쿄는 럭셔리 호캉스의 성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 숙박료가 100만원에 육박하는 고급 호텔이 속속 문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명품 브랜드 불가리의 플래그십부터 일본 로컬 브랜드인 호시노야까지 브랜드의 스펙트럼도 넓다. 1박에 200만원, 지구 반대편으로도 날아갈 수 있는 예산으로 ‘겨우’ 일본으로 향한 까닭이다. 5일 동안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반복하며 한국에 없는 다섯 개 브랜드 호텔을 찾았다.
첫 목적지는 고민의 여지 없이 자누도쿄다. 일본은 물론 세계에서 주목하는 신상 호텔이다. 호텔계의 ‘럭셔리 끝판왕’으로 인정받는 아만이 새롭게 선보이는 자매 브랜드 자누의 세계 첫 지점이기 때문이다. 장장 30년에 걸친 재개발 끝에 지난 1월 완공된 아자부다이힐스의 유일한 호텔이다. 도쿄를 뒤흔든 스케일의 부동산 프로젝트인 만큼 내로라하는 호텔 브랜드들에서 러브콜을 보냈고, 아자부다이힐스의 선택은 아만이었다. 호시노야도쿄에선 도심과의 완전한 단절을, 진정한 ‘콰이어트 럭셔리’를 지향한다면 에디션도쿄도라노몬을 추천한다.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여행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OMO5고탄다로 가보자. 시부야와 긴자 등 도심에서 15분만 가면 한적한 주택가 사이 숨어든 호텔을 만나볼 수 있다.그림같은 복도 지나 나무 아래서 브런치 '소울 테라피'
식도락 즐기고 정원 나들이
아자부다이힐스 야경 '환상'
스파·복싱 웰니스 시설 강점
'영혼 없음' 병도 저절로 치유 자누는 산스크리트어로 ‘영혼’을 뜻한다. 이곳에 머무는 이들에게 물리적인 휴식을 넘어, 영혼이 차오르는 휴식을 선사하고 싶다는 소망을 담은 이름이 아닐까 싶다.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 일상적으로 쓰이는 ‘영혼 없음’ 병도 이곳에서 치유할 수 있을까? 호텔을 한 바퀴 둘러보며 느낀 것은 활기다. 화사한 분재, 싱싱한 해산물 쇼케이스가 놓인 레스토랑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로비와 식음업장에서 내려다보이는 아자부다이힐스의 풍경도 한몫한다. 라이브 연주와 플리마켓이 열리는 공원과 소풍을 즐기는 사람들의 활기가 호텔 안으로 이어진다.
이 생동감은 식도락에서도 이어진다. 주홍, 초록, 노랑 등 선명한 색을 아낌없이 써 알록달록한 도시락 앞에서는 탄성이 터진다. 진중한 무게감이 돋보이는 ‘언니’ 아만과는 상반되는 쾌활함이다.
자누가 특별히 공들인 것은 웰니스 시설이다. 무려 4개 층에 걸쳐 스파, 피트니스센터, 수영장을 조성했다. 도쿄에 단 3대밖에 없다는 운동 기구 ‘아웃레이스’를 보유하고, 복싱 링까지 설치했다. 투숙객을 위한 무료 클래스도 마련했다. 코치의 1 대 1 강습으로 열린 아웃레이스 수업은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를 연상케 할 만큼 고강도로 진행됐다. 겨우 30분의 수업을 마치고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지만, 머리는 도파민으로 차오른다. 이것이 자누가 영혼을 충만하게 채우는 방식인가 보다. 이곳의 진가는 해가 지면 드러난다. 명품숍들의 화려한 불빛이 꺼지고, 정원을 가득 채웠던 인파가 모두 사라지고 난 후다. 고요한 아자부다이힐스를 나만의 정원으로 독점할 수 있다. 도쿄타워의 조명을 가로등 삼아 건축가 토머스 헤더윅이 공들여 만든 곡선을 여유로이 감상하는 호사가 주어진다.
