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의 만남과 헤어짐에는 나름의 순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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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조원경의 책 경제 그리고 삶
이디스 워튼 <순수의 시대>
이디스 워튼 <순수의 시대>
소설 순수의 시대(The Age of Innocence)가 걸그룹 '뉴진스(NewJeans)'의 노래 '버블검(Bubble gum)' 뮤직비디오에서 민지가 읽고 있는 책으로 화제가 되었다.
하이브와 어도어 민희진 대표 간 법적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뉴진스 멤버들이 법원에 탄원서를 냈다. 민 대표는 글로벌 스타로 부상한 뉴진스를 탄생시킨 주역이다. ‘뉴진스 맘’으로 불린 민 대표의 해임을 만류하는 입장을 탄원서에 담은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민 대표는 대중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간파하는 감각적인 디자이너 출신으로 유명하다.
그간 뉴진스가 K팝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을 들었다. 민 대표의 감성과 하이브 자본 같은 어른들이 만들어낸 세계도 한몫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뉴진스 멤버들의 티 없는 순수함이지 않았을까. 외국 시장에서 K팝의 강점 중 하나는 무해한 순수에 있다. 그런데 순수하지 않은 자본의 의미가 도드라지면 K팝의 손익계산서에 문제가 생긴다. 실제 꾸며서 돈을 번다고 하더라도 모습은 순수하게 비춰줘야 한다는 말이다. 자본에 숨겨진 순수의 의미를 이 기회를 통해 되새겨 보며 순수의 시대를 음미해 본다.
영어단어를 한국말로 바꾸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문맥을 봐야 알 수 있다. 하긴 우리말도 그렇다. 누군가가 “순진하긴”이라고 말하면 비꼬는 말이 된다. 반면 순수하다고 하면 대게 좋은 말로 들린다. 영어 단어 ‘Innocence’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법률 용어로는 죄가 없음을 의미하는데 가끔은 무지함, 천진난만함을 내포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설 제목으로 사용하면 좀 헷갈리는 게 사실이다.
여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한 소설이 있다. 1870년대 뉴욕 상류층의 위선과 허영을 날카롭게 비판한 풍자소설이기도 하다. 읽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각자의 감상 대목은 충분히 다를 수 있다. 퓰리처 수상작으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다. 전 시대를 아우르는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이 매우 진지하게 느껴져 영화로도 개봉했다. 상류층 출신으로 1921년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 이디스 워튼(Edith Wharton)이 쓴 고전이다, 바로 순수의 시대 이야기다. Innocence를 순수로 번역했는데 영어 관점에서 이 단어는 purity, pureness의 순수와는 완전히 다르다. 따라서 좋은 의미의 ‘순수’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어감을 갖고 내용을 바라보면 좋겠다. 소설의 주요 대목은 이렇다. 어딘지 모르게 답답한 뉴욕 사교계를 벗어나고 싶은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뉴랜드 아처. 그는 아름답고 순수하며 명망 있는 가문의 딸인 메이 웰랜드에게 청혼한다. 순수하고 아름답게만 보이던 메이는 사실은 ‘생각의 자유 없음’을 미덕으로 사는 인습적인 인물이다. '남들만큼' 혹은 '남들처럼'을 이야기하며 답답한 새장 속에 갇힌 여성의 모습이다. 관습에 완전히 복종하는 스타일이라면 정확하겠다. 어떨 때는 그렇게 사는 게 편리할 때가 있긴 하다. 당시 세상은 전통이라는 것을 죄 없다는 의미의 '순수'로 재단하며 욕망을 걸러내는 사회였다.
뉴욕 사교계의 두 거목 아처가와 밍고트가는 관습적인 격식에 얽매어 뉴랜드와 메이의 약혼 시기를 놓고 의견을 달리한다. 당시 전통은 1-2년을 사귀고 청혼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러던 중 폴란드 귀족과 결혼했던 메이의 사촌 앨렌 올렌스카가 결혼생활 파탄으로 뉴욕으로 귀국한다. 뉴랜드는 그녀의 이혼 문제에 대해 조언하는 변호사 역할을 하면서 묘한 느낌을 받는다.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보헤미안의 삶을 살아가는 엘렌에게 어렸을 때부터 품은 옛정이 되살아난 것이다. 하긴 그는 그녀의 결혼대상자가 될 뻔도 했었다. 뉴랜드가 어려움에 처한 그녀를 돕는 사이에 서로 간에 사랑이 자란다. 뉴랜드는 관습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현실을 따르는 인물이다. 메이와 엘렌 사이에서 선택이란 고민으로 방황하지만, 그의 소극적인 성품은 메이의 남편이 되는 걸로 머물게 한다.
