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잘파 세대의 노트북과 소통
막막했다. 50여 명의 대학생 중 나를 바라보는 건 열 명 남짓. 초롱초롱까지는 아니어도 시선은 집중할 줄 알았는데 고개를 푹 숙인 채 노트북만 들여다본다. 질의응답 하나 없던 강의는 진땀 속에 겨우 끝났다. 주제는 대한민국의 중견기업. ‘세대를 고려해’ 사진과 영상 위주로 PPT를 꾸린 데다 이전 강의들이 꽤 성공적이어서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소통이 단절된 팬데믹 이후의 청년들과 30년 경력 ‘어른’ 사이의 거리는 꽤 멀었다. 강의안이 좋다는 회사 후배들의 환한 미소가 부회장에 대한 ‘예우’였던 걸 깨닫기까지 몇 분이면 족했다.

예전에도 소통을 주제로 기고한 적이 있다.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행위가 아닌, 이해와 공감에 기반한 관계의 모색이자 공동의 문제 해결 과정 운운. 열 몇 번의 봄이 지난 지금, 한 걸음쯤은 나아갔을까. 사람들의 말끝마다 매달려 있는 걸 보면 소통은 여전히 중요하고, 어쩌면 더 큰 화두인 듯 보인다.

공직 시절에는 민간과의 소통이 맨 앞이었다. 지금은 중견기업, 정부와 국회를 만나는 일로 분주하다. 고객 만족도 제고와 아이디어 창출의 기반인 내부 교감도 게을리할 수 없다. 중견련에 터를 잡은 직후 소통의 첫 단추로 페이스북의 먼지를 떨어냈다. 여전히 어색했지만 동년배 지인들이 널리 이용하는 SNS라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많은 중견기업인을 만나고, 여러 연단에 오르는 활동을 열심히 올리는데,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좋아요’가 찍히면 ‘누가 봤구나!’ 하면서 은근 흐뭇하다.

지난해에는 사내에 온라인 익명게시판을 개설했다. 칭찬과 격려보다는 불평불만이 많지만 원래 목적(?)이었기에 개의치 않는다. 익명이라는 안전장치 아래에서라도 어떻게든 서로의 속내를 확인할 수 있다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소중한 자산이 될 거라 믿는다. 상하, 동료, 세대 간의 차이가 감춰진 채 곪아 간다면, 그쪽이 더 아찔하다.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이 날로 심각해진다는 분석이 많다. 소통 부족에 따른 이해와 공감의 결여가 근본적인 원인이 아닐까. 오렌지가 뭐야 하면서 웃어넘긴 지 오래, MZ를 건너뛰어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잘파세대(Z+알파세대)가 등장했다. 날카로운 경계를 세운 차별적 언어로 사용되는 일이 많지만 찬찬히 보면 와서 얘기 좀 하자는 안타까운 손짓인지도 모른다.

기회가 온다면 다음 강의는 격의 없는 대화로 풀어가고 싶다. 소통의 전제조건으로서 서로의 기대와 입장을 솔직히 확인하는 작업은 필수다. 이들의 ‘노트북’이 학창 시절 나의 ‘교재’라는 것도 이젠 안다. 물론 무엇보다 소통에 소질이 있다는 ‘근자감’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해야 할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