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서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만 빼고 다 지워버릴테야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arte] 구본숙의 Behind the Scenes
오케스트라의 어깨,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종신 악장 박지윤
오케스트라의 어깨,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종신 악장 박지윤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종신 악장으로 오케스트라뿐 아니라 실내악 연주자나 솔리스트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향 정기공연에서 오케스트라 객원 악장으로 다시 만났는데 여전히 반갑고 정겨웠다.
박지윤을 만났을 때 갑자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삽화가 장자크 상페(Jean-Jacques Sempé)의 그림이 생각났다. 상페는 악단 연주자를 동경하던 어린 시절의 꿈을 좋아하는 연주자들을 그리는 걸로 대신하면서 삽화가의 길로 들어섰고 유명해진 작가이다. 나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꼬마 니콜라> 책을 보면서 상페를 알게 되었는데, 음악과 관련된 그림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액자에 넣어 장식용으로 만들어 놓곤 했다. 데생에 담백하게 채색한 것도 맘에 들고, 그림마다 공감을 이끌어내는 포인트가 있었다.
또한 삽화가의 작업답게 그의 그림에는 눈길을 끄는 부분을 정해 놓고 나머지는 여백으로 처리하는 대담함이 있다. 사진에 빗대자면 작가가 주인공이나 강조하고픈 오브제를 클로즈업하면서 나머지 부분들을 아웃 포커싱시켜서 집중도를 확 없애버리는 느낌이랄까. 그냥 순수하게 음미하게 되는 그림들이다. 상페가 1978~2009년에 걸쳐 그린 미국 <뉴요커>지의 표지화를 모아놓은 작품집 <뉴욕의 상페>를 구입한 적이 있다. 작가는 파리에서 <뉴요커> 잡지를 보면서 꿈을 키우는 동시에, 거기 실린 풍자화의 ‘감각적인 생략법’(말없이 말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상페 역시 노력을 통해 작품을 여러 차례 비워내고 채우는 과정을 거치면서 대사 없이 말하는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의 그림 속 등장인물들은 내가 사는 세상 속 주변 인물 또는 나 같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본질을 투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뉴욕 건물 외부계단 및 테라스에서 홀로 악기를 연주하고, 수영장이 있는 마당에서 트롬본을 부는 두 남자, 연미복 차림의 무대 뒤 단원들, 피아노 레슨을 받는 아이와 그 옆에 나란히 앉아서 기다리는 아이들…. 이런 소소한 이야기들이 나는 진심으로 좋다.
지금은 말할 것도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박지윤의 연주를 보고 있으면 늘 자신감, 당당함이 느껴지곤 했다. 여름날 그늘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과 닮았다고 할까. 그녀의 연주는 거침이 없어서 늘 개운하게 들린다. 항상 배시시 웃으며 상냥한 눈웃음을 짓던 그녀가 어린 시절의 모습 그대로 이제는 성숙한 어머니이자 오케스트라의 악장이 되었다. 오케스트라 악장은 영어로는 콘서트마스터인데 이탈리아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어깨’라고 불린다고 한다. 왜 악장은 항상 바이올리니스트가 맡는 것인지 궁금했는데, 17세기 말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르칸젤로 코렐리가 오케스트라 맨 앞에 앉아 바이올린을 켜다가 이따금 활을 지휘봉처럼 사용하면서 악단을 이끌어갔다고 한다. 이후 전문 지휘자가 생기고 수석 바이올리니스트는 그대로 악장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박지윤이 2018년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악장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다. 정명훈 지휘자가 이끌었던 오케스트라여서인지 이름도 익숙했는데 거기에 박지윤이 종신 악장이라니, 대단한 일이었다. 이때 이후로 그 오케스트라를 대할 땐 악장 자리부터 먼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한국에 객원 악장으로 온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감사함과 반가움도 잠시, 박지윤에게 아무도 없는(다시 말해 오케스트라 의자와 보면대만 있는) 무대 위에 악장 자리에서 바이올리니스트가 혼자 연습하고 있는 장면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사진은 찰나의 예술이기 때문에 불현듯 머리에 떠오르는 영감을 재빨리 실행에 옮길 필요가 있다. 결과가 어찌 되는 간에 말이다. 박지윤도 흔쾌히 동의했지만, 리허설이 끝난 후 무대 위를 소등하기 전까지 몇 분 남지 않았는데 무대에서 빨리 철수하지 않는 연주자들이 있어 원하는 이미지를 담지는 못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전에 통보한 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아이디어는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일단 아쉬운 대로 급하게 객석과 무대에서 망원렌즈로 촬영했지만 상페의 그림에서 받았던 그 느낌은 찾을 수 없었다. 