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퇴직연금 가입자가 별도 운용 지시를 하지 않아도 사전에 지정한 상품으로 적립금을 자동 투자하는 제도,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도입된 지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초 ‘수익률 제고’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가입자 대다수가 여전히 원금이 보장되는 ‘초저위험’상품을 택하고 있는데요.

경제부 김보미 기자와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김 기자, 실제로 원금보장형 상품을 택하는 비중 어느 정도 됩니까.

<기자>

전체 적립금의 90%, 약 23조원 가량이 초저위험상품에 묶여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러한 초저위험 상품의 연간 평균수익률은 3%대 초반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이것도 지난해 고금리 예적금 상품들이 쏟아지면서 이정도인 것이지, 추후 금리인하기로 접어들기 시작하면 장기수익률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앵커>

현재 물가 상승률이 거의 3% 정도 되니까, 사실상 원금만 지키고 있는 셈입니다.

이 디폴트옵션을 도입할 당시 정부가 제시한 목표수익률이 6~8%였는데, 그렇다면 원금 보장형 같은 초저위험 상품군 외에 다른 상품들은 수익률이 어떻습니까?

<기자>

정부 목표수익률에 부합하려면 적어도 저위험 상품은 선택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간으로 봤을 때 평균 7.1%를 나타냈고요.

중위험이 12.4%, 고위험이 17.3% 수익률을 기록 중입니다.

<앵커>

물론 개인의 판단이고, 퇴직연금이라 안정적인 운용도 중요하지만, 너무 몸을 사리시는 것 같다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겁니까?

<기자>

‘내 노후자금만큼은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라는 불안감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섣불리 투자했다가 손실을 볼 바에는, 차라리 원금이라도 지키는 게 더 낫지 않겠나’라고 생각하는 가입자들이 많다는 의미인데요.

투자에 대한 손실 리스크는 굉장히 크게 생각하면서도, 정작 물가상승률을 고려했을 때 실질 수익률이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대다수가 간과하고 있다는 겁니다.

여기에 가입자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목소리입니다.

<앵커>

장기적으로 본다면 조금은 더 공격적인 투자를 해야, 따뜻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도 같은데요.

이런 분위기를 바꿀만한 방법은 없습니까?

<기자>

근본적으로는 우리나라 디폴트옵션 구조 자체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먼저 직접 들어보시죠.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 연구위원: 원리금보장형 상품이 포함되어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제도 목적이 달성되기 힘든 상황이죠.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근본적으로는 제도 개편을 하는 거겠죠.]

퇴직연금 연평균 수익률이 7~10%에 이르는 미국, 영국, 호주처럼 디폴트옵션 선택지에서 원리금보장상품을 아예 제외시키거나 제한하는 방법을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인데요.

실제로 디폴트옵션을 도입한 국가들 가운데,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제공하는 곳은 우리나라와 일본뿐입니다.

그리고 우리보다 5년 일찍 디폴트옵션을 도입했던 일본은 원리금보장형 상품 비중이 70%이상으로 여전히 높아.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앵커>

그렇다고 원금 보장만을 원하는 개인들의 선택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 안정적인 운용이 더 유리한 사람도 있거든요.

하지만 우리가 제도를 만들 때, 조금 더 신경을 썼더라면 이정도까지 오지는 않았을 텐데요.

이렇게 구조를 설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기자>

당시 업권간 이해관계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은행과 보험업권에서는 “증시급락과 같은 시장 변화에 따른 손실위험을 차단해야 한다”며 원리금보장형 상품 편입을 주장했고 금융투자업계는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편입하면 디폴트옵션 도입 전과 다를 게 없다”며 반박하고 나섰는데요.

논의가 계속 진척되지 않자, 금융투자업권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면서 지금에 이르게 됐던 겁니다.

현재 정부는 “안정적인 수익 실현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내실있게 운영해 나간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놓고 있는데요.

퇴직연금이 제대로 된 노후 안전판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든 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라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앵커>

잘 들었습니다. 김보미 기자였습니다.


김보미기자 bm0626@wowtv.co.kr
디폴트옵션 '초저위험' 편중 여전…"제도개선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