정원을 한 바퀴 둘러보고 온 사이 객실의 조명이 어스름히 바뀌어 있다. 편안히 잠들 수 있도록 객실을 정리해주는 턴다운 서비스다. 침대 머리맡에는 생수가, 시트 위에는 파자마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보드라운 리넨 소재로, 새 옷처럼 반듯하다. 낮에 호텔을 안내해주는 직원에게 질문했었다. 왜 굳이 관리하기 까다로운 소재를 고른 것이냐고. 호텔 직원이 답했다. “그것이 손님을 향한 정성”이라고. 이렇게 일상에 정성을 다하는 법을 배운다. 이것이 호텔이 선물하는 럭셔리다.신발 벗으면 시대극 입장…우드향 솔솔 수묵화 같은 방에서 休~
호시노야도쿄에서의 시간은 한 편의 연극과 같다. 일본 시대극 출연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다. 로비의 육중한 측백나무 문을 열고 들어서니 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인 긴 복도가 펼쳐진다. 기모노와 나막신으로 전통 의상을 갖춰 입은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신발을 벗었다. 호텔 전체 바닥에는 다다미가 깔려 있다. 다다미를 맨발로 내딛는 순간, 낯선 공간에 대한 긴장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묘한 해방감까지 들 정도였다. 다다미에서 풍기는 고소한 나무 향은 이 순간을 공감각적으로 각인시켰다.
호시노야가 설계한 일종의 의식. 신발을 벗음으로써 바깥 공간, 일상과의 단절을 유도한다. 이런 장치는 하나 더 있다. 바로 ‘뷰’가 없다는 것이다. 호시노야의 모든 창문은 창호지로 가려져 있다. 일부러 열지 않으면 바깥 풍경을 볼 수 없다. 바깥에서 비치는 빛에 따라 창호지 위로 드리우는 그림자는 방 안에 한 폭의 수묵화를 빚어낸다. 단절이 선사하는 것은 오롯한 휴식이다. 숨 가쁜 도시의 속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호흡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호시노야도쿄는 투숙객이 일본 전통 온천 숙소인 료칸의 문화를 제대로 체험하기를 바랐다. 좌식으로 설계한 방, 전통 무늬와 소재를 적용한 객실도 그렇다. 꼭대기 층에는 야외 온천도 있다. 지역 특산물로 객실에 상을 차려주는 것도 료칸 문화에서 들여왔다. 호시노야 역시 숙박 요금에 저녁 식사와 아침 식사가 포함된 ‘올인클루시브’다. 도쿄 여행이 처음이어서 도시를 구경하고 싶다고 해도 이곳에 묵을 때만큼은 온전히 투숙에 집중하는 편을 추천한다. 가격은 23만3000엔(약 203만원)부터."이게 끝?"…볼수록 "슈퍼 쿨", 군더더기 뺀 콰이어트 럭셔리
"간결한 게 아름답다"가 철학
객실가구 모두 흰색으로 통일
온전히 쉼에 집중하도록 배려 럭셔리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호화롭고 번쩍이며 과시하는 것이 미덕인 시절은 지나고, 뽐내지 않는 ‘콰이어트 럭셔리’의 시간이 왔다. 에디션은 ‘요즘 럭셔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에디션은 ‘부티크 호텔’이라는 개념을 처음 알린 호텔 건축가 이안 슈레거가 설립한 브랜드다. 30여 개 호텔 브랜드를 거느린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에서도 최상위 등급에 든다. 세계 곳곳에 20여 개 지점이 있는데, 일본 도쿄에만 두 곳을 뒀다.
에디션의 브랜드 철학은 간결한 것이 아름답다는 뜻의 ‘Less is more’다. 객실에 들어서면 이 문장의 의미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침대와 테이블, 소파 등 모든 가구를 흰색으로 통일했고 모든 요소가 군더더기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맞물린다. 깨끗하다 못해 새침하다. 객실에서는 쉼 자체에 집중하라는 의도다.