댈러스는 몸과 마음이 모두 신세대에 속했다, 책은 신세대를 이렇게 정의한다. 신세대는 운명을 자신의 지배자가 아니라 동급자로 보는 데서 오는 유연함과 자신감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이 세상 모든 것과 대등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상징인 순수의 시대를 대표하는 메이가 세상을 떠나고 뉴랜드는 혼자 남는다. 30년 만에 엘런과 해후를 할 수 있는 순간에 그는 스스로 순수의 시대에 남기로 한다. 마음이 동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엘렌을 만나지 않기로 하고 발길을 돌린다. 그는 ‘순수의 시대’에 속한 사람이었다. 세간에서 말하는 관습을 지키며 죄를 짓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는 엘렌에게 전할 말이 없냐는 아들의 말에 이런 대답을 던진다. 작가는 그의 대답을 통해 죄를 짓지 않는 순수라는 말의 위선을 짚은 것이다. 여기서 순수는 어쩌면 주어진 운명이 아닌 다른 가능성을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느끼지 못하는 그런 맹목적 순수이다. 작가는 신세대 여성으로서 그런 과거 지향적 순수를 저격한다.
진정한 순수의 시대를 살아가는데 사랑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사랑에는 계산서를 들이밀어서는 안된다고 하나 실상 결혼 경제학으로 유명한 노벨 경제학자 게리 베커조차 결혼에서 계산서를 튕겨보는 것을 합리적이라고 본다. 지난 4월 혼인 건수가 1만4475건. 관련 통계 작성 이후 4월 기준으로 가장 적은 수치다. 2020년 기준 30대 초반(30~34세) 남성의 66%, 여성의 46%가 결혼하지 않았다. 결혼이 줄어드니 출산도 감소한다. 4월 출생아는 1만8484명으로 4월 기준 처음으로 2만명에 못 미쳤다. 그렇다고 젊은이들에게 순수하지 않다고 말하는 게 정당할까? 과거 순수의 시대에 진실한 사랑이라면 전부를 주고도 아깝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 순수가 이 시대에 가능할지 의문이다. 회계학을 배운 사람은 P&L을 손익계산서(Profit & Loss)로 해석한다. 그런데 진정으로 위대한 기업인은 P&L을 ‘사람과 사랑(People & Love)’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기업에서 이익은 중요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조직원들에게 아낌없이 투자하여 신뢰와 충성의 고리를 만드는 기업인을 존경한다. 그런 기업인은 직원의 가족에서부터, 수천만 명의 고객까지 이 모든 사람을 하나로 연결해 나가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순수의 사랑은 가끔 그런 인류애의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하긴 과거 어려운 시절을 보면 많은 사람들은 순수를 지키려 했다. 그래서였나? ‘타타타(사물을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바라본다는 의미의 산스크리트어)’로 대별되는 노래 가사에도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옛 노래 가사를 생각하는데 피식 웃음이 나온다. 2024년 순수의 의미를 생각하는 많은 이들은 이 노래에서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23년 이혼 건수는 9만2000건으로 2022년보다 800건, 0.9% 감소했다. 이혼이 줄고 있다. 반길 일이 아니다. 부부 금실이 좋아져서라면 다행이겠지만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자녀들의 늦은 취업과 결혼이 부모의 이혼을 막고 있다. ‘캥거루 자녀’를 부양하는 부담 탓에 따로 살지 못하고, 자녀 결혼 전까지 갈라서지도 못한다. 이혼을 안 하는 게 못 한다는 얘기다. 자녀가 결혼 후 독립하기 전까지 이혼을 미루자는 전통적인 정서가 작용하면서 부모의 이혼도 자연스레 늦어지고 있다. 생활물가와 주거비 상승으로 가족이 함께 살며 생계를 유지하기도 힘겨워 보인다. 자녀 부양 기간까지 길어지면서 생활비와 주거비를 따로 부담해야 하는 이혼을 결심하기 더욱 어려워졌다. 이혼 상담을 하러 왔다가 자녀 부양 문제 때문에 답답해하다 그냥 돌아가는 부부들이 많아졌다. 경제적 이유가 헤어짐을 막는데, 경제적 이유로 헤어지는 사람도 많다. 사랑이 영속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사랑은 누군가에겐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었을 뿐이었느냐는 생각을 한다. 이혼은 낭만적이지 않다. 그러나 헤어짐에 낭만이 느껴질 때도 무수히 많다. 안타까운 사랑은 때로는 낭만적이다. 소설 순수의 시대의 마지막은 물론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어디 삶이 모두 낭만으로 채워질 수 있겠나! 누구나 인연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연결되고 행복으로 이야기를 마감하는 것을 바란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이 꼭 그렇게 될 수만은 없다. 사랑에 목숨을 걸 것 같지만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게 인간이다. 그렇다고 그런 인간을 순수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순수의 시대를 살아가는 입장에서 오늘의 신세대는 기성세대에게 이런 말을 할 것 같다.
