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분 동안 도파민 내뿜게 하는 영화 <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

세계 종말 이후를 뜻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를 정립했다고 일컬어지는 영화 <매드 맥스> 시리즈는 호주 출신 조지 밀러(1945~ ) 감독의 순수 창작물로 1980년대부터 시작된 영화 시리즈입니다. 장대한 세계관,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 이 시대의 연기파 배우들, 도파민 넘치는 액션 씬,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뻔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입체감 있는 인물 묘사 때문에 오히려 설득되어버리는 악당 캐릭터들의 서사까지…. 이러한 감상 포인트들 덕분에 <매드 맥스> 시리즈는 세계적으로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포스터 / ⓒ네이버 영화
<매드 맥스> 시리즈의 배경은 핵전쟁으로 대부분의 문명이 붕괴되고 많은 생명체가 멸종된 지구가 배경입니다. 지구의 토양 및 살아남은 생명체들은 방사능에 오염되었고 깨끗한 물, 식물이 자랄 수 있는 땅, 폐고물 수준의 동력장치, 이를 움직이게 할 석유는 얼마 남지 않았죠. <매드 맥스> 시리즈는 이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각 무리의 전사들이 치열하게 세력을 다투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임모탄 조, 퓨리오사, 디멘터스가 의미하는 세 개의 세계관

영화 <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에는 중요한 비중을 가진 캐릭터가 세 명이나 등장합니다. 임모탄 조, 퓨리오사, 디멘터스 이 세 인물은 세 가지 세계관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임모탄 조는 북유럽 신화를, 이번 영화의 주인공 퓨리오사는 성경을,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 디멘터스는 로마 시대 모티브를 차용했습니다.
앞뜰에는 황금 나무가 심어져 있고, 지붕은 황금 방패로 이루어진 발할라 / ⓒ위키피디아
앞뜰에는 황금 나무가 심어져 있고, 지붕은 황금 방패로 이루어진 발할라 / ⓒ위키피디아
‘임모탄 조’를 따르는 ‘워보이’들은 그들에게 세뇌된 천국 ‘발할라’를 가는 것을 큰 영예로 여깁니다. 크고 작은 전투에서 자폭 테러를 서슴지 않으며 장렬하게 싸우기에 다른 무리에 비해 전투력이 높은 편입니다. 워보이들이 가기를 원하는 ‘발할라’는 북유럽 신화에 존재하는 개념으로 명예로운 왕, 영웅, 전사들이 모이는 거대한 저택입니다. 발할라(Valhalla)의 어원을 살펴볼까요. ‘Val’은 전투에서 사망한 용맹한 전사들을, ‘Hall’은 넓은 공간을, 맨 뒤에 붙는 ‘a’는 여성 명사임을 나타냅니다.

[이전에 없던 히로인(여성 영웅) 퓨리오사가 돋보이는 영화 <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 예고편]
영화 도입부에서 ‘퓨리오사’는 마을과 멀리 떨어진 외진 곳까지 가서 복숭아를 따는 대담함을 보이다가 악당들에게 납치당해 디멘터스가 있는 곳으로 끌려갑니다. 신으로부터 금지된 선악과를 따 먹고 들켜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이브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후 퓨리오사는 세 번이나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이 종으로 살았던 애굽을 탈출해 하느님이 약속한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약 40년간 광야를 떠돌았던 성경 내용과도 닮았습니다.

많은 관객이 극 초반에 나오는 아역의 얼굴이 퓨리오사 역을 맡은 안야 테일러-조이와 매우 닮았다며 놀라워했습니다. 이는 영상과 이미지를 결합하는 ‘딥페이크’ 기술로 아역 배우의 몸에 안야 테일러-조이의 얼굴만 합성시킨 것입니다.

[1959년 개봉한 영화 <벤허>에서 묘사된 사두마차 경주 장면]


이번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캐릭터 ‘디멘터스’는 로마 시대를 연상케 하는 아이템들을 선보였습니다. 전투에 유리할 리 없지만 늘 땅에 질질 끌고 다니는 긴 망토가 대표적입니다. 얼핏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오토바이 세 대를 개조한 이동 수단은 로마 시대 왕이나 영웅들만 탔던 쌍두마차와 겹쳐 보이고요.

그리고 영화 초반 디멘터스가 부하들을 시켜 퓨리오사의 어머니를 십자가에 매달고 잔인하게 고문하는 장면은 십자가에서 로마 병사들에 의해 고통받았던 예수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로마 시대의 쌍두마차는 현대에 와서 오픈카 퍼레이드로 발전했다]

그리스·로마 신화가 녹아든 음악들

① 오펜바흐 - 오페라 <지옥의 오르페오>

오펜바흐의 오페라 <지옥의 오르페오>는 위에서 소개해드린 세계 최초의 오페라,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우스>와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 속 오르페오는 뱀에 물려 죽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내 에우리디체를 구하기 위해 지옥의 하데스에게 간청하러 가는 지고지순한 남편입니다.