침대 위 흐트러진 갈색 담요만이 인간미를 전한다. 슈레거의 재치가 묻어나는 소품이다. 어린 시절 엄마의 구겨진 코트를 만지며 안정을 찾던 기억을 살려 객실이 집처럼 포근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공용 공간은 객실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생동감 넘치는 색을 과감하게 쓰고, 식물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세계적 건축가 구마 겐고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다. 대나무를 시그니처 재료로 사용하는 그는 호텔 로비를 식물로 가득 채웠다. 긴자에서는 호텔 외벽을, 도라노몬에서는 로비를 식물로 잔뜩 꾸몄다.
분명 에디션은 기존 호텔과 문법이 다르다. 취향별로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다. 코니 송 에디션도쿄도라노몬 객실디렉터가 들려준 한 부자(父子)의 일화가 이를 보여준다. 리츠칼튼 VIP인 50대 남성이 20대 아들과 에디션을 찾았다. 전통적인 호텔에 익숙한 아버지는 미니멀한 객실을 보고 “뭐가 이렇게 없냐”며 불만을 토로했고, 아들은 “슈퍼 쿨”하다며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호텔에서만 시간을 보냈다고.
이곳에서 절제의 아름다움을 읽어낸다면 에디션과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취향과 영 맞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다. 때로 호텔은 배움의 장소가 되기도 하니까. 새로운 세대의 럭셔리에 대한 경험의 지평만큼은 확실히 넓어질 것이다. 가격은 15만800엔(약 131만원)부터."저녁은 '아오몽' 튀김 어때요?"…하루 묵고 맛집지도 득템
로비엔 현지인 맛집지도
발품팔아 엄선한 30여곳
웨이팅 패스 티켓도 제공 고탄다라는 곳을 아시는지. 관광객이 주로 여행하는 시부야, 긴자 등 도심 한가운데에서 지하철로 15분 정도 떨어진 동네다. 오피스가 밀집한 시나가와와 조용한 주택가 사이에 있는 이곳에서는 좀처럼 외지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여기에 5월 문을 연 신상 호텔이 있다. 호시노리조트의 엔트리급 호텔 OMO5다. 캐리어 펴기에도 마땅치 않은 여느 도쿄 호텔과 달리 객실 크기가 넉넉하고 통창으로 시내가 시원스레 내려다보인다.
이곳의 진짜 강점은 콘텐츠에 있다. OMO5는 투숙객이 현지를 살아보듯이 여행할 수 있도록 장려한다. 호텔이 자리한 지역의 특색을 반영해 지점마다 다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고탄다 지점은 미식 기행을 주제로 삼았다. 직장인이 퇴근 후 술잔을 기울이는 가게가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 덕에 맛이 뛰어나면서도 가격은 저렴한 가게가 많다. 로비에는 커다란 맛집 지도가 붙어 있다. 호텔 스태프들이 개관 전부터 인근 가게를 모두 찾아다닌 끝에 진짜 맛집만 엄선했다. 30여 개 가게마다 추천 이유와 메뉴 등을 꼼꼼히 적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호텔에 상주하는 가이드인 ‘레인저’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레인저 유리 씨에게 30여 곳 중 최고의 가게 한 곳을 골라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전갱이 튀김인 아지후라이를 전문으로 하는 이자카야 ‘아오몽’을 추천했다. 직접 다녀온 감상도 곁들였다. “촉촉하게 튀긴 생선살의 결이 감동적”이라는 생생한 설명을 들으니 가지 않을 수가. 아오몽은 현지인 사이에서 워낙 인기가 많아 긴 줄을 서야 하지만 투숙객에게는 ‘익스프레스 티켓’ 찬스가 있다. 매달 식당 한두 곳과 제휴해 대표 메뉴를 맛볼 수 있게 했다. 2200엔(약 1만9000원)으로 저렴하기도 하고 티켓 구매자는 웨이팅 없이 바로 입장할 수 있다.