또 기회가 오겠지 하며 아쉬움을 달래던 도중, 파리에 가게 된다면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습공간에서 촬영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괜찮은 생각 같았다. 즉흥적인 데가 다분한 내게는 사진이라는 예술이 딱 어울린다. 결과를 확인하기도 쉽고, 설령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게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안 되면 말지 뭐’ 같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일단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최선을 다해 구체화하려고 애쓰기는 한다. 그런 자세가 아니라면 오던 아이디어도 도로 달아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박지윤은 2004년 티보 바르가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과 청중상을 수상하면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수차례 금호아트홀에서 공연을 해왔고, 실력 있는 연주자로 명성이 자자하다. 활동을 열심히 하다가 어느 핸가 프랑스에 있을 때 어깨 부상으로 몇 달간 여행을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살아가다 보면 몸이나 마음이 신호를 보내는 때가 온다. 이런 신호는 무시하지 않고 잘 해독해야 한다. 연주를 하다 보면 특정한 자세에서 비롯하는 직업병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런 직업병이 생기지 않도록 평소에 관리하는 게 최선이겠지만 일단 생겼다 싶으면 재빨리 대처해야 한다. 휴식을 취하면서 집중적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얘기다. 연주자로서 먼 길을 가는 도중에 잠깐 휴게소에 들러 한숨 돌리기도 하고 연료를 새로 채운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인생의 정류장은 앞으로 더 남았을 테니…. 몸과 마음을 잘 추슬러내어 다시 무대로 복귀한 박지윤이 앞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기 바란다. 박지윤은 2024년에 서거 100주년을 맞이하는 프랑스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1845~1924)에 남다른 애정이 있다고 한다. 나 역시 포레의 음악을 좋아하는데, 특히 ‘꿈을 꾼 후에’라는 곡이 마음에 들어 종종 듣곤 한다. 원래는 가곡이지만 실내악으로 편곡해 연주하는 경우도 많은데 나는 둘 다 좋다. 여행 때 차곡차곡 쌓은 흥미로운 순간을 포착한 사진 속으로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곡이다. 낭만적이면서도 섬세하고 우아한 악상이 달콤하고 즐거웠던 여행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 혹시 박지윤도 그런 기분을 느끼는 건 아닐까. 다음에 만나면 한번 물어봐야겠다.
[박지윤 바이올린 리사이틀: 포레 서거 100주년 기념 '꿈을 꾼 후에' 공연 중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1번 가장조 Op. 13']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 이방인으로 지낸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견디지 못하고 향수병에 걸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렇다 해서 비난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를 견뎌내는 사람은 전보다 더욱 강해지고 풍요로워지는 법이다. 파리에 정착한 박지윤은 이제 한낱 이방인이 아니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역사적인 증인이자 원동력이 되었다. 그녀가 앞으로도 오케스트라의 어깨이자 심장으로서 지휘자와 단원들 사이를 멋지게 연결해 주리라 기대해 본다.
구본숙 사진작가
또한 삽화가의 작업답게 그의 그림에는 눈길을 끄는 부분을 정해 놓고 나머지는 여백으로 처리하는 대담함이 있다. 사진에 빗대자면 작가가 주인공이나 강조하고픈 오브제를 클로즈업하면서 나머지 부분들을 아웃 포커싱시켜서 집중도를 확 없애버리는 느낌이랄까. 그냥 순수하게 음미하게 되는 그림들이다. 상페가 1978~2009년에 걸쳐 그린 미국 <뉴요커>지의 표지화를 모아놓은 작품집 <뉴욕의 상페>를 구입한 적이 있다. 작가는 파리에서 <뉴요커> 잡지를 보면서 꿈을 키우는 동시에, 거기 실린 풍자화의 ‘감각적인 생략법’(말없이 말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상페 역시 노력을 통해 작품을 여러 차례 비워내고 채우는 과정을 거치면서 대사 없이 말하는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의 그림 속 등장인물들은 내가 사는 세상 속 주변 인물 또는 나 같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본질을 투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뉴욕 건물 외부계단 및 테라스에서 홀로 악기를 연주하고, 수영장이 있는 마당에서 트롬본을 부는 두 남자, 연미복 차림의 무대 뒤 단원들, 피아노 레슨을 받는 아이와 그 옆에 나란히 앉아서 기다리는 아이들…. 이런 소소한 이야기들이 나는 진심으로 좋다.
