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재정 집중 투입에도 가계 실질소득 '뚝'…재정수지는 '악화'
'반도체 투자', 'R&D 예산 회복' 등 재정 소요 줄줄이…재정당국 '고심'
역대급 정부지출에도 더딘 민생 회복…재정 소요는 '눈덩이'
올해 초 민생 회복을 위해 역대급 규모의 재정이 투입됐지만 가구 소득이 줄고 소비도 정체하는 등 여전히 민생 회복은 더딘 모양새다.

올해 재정 여력이 일부 소진된 상태에서 3월 법인세수 '쇼크'까지 겹치며 재정수지 적자 폭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여기에 더해 반도체·연구개발(R&D)·저출생 등 사회구조적 현안에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재정 소요는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재정 당국으로서는 건전재정 기조를 지키면서 민생 회복과 중장기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쉽지 않은 고차 방정식에 맞닥뜨린 셈이다.

역대급 정부지출에도 더딘 민생 회복…재정 소요는 '눈덩이'
◇ '역대 최대' 나랏돈 풀었지만…가구 실질소득 7년 만에 최대 감소
26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초 체감경기 개선을 위해 재정을 집중적으로 쏟아부었지만 1분기 가계 살림살이는 오히려 더 악화했다.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의 '깜짝 성장'과 온도 차가 크다.

물가 상승분만큼 소득이 늘지 못하면서 1분기 가구 실질소득은 7년 만에 가장 큰 폭(-1.6%)으로 줄었다.

실질 소비지출은 제자리걸음 했다.

지출액 자체는 3.0% 늘었지만 결국 모두 물가 상승분이었던 셈이다.

지출을 꽁꽁 묶었음에도 처분가능소득보다 소비지출이 큰 적자가구 비율(26.8%)은 2019년 1분기(31.5%) 이후 5년 만에 최대치로 올라섰다.

1분기 악화한 가계 살림살이는 연초부터 '민생 회복'을 목표로 역대급 재정을 쏟아부은 정부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올해 3월 정부 총지출은 85조1천억원으로 월간 기준 역대 최대치였다.

올해 1~3월 누적 기준(212조2천억원)으로도 가장 많다.

역대급 재정 집중집행은 좋지 않은 세수 상황과 맞물리면서 재정 수지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1∼3월 국세 수입(84조9천억원)은 3월 법인세 수입이 5조6천억원 줄어든 영향으로 1년 전보다 2조2천억원 감소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세수 비중이 큰 대기업이 작년 영업손실로 올해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않은 영향이 컸다.

결국 정부의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3월까지 75조3천억원 적자를 기록하며 같은 달 기준 역대 최대치를 찍었다.

역대급 정부지출에도 더딘 민생 회복…재정 소요는 '눈덩이'
◇ 26조원 반도체 산업 지원…"지출 구조조정 필요"
민생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R&D·반도체·저출생·연금개혁 등 산적한 중장기 과제는 재정 당국의 고민을 더 무겁게 한다.

모두 상당 수준의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지만 더는 시기를 늦출 수 없는 과제들이다.

정부는 지난 달 '내년 역대 최대 수준의 R&D 예산'을 약속한 데 이어 지난 23일 8조원의 재정 지원을 포함한 26조원 규모의 반도체 생태계 종합 지원 방안도 내놨다.

가칭 저출생부를 신설해 출산율 제고 정책에도 속도를 낼 것이라고 공언했다.

내년 예산안에 반영될 이런 과제들은 상당 부분 고강도 지출 구조조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더 이상의 재정 수지 악화를 막겠다는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에 따른 것이다.

가령 반도체 사업 재정 지원분 8조원 중 내년 예산 반영분은 같은 수준의 지출 구조조정이 선행돼야 확보할 수 있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내년 신규 사업을 위해 필요 예산만큼의 지출 구조조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은 어느 사업이든 적용되는 대원칙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역대급 정부지출에도 더딘 민생 회복…재정 소요는 '눈덩이'
지출 구조조정은 효율적인 예산안 편성을 위해 필요한 절차 중 하나다.

하지만 올해는 재정 불확실성이 커진 탓에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은 '허리띠 졸라매기'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정부가 할 일이 태산이지만 재원이 한정되어 있어 마음껏 돈을 쓰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더 허리띠를 졸라매는 건정재정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출 구조조정은 이해당사자들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하면 잡음이 뒤따를 수밖에 없어 예산 당국으로서는 쉽지 않은 작업이다.

지난해 R&D 예산 삭감 과정에서도 과학기술 현장 연구자들의 의견이 배제됐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역대급 정부지출에도 더딘 민생 회복…재정 소요는 '눈덩이'
◇ "중장기 과제 지원해 세수 확충해야…재정 투입 효과 극대화 필요"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서 '건전재정' 목표를 유지하면서 다양한 재정 소요에 대응하려면 재정 투입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과제를 발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령 R&D 예산을 투입하더라도 민간 매칭을 확대하면 민간 소비·투자를 견인해 '체감 경기 개선→세수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중장기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사업 중 재정 집행 효과가 큰 세부 사업에 먼저 재정을 투입하면 단기적인 경기 회복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력이 부족한 재정으로 민생 회복 등 당면 현안과 첨단산업·저출산 투자 등 중장기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수출 중심의 경기 회복세가 뚜렷해진 만큼 물가 상승을 유발할 수 있는 대규모·직접적 재정 지원보다는 R&D·저출생 투자 등으로 성장 기반을 확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단기적으로 돈을 풀어서 내수를 키우느냐, R&D 등 중장기 과제를 지원하냐는 결국 선택의 문제"라며 "현재로서는 중장기 과제를 지원해 세수를 확충하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