티켓을 사서 찾은 아오몽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부터 놀라움의 연속이다. 10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한 번, 퇴근 시간 전인데도 빼곡한 사람들에게 한 번,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또 한 번. 그야말로 현지인만의 맛집이라는 방증이다. 익스프레스 티켓에는 애피타이저 안주, 큼직한 아지후라이 네 조각, 생맥주 한 잔이 포함돼 있다. 맛은? 추천받은 그대로, 감동이 밀려왔다.
보물 같은 맛집을 현지인들에게 둘러싸여 경험하며 며칠간이라도 도쿄 시민처럼 살아보듯 여행하고 싶다면 이곳이 정답이다. 가격은 3만4800엔(약 30만원)부터.앞마당엔 휴양림, 뒷마당엔 빌딩숲…저커버그도
아만도쿄(사진)는 2023년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호텔을 가리는 ‘월드 50 베스트 호텔’ 어워즈에서 5위를 기록했다. 아만은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지만, 럭셔리 호텔을 이야기할 때 첫손에 꼽히는 브랜드다. 프라이빗한 공간 설계와 시간을 가리지 않는 밀착 서비스를 제공해 재벌과 셀러브리티들이 아만의 골수팬을 뜻하는 ‘아만 정키’를 자처한다. 미국 전 대통령들이나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등이 대표적인 아만 정키다.
28층의 문이 열리는 순간 탄성이 터졌다. 시선을 압도하는 것은 건물 6층 높이(30m)의 천장. 일본 전통 조명에서 모티브를 딴 흰색 천장에는 그야말로 ‘장중하다’는 수식어가 어울린다. 벽과 바닥은 이와 대조되는 짙은 흑색의 화강암으로 이뤄져 있는데, 한가운데 만들어진 작은 연못과 고고하게 심어져 있는 한 그루의 소나무는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완성한다. 마치 ‘여기서부터는 아만의 세계’라고 선포하는 듯하다.
아만도쿄에서는 이와 같이 독특한 분위기가 감돈다. 대표적인 것이 숲이다. 일본 전통 가옥에서 정원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그러나 호텔이 자리한 오테마치는 금융회사들이 밀집한 거리로, 공원은커녕 듬성한 가로수가 전부다.케리 힐은 호텔만을 위한 숲을 만들기로 했다. 매우 ‘아만다운’ 방식으로. 도쿄 교외에 부지를 구입해 나무와 식물을 심고 3년간 가꾼 뒤 이를 통째로 옮겨온 것. 그 덕분에 도심 한가운데서도 숲속으로 휴양을 떠나온 듯 푸르름에 둘러싸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곳곳에 걸린 예술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흙과 지푸라기 등 자연을 주재료로 작업하는 일본 작가 하사도 슈헤이의 예술 작품은 일본 특유의 소박함과 미니멀리즘을 뜻하는 ‘와비사비’를 담아낸다.
이는 객실도 예외는 아니다. 창호지로 된 미닫이문, 전통 가옥의 주재료인 물푸레나무와 음나무로 구성한 공간은 따뜻한 느낌을 준다. 다만 무엇 하나 튀는 것이 없다. 조화롭지만 특별히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요소가 없다. 그럴 때 눈에 띈 것이 있으니, 모든 가구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널찍한 창을 향해서다. 창밖으로는 도쿄의 풍경이 한가득 펼쳐진다. 앞으로는 일왕의 거처가 있는 거대한 숲이, 뒤로는 빼곡한 고층 빌딩숲이 펼쳐진다. 맑은 날에는 저 멀리 후지산까지 육안으로 볼 수 있다.
미니멀한 객실과 화려한 풍경의 대조는 역설적으로 양쪽 모두를 도드라지게 만든다. 아만에서는 번잡한 도시로 나갈 필요가 없다. 나의 방 안에 도시를 통째로 들여놨으니. 그것이 아만에서 누릴 수 있는 럭셔리다. 가격은 22만엔(약 191만원)부터.