작곡가 오펜바흐는 쾌락적인 것에 환호하던 당대 프랑스 관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원작을 살짝 비틀었습니다. 에우리디체가 남편 오르페오를 두고 제우스와 불륜을 저지르는 스토리, 속고 속이는 인물들의 심리전, 올림포스의 12신들을 음주가무를 즐기고 색을 밝히는 캐릭터로 설정하는 등 막장 드라마급 전개로 큰 즐거움을 주었죠.

[오펜바흐 - 오페라 <지옥의 오르페오> /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후에 후배 작곡가 생상스가 그의 <동물의 사육제> 중 4곡 <거북이>에서 흔히 ‘캉캉 춤’이라고 불리는 <지옥의 갤럽> 장면 멜로디를 차용, 이 멜로디가 4배 정도 느리게 연주되도록 작곡하였습니다. 이는 코믹영화에서 악당이 주인공의 잔꾀에 걸려 위험해 처할 때 슬로우 모션을 걸어 우스꽝스러움을 극대화하는 것처럼 생상스 역시 이 곡에서 음악적 유머를 구사한 것이죠.

[생상스 - <동물의 사육제> 중 4곡 <거북이>]


② 드뷔시 - <3개의 녹턴> 중 3곡 <세이렌>

바위 위에 앉아 고혹적인 목소리로 뱃사람들을 유혹하여 바다에 빠뜨려 죽이는 반인반어 세이렌은 스타벅스의 로고에 쓰일 정도로 그리스·로마 신화 속 캐릭터들 중에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캐릭터입니다.

[드뷔시 - <3개의 녹턴> 중 3곡 <세이렌>]


드뷔시는 ‘바다와 그들이 지닌 무수한 리듬을 묘사했으며 달빛이 은은한 파도 사이로 웃으며 지나가는 사이렌의 신비로운 노래’라고 이 곡의 서문에 적었습니다. 뱃사람들이 넋을 잃고 바다에 뛰어들 만큼 아름다운 세이렌을 음악으로 구현하기 위해 드뷔시는 그 특유의 오케스트라 작법을 발휘했습니다. 바람이나 물결의 덩어리감을 표현하는 현악기, 신비로운 멜로디를 연주하는 목관악기, 가사 없이 ‘아’라는 모음만 마법 주문처럼 흘러나오는 여성 합창을 매력적으로 융합시켰습니다.

③ 홀스트 - <행성 조곡> 중 2곡 <비너스, 평화를 가져오는 자>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어릴 때 이렇게 태양계를 도는 행성들의 앞 글자만 따서 이름을 외워본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수성은 태양 주위를 매우 빠르게 도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 다니는 헤르메스(영:머큐리)라고 불렀고, 금성은 매우 밝고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에 미와 풍요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영:비너스), 화성은 유난히 빨갛게 보여 피를 연상시키므로 전쟁의 신 아레스(영:마르스)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홀스트 - <행성 조곡> 중 2곡 <비너스, 평화를 가져오는 자>]
영국 작곡가 홀스트는 친구로 인해 점성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각 행성과 어울리는 음악을 작곡하게 됩니다. 다만 모음곡의 순서는 실제 행성 배열이 아닌 점성술 시스템 순서대로 배열했죠. <행성 조곡>은 대규모 오케스트라 편성, 종잡을 수 없는 박자와 불협화음의 사용으로 듣는 재미를 더합니다.

원래 <행성 조곡>은 지구를 제외한 총 일곱 곡으로 작곡되었습니다. 이 곡이 초연된 10년 후인 1930년 명왕성이 발견되었습니다. 홀스트는 ‘마저 작곡해야 하지 않겠냐’라는 친구들의 말을 가볍게 넘겼다고 합니다. 후에 작곡가 콜린 매튜스가 <명왕성, 새롭게 하는 자>를 위촉받아 작곡했고, 높은 작품성 덕분에 현재에도 홀스트가 작곡한 일곱 번째 곡 다음으로 종종 연주됩니다.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화려한 볼거리와 고막을 때리는 강렬한 음악 속 조지 밀러 감독의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자연재해,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 냉소와 잔혹함으로 가득한 이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가 조지 밀러 감독이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사랑, 이해심, 배려심, 공감, 정의감, 희망 등 우리 안의 선한 것들이 결국 인류를 구원한다는 것을, 어둠 속에서 한 발 내디딜 용기를 준다는 것을 그는 영화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 것 같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