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미국 대형 냉난방공조(HVAC) 설비·유통 기업인 레녹스와 손잡고 HVAC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삼성이 오랜 기간 쌓은 공조 기술력과 레녹스의 탄탄한 북미 유통망을 결합해 10년 뒤 488억달러(약 66조원)로 커질 시장을 접수하는 작업에 나선 것이다. 대형 주택단지는 물론 열을 많이 뿜어내는 데이터센터와 고층 빌딩을 중심으로 HVAC를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을 고려한 투자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3대 공조업체와 ‘맞손’

삼성, 美 '100년 기업'과 맞손…글로벌 공조시장 공략 승부수
삼성전자는 28일 “레녹스와 합작법인 ‘삼성 레녹스 HVAC 북미 아메리카’를 설립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가 지분 50.1%, 레녹스가 나머지 49.9%를 보유하는 구조다. 투자 규모는 수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합작법인은 올 하반기 미국 텍사스주 로어노크에서 출범한다.

1895년 설립된 레녹스는 가정·상업용 HVAC를 제조, 판매하는 미국 3~4위권 공조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 6조7000억원에 1조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100년이 넘는 업력을 바탕으로 수백 개 직영점은 물론 현지 주택업체들과 탄탄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합작법인은 ‘삼성의 지원을 받은 레녹스(Lennox powered by Samsung)’라는 브랜드로 삼성의 개별 공조 제품을 레녹스의 직영점과 주택 건설업체에 공급할 계획이다. 기존 삼성전자 유통점에는 삼성 브랜드로 판매한다. 미국 HVAC 시장은 중앙 냉난방이 70%를 차지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에너지 절감 움직임에 따라 효율이 좋은 개별 공조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삼성은 기존 유통망에 레녹스의 유통 채널까지 손에 넣은 만큼 미국 시장 공략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레녹스는 삼성과 손을 잡으면서 제품 라인업이 대폭 확대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은 판매망을, 레녹스는 판매 제품을 확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윈윈’인 계약”이라고 말했다.

사업 확대 속도전

삼성이 레녹스와 손을 잡은 건 빠르게 커지는 HVAC 시장 장악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삼성전자가 올초 8조원 안팎으로 추정되는 아일랜드 존슨콘트롤즈 HVAC 사업부 인수전에 뛰어든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존슨콘트롤즈 인수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시장조사업체 비스리아에 따르면 올해 320억달러(약 43조원) 수준인 북미 공조 시장은 10년 뒤인 2034년 488억달러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시장은 일본 다이킨공업과 중국 미디어그룹 그리 등이 주도하고 있고, 존슨콘트롤즈와 캐리어, 파나소닉,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뒤쫓는 형국이다.

삼성은 북미 시장을 적극 공략해 HVAC 시장 강자로 도약한다는 구상을 세웠다.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에너지 효율이 높은 개별 공조시스템을 기존 중앙 공조시스템에 추가하는 형태의 결합형 HVAC 제품 수요가 늘고 있는 만큼 개별 공조 분야에서 기술을 쌓은 삼성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