아싸(아웃사이더의 준말)를 외치며 자신의 시간을 간직하려는 이들에게 새로운 순수의 시대는 가짜관계의 청산을 의미하고 있다. 애초에 무지성의 순수는 청산할 대상이다. 현실을 생각하는 자들과 낭만을 쫓는 자라는 이분법을 그들은 부정하고 있다. 순수의 시대를 다시 읽으며 이런 말을 해본다. 헤어짐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믿는다면, 헤어짐의 이유를 묻지 말자.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면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할 도리를 제대로 한 사람들이라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나!
조원경 UNIST 교수
그간 뉴진스가 K팝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을 들었다. 민 대표의 감성과 하이브 자본 같은 어른들이 만들어낸 세계도 한몫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뉴진스 멤버들의 티 없는 순수함이지 않았을까. 외국 시장에서 K팝의 강점 중 하나는 무해한 순수에 있다. 그런데 순수하지 않은 자본의 의미가 도드라지면 K팝의 손익계산서에 문제가 생긴다. 실제 꾸며서 돈을 번다고 하더라도 모습은 순수하게 비춰줘야 한다는 말이다. 자본에 숨겨진 순수의 의미를 이 기회를 통해 되새겨 보며 순수의 시대를 음미해 본다.
영어단어를 한국말로 바꾸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문맥을 봐야 알 수 있다. 하긴 우리말도 그렇다. 누군가가 “순진하긴”이라고 말하면 비꼬는 말이 된다. 반면 순수하다고 하면 대게 좋은 말로 들린다. 영어 단어 ‘Innocence’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법률 용어로는 죄가 없음을 의미하는데 가끔은 무지함, 천진난만함을 내포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설 제목으로 사용하면 좀 헷갈리는 게 사실이다.
여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한 소설이 있다. 1870년대 뉴욕 상류층의 위선과 허영을 날카롭게 비판한 풍자소설이기도 하다. 읽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각자의 감상 대목은 충분히 다를 수 있다. 퓰리처 수상작으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다. 전 시대를 아우르는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이 매우 진지하게 느껴져 영화로도 개봉했다. 상류층 출신으로 1921년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 이디스 워튼(Edith Wharton)이 쓴 고전이다, 바로 순수의 시대 이야기다. Innocence를 순수로 번역했는데 영어 관점에서 이 단어는 purity, pureness의 순수와는 완전히 다르다. 따라서 좋은 의미의 ‘순수’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어감을 갖고 내용을 바라보면 좋겠다. 소설의 주요 대목은 이렇다. 어딘지 모르게 답답한 뉴욕 사교계를 벗어나고 싶은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뉴랜드 아처. 그는 아름답고 순수하며 명망 있는 가문의 딸인 메이 웰랜드에게 청혼한다. 순수하고 아름답게만 보이던 메이는 사실은 ‘생각의 자유 없음’을 미덕으로 사는 인습적인 인물이다. '남들만큼' 혹은 '남들처럼'을 이야기하며 답답한 새장 속에 갇힌 여성의 모습이다. 관습에 완전히 복종하는 스타일이라면 정확하겠다. 어떨 때는 그렇게 사는 게 편리할 때가 있긴 하다. 당시 세상은 전통이라는 것을 죄 없다는 의미의 '순수'로 재단하며 욕망을 걸러내는 사회였다.