지금은 말할 것도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박지윤의 연주를 보고 있으면 늘 자신감, 당당함이 느껴지곤 했다. 여름날 그늘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과 닮았다고 할까. 그녀의 연주는 거침이 없어서 늘 개운하게 들린다. 항상 배시시 웃으며 상냥한 눈웃음을 짓던 그녀가 어린 시절의 모습 그대로 이제는 성숙한 어머니이자 오케스트라의 악장이 되었다. 오케스트라 악장은 영어로는 콘서트마스터인데 이탈리아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어깨’라고 불린다고 한다. 왜 악장은 항상 바이올리니스트가 맡는 것인지 궁금했는데, 17세기 말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르칸젤로 코렐리가 오케스트라 맨 앞에 앉아 바이올린을 켜다가 이따금 활을 지휘봉처럼 사용하면서 악단을 이끌어갔다고 한다. 이후 전문 지휘자가 생기고 수석 바이올리니스트는 그대로 악장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박지윤이 2018년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악장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다. 정명훈 지휘자가 이끌었던 오케스트라여서인지 이름도 익숙했는데 거기에 박지윤이 종신 악장이라니, 대단한 일이었다. 이때 이후로 그 오케스트라를 대할 땐 악장 자리부터 먼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한국에 객원 악장으로 온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감사함과 반가움도 잠시, 박지윤에게 아무도 없는(다시 말해 오케스트라 의자와 보면대만 있는) 무대 위에 악장 자리에서 바이올리니스트가 혼자 연습하고 있는 장면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사진은 찰나의 예술이기 때문에 불현듯 머리에 떠오르는 영감을 재빨리 실행에 옮길 필요가 있다. 결과가 어찌 되는 간에 말이다. 박지윤도 흔쾌히 동의했지만, 리허설이 끝난 후 무대 위를 소등하기 전까지 몇 분 남지 않았는데 무대에서 빨리 철수하지 않는 연주자들이 있어 원하는 이미지를 담지는 못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전에 통보한 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아이디어는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일단 아쉬운 대로 급하게 객석과 무대에서 망원렌즈로 촬영했지만 상페의 그림에서 받았던 그 느낌은 찾을 수 없었다. 또 기회가 오겠지 하며 아쉬움을 달래던 도중, 파리에 가게 된다면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습공간에서 촬영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괜찮은 생각 같았다. 즉흥적인 데가 다분한 내게는 사진이라는 예술이 딱 어울린다. 결과를 확인하기도 쉽고, 설령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게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안 되면 말지 뭐’ 같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일단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최선을 다해 구체화하려고 애쓰기는 한다. 그런 자세가 아니라면 오던 아이디어도 도로 달아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박지윤은 2004년 티보 바르가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과 청중상을 수상하면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수차례 금호아트홀에서 공연을 해왔고, 실력 있는 연주자로 명성이 자자하다. 활동을 열심히 하다가 어느 핸가 프랑스에 있을 때 어깨 부상으로 몇 달간 여행을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살아가다 보면 몸이나 마음이 신호를 보내는 때가 온다. 이런 신호는 무시하지 않고 잘 해독해야 한다. 연주를 하다 보면 특정한 자세에서 비롯하는 직업병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런 직업병이 생기지 않도록 평소에 관리하는 게 최선이겠지만 일단 생겼다 싶으면 재빨리 대처해야 한다. 휴식을 취하면서 집중적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얘기다. 연주자로서 먼 길을 가는 도중에 잠깐 휴게소에 들러 한숨 돌리기도 하고 연료를 새로 채운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인생의 정류장은 앞으로 더 남았을 테니…. 몸과 마음을 잘 추슬러내어 다시 무대로 복귀한 박지윤이 앞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기 바란다. 박지윤은 2024년에 서거 100주년을 맞이하는 프랑스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1845~1924)에 남다른 애정이 있다고 한다. 나 역시 포레의 음악을 좋아하는데, 특히 ‘꿈을 꾼 후에’라는 곡이 마음에 들어 종종 듣곤 한다. 원래는 가곡이지만 실내악으로 편곡해 연주하는 경우도 많은데 나는 둘 다 좋다. 여행 때 차곡차곡 쌓은 흥미로운 순간을 포착한 사진 속으로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곡이다. 낭만적이면서도 섬세하고 우아한 악상이 달콤하고 즐거웠던 여행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 혹시 박지윤도 그런 기분을 느끼는 건 아닐까. 다음에 만나면 한번 물어봐야겠다.
[박지윤 바이올린 리사이틀: 포레 서거 100주년 기념 '꿈을 꾼 후에' 공연 중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1번 가장조 Op. 13']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 이방인으로 지낸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견디지 못하고 향수병에 걸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렇다 해서 비난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를 견뎌내는 사람은 전보다 더욱 강해지고 풍요로워지는 법이다. 파리에 정착한 박지윤은 이제 한낱 이방인이 아니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역사적인 증인이자 원동력이 되었다. 그녀가 앞으로도 오케스트라의 어깨이자 심장으로서 지휘자와 단원들 사이를 멋지게 연결해 주리라 기대해 본다.
예술가의 진짜 작품은 그가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다.릭 루빈 <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 중
구본숙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