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왜 의례에 집착하는가 [서평]
의례는 인간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평생을 따라다닌다. 태어난지 100일이나 1년을 맞아 여는 잔치를 비롯해 입학식, 결혼식, 장례식 등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의례가 빠지지 않는다. 사소하게는 생일 파티에서 부는 초 끄기나 명절에 지내는 차례, 매주 종교기관에 가서 일정한 절차에 따라 올리는 기도 등도 모두 의례다.

실험인류학자 드미트리스 지갈라타스는 그의 책 <인간은 의례를 갈망한다>에서 전 세계 의례의 현장으로 뛰어 들어가 의례의 수수께끼를 파헤친 과정을 담았다. 지갈라타스는 최첨단 과학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인류가 의례를 갈망 혹은 집착하는 이유를 찾아 나간다.

의례를 하는 목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사람들은 정성을 들여 그 행위에 의미를 부여한다. 예컨대 기우제를 지낸다고 해서 꼭 비가 오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시간과 비용을 들여 그렇게 한다. 전 세계 많은 사회엔 갓 태어난 아기를 위험과 공포로부터 보호하려는 탄생 의례가 있다. 죽은 사람을 위해 산 사람의 거처보다 화려한 무덤을 짓는 장례 의례는 말할 것도 없다.

저자는 사회심리학 및 뇌과학을 사용해 의례의 기능적 효과를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의례는 개인의 마음 속에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 불확실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뛰어난 운동선수가 경기 전 이른바 미신이란 것에 의지하는 게 대표적이다. 저자는 의례가 인류에게 스트레스와 위기에 대처하는 역량을 부여함으로써 긴 역사 동안 살아남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인류는 왜 의례에 집착하는가 [서평]
의례의 강력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의례는 직접 의례를 하는 실천자뿐 아니라 그를 지켜보고 동조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지갈라타스는 스페인의 산페드로 마을, 인도양의 모리셔스 섬 등에서 수행하는 '불 건너기 의식'에서 이러한 접착 효과를 과학적으로 추적했다. 이 의례의 참가자는 소중한 사람을 업고 600도가 넘는 뜨거운 석탄 위를 걷는다. 화상은 물론 생명에 치명적일 수도 있는 이 의식 동안 참가자와 마을 공동체 일원은 생리적으로 높은 동조 수치를 보인다. 이는 서로에 대한 신뢰를 높일 뿐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더 많은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 변화를 이끌어 낸다. 즉 의례는 단지 자극적인 행위로 사람들을 고양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의례의 일부로 만들어 하나가 됐다는 감각을 만든다는 점에서 공동체의 생명력을 높인다는 설명이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사람들은 의례를 지켜나가고, 의례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 온라인으로 입학식과 졸업식을 열거나, 인적이 없는 산꼭대기에서 결혼식을 하는 사람들 혹은 처벌을 무릅쓰고 가족의 장례를 치른 이들도 있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의례는 여전히 강력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 존재를 불안정하게 하는 위기가 다시 찾아올 때, 의례가 인류를 단단하게 지지할 것이라고 말한다. 지속 불가능한 성장, 기후 위기와 정치적 불안이 나날이 커져 가는 지금, 의례의 재발견을 통해 인간 본성이 가진 연대의 힘을 슬기롭게 사용해 나가자고 강조한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