도쿄=김은아 한경매거진 기자 una.kim@hankyung.com
이런 갈망을 안은 채 일본 도쿄로 향했다. 지금 도쿄는 럭셔리 호캉스의 성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 숙박료가 100만원에 육박하는 고급 호텔이 속속 문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명품 브랜드 불가리의 플래그십부터 일본 로컬 브랜드인 호시노야까지 브랜드의 스펙트럼도 넓다. 1박에 200만원, 지구 반대편으로도 날아갈 수 있는 예산으로 ‘겨우’ 일본으로 향한 까닭이다. 5일 동안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반복하며 한국에 없는 다섯 개 브랜드 호텔을 찾았다.
첫 목적지는 고민의 여지 없이 자누도쿄다. 일본은 물론 세계에서 주목하는 신상 호텔이다. 호텔계의 ‘럭셔리 끝판왕’으로 인정받는 아만이 새롭게 선보이는 자매 브랜드 자누의 세계 첫 지점이기 때문이다. 장장 30년에 걸친 재개발 끝에 지난 1월 완공된 아자부다이힐스의 유일한 호텔이다. 도쿄를 뒤흔든 스케일의 부동산 프로젝트인 만큼 내로라하는 호텔 브랜드들에서 러브콜을 보냈고, 아자부다이힐스의 선택은 아만이었다. 호시노야도쿄에선 도심과의 완전한 단절을, 진정한 ‘콰이어트 럭셔리’를 지향한다면 에디션도쿄도라노몬을 추천한다.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여행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OMO5고탄다로 가보자. 시부야와 긴자 등 도심에서 15분만 가면 한적한 주택가 사이 숨어든 호텔을 만나볼 수 있다.
그림같은 복도 지나 나무 아래서 브런치 '소울 테라피'
자누도쿄
식도락 즐기고 정원 나들이아자부다이힐스 야경 '환상'
스파·복싱 웰니스 시설 강점
'영혼 없음' 병도 저절로 치유 자누는 산스크리트어로 ‘영혼’을 뜻한다. 이곳에 머무는 이들에게 물리적인 휴식을 넘어, 영혼이 차오르는 휴식을 선사하고 싶다는 소망을 담은 이름이 아닐까 싶다.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 일상적으로 쓰이는 ‘영혼 없음’ 병도 이곳에서 치유할 수 있을까? 호텔을 한 바퀴 둘러보며 느낀 것은 활기다. 화사한 분재, 싱싱한 해산물 쇼케이스가 놓인 레스토랑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로비와 식음업장에서 내려다보이는 아자부다이힐스의 풍경도 한몫한다. 라이브 연주와 플리마켓이 열리는 공원과 소풍을 즐기는 사람들의 활기가 호텔 안으로 이어진다.
이 생동감은 식도락에서도 이어진다. 주홍, 초록, 노랑 등 선명한 색을 아낌없이 써 알록달록한 도시락 앞에서는 탄성이 터진다. 진중한 무게감이 돋보이는 ‘언니’ 아만과는 상반되는 쾌활함이다.
자누가 특별히 공들인 것은 웰니스 시설이다. 무려 4개 층에 걸쳐 스파, 피트니스센터, 수영장을 조성했다. 도쿄에 단 3대밖에 없다는 운동 기구 ‘아웃레이스’를 보유하고, 복싱 링까지 설치했다. 투숙객을 위한 무료 클래스도 마련했다. 코치의 1 대 1 강습으로 열린 아웃레이스 수업은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를 연상케 할 만큼 고강도로 진행됐다. 겨우 30분의 수업을 마치고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지만, 머리는 도파민으로 차오른다. 이것이 자누가 영혼을 충만하게 채우는 방식인가 보다. 이곳의 진가는 해가 지면 드러난다. 명품숍들의 화려한 불빛이 꺼지고, 정원을 가득 채웠던 인파가 모두 사라지고 난 후다. 고요한 아자부다이힐스를 나만의 정원으로 독점할 수 있다. 도쿄타워의 조명을 가로등 삼아 건축가 토머스 헤더윅이 공들여 만든 곡선을 여유로이 감상하는 호사가 주어진다.