뉴욕 사교계의 두 거목 아처가와 밍고트가는 관습적인 격식에 얽매어 뉴랜드와 메이의 약혼 시기를 놓고 의견을 달리한다. 당시 전통은 1-2년을 사귀고 청혼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러던 중 폴란드 귀족과 결혼했던 메이의 사촌 앨렌 올렌스카가 결혼생활 파탄으로 뉴욕으로 귀국한다. 뉴랜드는 그녀의 이혼 문제에 대해 조언하는 변호사 역할을 하면서 묘한 느낌을 받는다.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보헤미안의 삶을 살아가는 엘렌에게 어렸을 때부터 품은 옛정이 되살아난 것이다. 하긴 그는 그녀의 결혼대상자가 될 뻔도 했었다. 뉴랜드가 어려움에 처한 그녀를 돕는 사이에 서로 간에 사랑이 자란다. 뉴랜드는 관습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현실을 따르는 인물이다. 메이와 엘렌 사이에서 선택이란 고민으로 방황하지만, 그의 소극적인 성품은 메이의 남편이 되는 걸로 머물게 한다.
“그들이 함께한 오랜 시간은 결혼이 설령 지루한 의무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의무와 위엄을 지키기만 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런 위엄을 잃은 결혼은 추악한 취향의 전쟁터가 되었다. 그는 주변을 돌아보며 지난날을 명예롭게 추억했고 그것을 잃은 것을 애통해했다. 어쨌거나 옛 방식에도 좋은 것이 있었다.”어쩌면 이 대목에서 오늘날 우리 삶을 반추해 본다. 오늘날도 사실 결혼을 지키는 것은 대단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뉴랜드는 남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냈다. 그래서 우리는 소설 내용을 생각하며 ‘부끄럽지 않은 시대’ ‘죄짓지 않는 시대’란 의미로 제목을 생각해 보게 된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뉴랜드는 메이를 저세상으로 먼저 떠나보낸다. 어느 날 여친과의 사랑에 빠진 아들 댈러스의 계획으로 뉴랜드는 엘렌이 살고 있는 파리로 간다. 그는 자신이 잠시도 엘렌을 잊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들과 엘렌의 아파트를 찾아간다. 작가가 말하는 순수의 시대란 의미가 지닌 역설을 깨달을 수 있는 대화가 둘 사이에서 나온다.
“내가 여기 왔다고 했다고? (뉴랜드)”
“네. 말하면 안 되나요? 아버지, 그분은 어떤 분이셨나요? 말해 봐요. 두 분은 아주 가까운 사이였죠.”(댈러스)
댈러스는 몸과 마음이 모두 신세대에 속했다, 책은 신세대를 이렇게 정의한다. 신세대는 운명을 자신의 지배자가 아니라 동급자로 보는 데서 오는 유연함과 자신감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이 세상 모든 것과 대등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상징인 순수의 시대를 대표하는 메이가 세상을 떠나고 뉴랜드는 혼자 남는다. 30년 만에 엘런과 해후를 할 수 있는 순간에 그는 스스로 순수의 시대에 남기로 한다. 마음이 동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엘렌을 만나지 않기로 하고 발길을 돌린다. 그는 ‘순수의 시대’에 속한 사람이었다. 세간에서 말하는 관습을 지키며 죄를 짓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는 엘렌에게 전할 말이 없냐는 아들의 말에 이런 대답을 던진다. 작가는 그의 대답을 통해 죄를 짓지 않는 순수라는 말의 위선을 짚은 것이다. 여기서 순수는 어쩌면 주어진 운명이 아닌 다른 가능성을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느끼지 못하는 그런 맹목적 순수이다. 작가는 신세대 여성으로서 그런 과거 지향적 순수를 저격한다.