정원을 한 바퀴 둘러보고 온 사이 객실의 조명이 어스름히 바뀌어 있다. 편안히 잠들 수 있도록 객실을 정리해주는 턴다운 서비스다. 침대 머리맡에는 생수가, 시트 위에는 파자마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보드라운 리넨 소재로, 새 옷처럼 반듯하다. 낮에 호텔을 안내해주는 직원에게 질문했었다. 왜 굳이 관리하기 까다로운 소재를 고른 것이냐고. 호텔 직원이 답했다. “그것이 손님을 향한 정성”이라고. 이렇게 일상에 정성을 다하는 법을 배운다. 이것이 호텔이 선물하는 럭셔리다.
신발 벗으면 시대극 입장…우드향 솔솔 수묵화 같은 방에서 休~
호시노야도쿄
호시노야도쿄에서의 시간은 한 편의 연극과 같다. 일본 시대극 출연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다. 로비의 육중한 측백나무 문을 열고 들어서니 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인 긴 복도가 펼쳐진다. 기모노와 나막신으로 전통 의상을 갖춰 입은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신발을 벗었다. 호텔 전체 바닥에는 다다미가 깔려 있다. 다다미를 맨발로 내딛는 순간, 낯선 공간에 대한 긴장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묘한 해방감까지 들 정도였다. 다다미에서 풍기는 고소한 나무 향은 이 순간을 공감각적으로 각인시켰다.호시노야가 설계한 일종의 의식. 신발을 벗음으로써 바깥 공간, 일상과의 단절을 유도한다. 이런 장치는 하나 더 있다. 바로 ‘뷰’가 없다는 것이다. 호시노야의 모든 창문은 창호지로 가려져 있다. 일부러 열지 않으면 바깥 풍경을 볼 수 없다. 바깥에서 비치는 빛에 따라 창호지 위로 드리우는 그림자는 방 안에 한 폭의 수묵화를 빚어낸다. 단절이 선사하는 것은 오롯한 휴식이다. 숨 가쁜 도시의 속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호흡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호시노야도쿄는 투숙객이 일본 전통 온천 숙소인 료칸의 문화를 제대로 체험하기를 바랐다. 좌식으로 설계한 방, 전통 무늬와 소재를 적용한 객실도 그렇다. 꼭대기 층에는 야외 온천도 있다. 지역 특산물로 객실에 상을 차려주는 것도 료칸 문화에서 들여왔다. 호시노야 역시 숙박 요금에 저녁 식사와 아침 식사가 포함된 ‘올인클루시브’다. 도쿄 여행이 처음이어서 도시를 구경하고 싶다고 해도 이곳에 묵을 때만큼은 온전히 투숙에 집중하는 편을 추천한다. 가격은 23만3000엔(약 203만원)부터.
"이게 끝?"…볼수록 "슈퍼 쿨", 군더더기 뺀 콰이어트 럭셔리
에디션도쿄도라노몬
"간결한 게 아름답다"가 철학객실가구 모두 흰색으로 통일
온전히 쉼에 집중하도록 배려 럭셔리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호화롭고 번쩍이며 과시하는 것이 미덕인 시절은 지나고, 뽐내지 않는 ‘콰이어트 럭셔리’의 시간이 왔다. 에디션은 ‘요즘 럭셔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에디션은 ‘부티크 호텔’이라는 개념을 처음 알린 호텔 건축가 이안 슈레거가 설립한 브랜드다. 30여 개 호텔 브랜드를 거느린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에서도 최상위 등급에 든다. 세계 곳곳에 20여 개 지점이 있는데, 일본 도쿄에만 두 곳을 뒀다.
에디션의 브랜드 철학은 간결한 것이 아름답다는 뜻의 ‘Less is more’다. 객실에 들어서면 이 문장의 의미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침대와 테이블, 소파 등 모든 가구를 흰색으로 통일했고 모든 요소가 군더더기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맞물린다. 깨끗하다 못해 새침하다. 객실에서는 쉼 자체에 집중하라는 의도다.
침대 위 흐트러진 갈색 담요만이 인간미를 전한다. 슈레거의 재치가 묻어나는 소품이다. 어린 시절 엄마의 구겨진 코트를 만지며 안정을 찾던 기억을 살려 객실이 집처럼 포근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공용 공간은 객실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생동감 넘치는 색을 과감하게 쓰고, 식물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세계적 건축가 구마 겐고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다. 대나무를 시그니처 재료로 사용하는 그는 호텔 로비를 식물로 가득 채웠다. 긴자에서는 호텔 외벽을, 도라노몬에서는 로비를 식물로 잔뜩 꾸몄다.
분명 에디션은 기존 호텔과 문법이 다르다. 취향별로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다. 코니 송 에디션도쿄도라노몬 객실디렉터가 들려준 한 부자(父子)의 일화가 이를 보여준다. 리츠칼튼 VIP인 50대 남성이 20대 아들과 에디션을 찾았다. 전통적인 호텔에 익숙한 아버지는 미니멀한 객실을 보고 “뭐가 이렇게 없냐”며 불만을 토로했고, 아들은 “슈퍼 쿨”하다며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호텔에서만 시간을 보냈다고.
이곳에서 절제의 아름다움을 읽어낸다면 에디션과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취향과 영 맞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다. 때로 호텔은 배움의 장소가 되기도 하니까. 새로운 세대의 럭셔리에 대한 경험의 지평만큼은 확실히 넓어질 것이다. 가격은 15만800엔(약 131만원)부터.
"저녁은 '아오몽' 튀김 어때요?"…하루 묵고 맛집지도 득템
OMO5고탄다
로비엔 현지인 맛집지도발품팔아 엄선한 30여곳
웨이팅 패스 티켓도 제공 고탄다라는 곳을 아시는지. 관광객이 주로 여행하는 시부야, 긴자 등 도심 한가운데에서 지하철로 15분 정도 떨어진 동네다. 오피스가 밀집한 시나가와와 조용한 주택가 사이에 있는 이곳에서는 좀처럼 외지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여기에 5월 문을 연 신상 호텔이 있다. 호시노리조트의 엔트리급 호텔 OMO5다. 캐리어 펴기에도 마땅치 않은 여느 도쿄 호텔과 달리 객실 크기가 넉넉하고 통창으로 시내가 시원스레 내려다보인다.
이곳의 진짜 강점은 콘텐츠에 있다. OMO5는 투숙객이 현지를 살아보듯이 여행할 수 있도록 장려한다. 호텔이 자리한 지역의 특색을 반영해 지점마다 다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고탄다 지점은 미식 기행을 주제로 삼았다. 직장인이 퇴근 후 술잔을 기울이는 가게가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 덕에 맛이 뛰어나면서도 가격은 저렴한 가게가 많다. 로비에는 커다란 맛집 지도가 붙어 있다. 호텔 스태프들이 개관 전부터 인근 가게를 모두 찾아다닌 끝에 진짜 맛집만 엄선했다. 30여 개 가게마다 추천 이유와 메뉴 등을 꼼꼼히 적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호텔에 상주하는 가이드인 ‘레인저’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레인저 유리 씨에게 30여 곳 중 최고의 가게 한 곳을 골라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전갱이 튀김인 아지후라이를 전문으로 하는 이자카야 ‘아오몽’을 추천했다. 직접 다녀온 감상도 곁들였다. “촉촉하게 튀긴 생선살의 결이 감동적”이라는 생생한 설명을 들으니 가지 않을 수가. 아오몽은 현지인 사이에서 워낙 인기가 많아 긴 줄을 서야 하지만 투숙객에게는 ‘익스프레스 티켓’ 찬스가 있다. 매달 식당 한두 곳과 제휴해 대표 메뉴를 맛볼 수 있게 했다. 2200엔(약 1만9000원)으로 저렴하기도 하고 티켓 구매자는 웨이팅 없이 바로 입장할 수 있다.