진정한 순수의 시대를 살아가는데 사랑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사랑에는 계산서를 들이밀어서는 안된다고 하나 실상 결혼 경제학으로 유명한 노벨 경제학자 게리 베커조차 결혼에서 계산서를 튕겨보는 것을 합리적이라고 본다. 지난 4월 혼인 건수가 1만4475건. 관련 통계 작성 이후 4월 기준으로 가장 적은 수치다. 2020년 기준 30대 초반(30~34세) 남성의 66%, 여성의 46%가 결혼하지 않았다. 결혼이 줄어드니 출산도 감소한다. 4월 출생아는 1만8484명으로 4월 기준 처음으로 2만명에 못 미쳤다. 그렇다고 젊은이들에게 순수하지 않다고 말하는 게 정당할까? 과거 순수의 시대에 진실한 사랑이라면 전부를 주고도 아깝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 순수가 이 시대에 가능할지 의문이다. 회계학을 배운 사람은 P&L을 손익계산서(Profit & Loss)로 해석한다. 그런데 진정으로 위대한 기업인은 P&L을 ‘사람과 사랑(People & Love)’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기업에서 이익은 중요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조직원들에게 아낌없이 투자하여 신뢰와 충성의 고리를 만드는 기업인을 존경한다. 그런 기업인은 직원의 가족에서부터, 수천만 명의 고객까지 이 모든 사람을 하나로 연결해 나가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순수의 사랑은 가끔 그런 인류애의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하긴 과거 어려운 시절을 보면 많은 사람들은 순수를 지키려 했다. 그래서였나? ‘타타타(사물을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바라본다는 의미의 산스크리트어)’로 대별되는 노래 가사에도 이런 구절이 나온다.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그런 거지,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옛 노래 가사를 생각하는데 피식 웃음이 나온다. 2024년 순수의 의미를 생각하는 많은 이들은 이 노래에서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23년 이혼 건수는 9만2000건으로 2022년보다 800건, 0.9% 감소했다. 이혼이 줄고 있다. 반길 일이 아니다. 부부 금실이 좋아져서라면 다행이겠지만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자녀들의 늦은 취업과 결혼이 부모의 이혼을 막고 있다. ‘캥거루 자녀’를 부양하는 부담 탓에 따로 살지 못하고, 자녀 결혼 전까지 갈라서지도 못한다. 이혼을 안 하는 게 못 한다는 얘기다. 자녀가 결혼 후 독립하기 전까지 이혼을 미루자는 전통적인 정서가 작용하면서 부모의 이혼도 자연스레 늦어지고 있다. 생활물가와 주거비 상승으로 가족이 함께 살며 생계를 유지하기도 힘겨워 보인다. 자녀 부양 기간까지 길어지면서 생활비와 주거비를 따로 부담해야 하는 이혼을 결심하기 더욱 어려워졌다. 이혼 상담을 하러 왔다가 자녀 부양 문제 때문에 답답해하다 그냥 돌아가는 부부들이 많아졌다. 경제적 이유가 헤어짐을 막는데, 경제적 이유로 헤어지는 사람도 많다. 사랑이 영속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사랑은 누군가에겐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었을 뿐이었느냐는 생각을 한다. 이혼은 낭만적이지 않다. 그러나 헤어짐에 낭만이 느껴질 때도 무수히 많다. 안타까운 사랑은 때로는 낭만적이다. 소설 순수의 시대의 마지막은 물론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어디 삶이 모두 낭만으로 채워질 수 있겠나! 누구나 인연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연결되고 행복으로 이야기를 마감하는 것을 바란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이 꼭 그렇게 될 수만은 없다. 사랑에 목숨을 걸 것 같지만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게 인간이다. 그렇다고 그런 인간을 순수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순수의 시대를 살아가는 입장에서 오늘의 신세대는 기성세대에게 이런 말을 할 것 같다.
“과거의 생활방식으로 살아가기 보다는 내가 선호하는 방식대로 내 시간을 소비하고 싶어요.”
아싸(아웃사이더의 준말)를 외치며 자신의 시간을 간직하려는 이들에게 새로운 순수의 시대는 가짜관계의 청산을 의미하고 있다. 애초에 무지성의 순수는 청산할 대상이다. 현실을 생각하는 자들과 낭만을 쫓는 자라는 이분법을 그들은 부정하고 있다. 순수의 시대를 다시 읽으며 이런 말을 해본다. 헤어짐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믿는다면, 헤어짐의 이유를 묻지 말자.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면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할 도리를 제대로 한 사람들이라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나!
조원경 UNIST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