티켓을 사서 찾은 아오몽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부터 놀라움의 연속이다. 10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한 번, 퇴근 시간 전인데도 빼곡한 사람들에게 한 번,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또 한 번. 그야말로 현지인만의 맛집이라는 방증이다. 익스프레스 티켓에는 애피타이저 안주, 큼직한 아지후라이 네 조각, 생맥주 한 잔이 포함돼 있다. 맛은? 추천받은 그대로, 감동이 밀려왔다.
보물 같은 맛집을 현지인들에게 둘러싸여 경험하며 며칠간이라도 도쿄 시민처럼 살아보듯 여행하고 싶다면 이곳이 정답이다. 가격은 3만4800엔(약 30만원)부터.
앞마당엔 휴양림, 뒷마당엔 빌딩숲…저커버그도
아만도쿄
아만도쿄(사진)는 2023년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호텔을 가리는 ‘월드 50 베스트 호텔’ 어워즈에서 5위를 기록했다. 아만은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지만, 럭셔리 호텔을 이야기할 때 첫손에 꼽히는 브랜드다. 프라이빗한 공간 설계와 시간을 가리지 않는 밀착 서비스를 제공해 재벌과 셀러브리티들이 아만의 골수팬을 뜻하는 ‘아만 정키’를 자처한다. 미국 전 대통령들이나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등이 대표적인 아만 정키다.28층의 문이 열리는 순간 탄성이 터졌다. 시선을 압도하는 것은 건물 6층 높이(30m)의 천장. 일본 전통 조명에서 모티브를 딴 흰색 천장에는 그야말로 ‘장중하다’는 수식어가 어울린다. 벽과 바닥은 이와 대조되는 짙은 흑색의 화강암으로 이뤄져 있는데, 한가운데 만들어진 작은 연못과 고고하게 심어져 있는 한 그루의 소나무는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완성한다. 마치 ‘여기서부터는 아만의 세계’라고 선포하는 듯하다.
아만도쿄에서는 이와 같이 독특한 분위기가 감돈다. 대표적인 것이 숲이다. 일본 전통 가옥에서 정원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그러나 호텔이 자리한 오테마치는 금융회사들이 밀집한 거리로, 공원은커녕 듬성한 가로수가 전부다.케리 힐은 호텔만을 위한 숲을 만들기로 했다. 매우 ‘아만다운’ 방식으로. 도쿄 교외에 부지를 구입해 나무와 식물을 심고 3년간 가꾼 뒤 이를 통째로 옮겨온 것. 그 덕분에 도심 한가운데서도 숲속으로 휴양을 떠나온 듯 푸르름에 둘러싸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곳곳에 걸린 예술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흙과 지푸라기 등 자연을 주재료로 작업하는 일본 작가 하사도 슈헤이의 예술 작품은 일본 특유의 소박함과 미니멀리즘을 뜻하는 ‘와비사비’를 담아낸다.
이는 객실도 예외는 아니다. 창호지로 된 미닫이문, 전통 가옥의 주재료인 물푸레나무와 음나무로 구성한 공간은 따뜻한 느낌을 준다. 다만 무엇 하나 튀는 것이 없다. 조화롭지만 특별히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요소가 없다. 그럴 때 눈에 띈 것이 있으니, 모든 가구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널찍한 창을 향해서다. 창밖으로는 도쿄의 풍경이 한가득 펼쳐진다. 앞으로는 일왕의 거처가 있는 거대한 숲이, 뒤로는 빼곡한 고층 빌딩숲이 펼쳐진다. 맑은 날에는 저 멀리 후지산까지 육안으로 볼 수 있다.
미니멀한 객실과 화려한 풍경의 대조는 역설적으로 양쪽 모두를 도드라지게 만든다. 아만에서는 번잡한 도시로 나갈 필요가 없다. 나의 방 안에 도시를 통째로 들여놨으니. 그것이 아만에서 누릴 수 있는 럭셔리다. 가격은 22만엔(약 191만원)부터.
도쿄=김은아 한경매거진 기자 una.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