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 머리' 히트곡 가수→국회의원…그녀의 파격 변신 [이일내일]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눈물'·'개성' 히트곡 부른 리아에서
22대 총선 비례대표 당선인 김재원으로
"1호 법안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특별법"
22대 총선 비례대표 당선인 김재원으로
"1호 법안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특별법"
삭발한 머리에 반항적인 눈빛,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대중들을 사로잡았고, 소속사 분쟁에도 음악 활동을 이어갔던 가수가 인자하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의 정치인이 됐다. 사회 문제에 적극적인 발언과 행동을 해왔던 리아가 본명 김재원(49)이라는 이름으로 국회에 입성한다.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후보 7번으로 이름을 올렸던 김 당선인은 지난 4월 11일 여의도 입성이 확정된 후 눈코 뜰 새 없는 스케줄을 소화하며 국회의원으로서 제2의 삶을 준비하고 있다.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과 진짜 정치를 하는 게 다르다는 건 알고 있다"면서 "어깨가 무겁고 책임을 느낀다"며 새벽 5시부터 시작하는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당선인은 고등학생 시절 MBC 라디오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불러 우승한 후 가수의 길을 걸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H.O.T, 젝스키스, SES, 핑클 등 1세대 아이돌들이 출범하던 시기, 그와는 정반대 색깔의 음악과 비주얼로 등장해 '눈물', '개성' 등의 노래를 연속 히트시켰다. 이후 소속사 분쟁 등을 겪었지만,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갔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반대 등 정치적인 행동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도 김 당선인의 신생 정당인 조국혁신당 입당과 비례대표 출마는 "파격적인 선택이었다"는 평을 받는다. 김 당선인은 "저 역시 그분(조국 조국혁신당 당대표)과 개인적인 친분이 전혀 없었다"며 "처음 영입 제안 연락을 받았을 때도 모르는 번호였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러면서 "예전에 소속사 일로 힘들었을 때, 음악을 관두려 했을 때 다시 손잡아주고, 제 노래를 기억해주신다는 분들 덕분에 마음의 위안을 얻고, 관두는 걸 포기했었다"며 "그 후에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도움이 되는 삶을 살려고 했고, 이번에도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에 용기를 내게 된 것"이라면서 영입 제안부터 당선인이 된 지금까지의 시간을 전했다. ▲ '가수 리아'에서 '국회의원 김재원'이 됐습니다.
가수였는데, 정치 영역으로 뛰어들게 됐습니다.(웃음) 저를 보면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국회로 진출해야한다는 생각을 해주신 거 같아요. 저희 당이 갖는 젊은 에너지에 다양한 인물들의 국회 진출을 지지하는 분들이 투표해주신 거 같아요. '이런 사람들이 전통적인 정치의 툴을 깨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이런 기대감이요. 이런 시대적인 물결, 흐름 안에 저라는 문화예술 분야의 사람이 국회에 진출한 것이라 보기 때문에 어깨가 무겁고, 책임감도 느껴요.
▲ 가수의 모습이 더 익숙해서 '의원님'이라는 호칭이 신기하기도 해요.
저도 그래요.(웃음) 그리고 다들 제가 어떻게 할지, 어떤 사람인지 관심도 많이 가져주시는 거 같아요. 다른 당선인 분들도 마찬가지고요. 저랑 비슷한 세대이거나, 제가 불렀던 노래를 기억하시는 분들도 많고, 실물을 처음 보고 '신기하다'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 꾸준히 정치색을 드러내고, 정치적인 발언을 해오셨지만, 정치인이 되는 건 다른 부분인데요. 그런데도 국회의원이 돼야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있을까요?
전 노래로 사랑받았어요. 한동안 기획사 문제도 있고 음악을 관둬야 한다 생각한 적도 있는데, 그때 다시 손 잡아주고, 제 노래를 기억한다면서, 그걸로 위안받는다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저 역시 거기에서 마음의 위로를 받고, 관두는 걸 포기했어요. 그리고 더 열심히 하자고 결심하고, 노래 외에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에 손을 뻗고 행동하려 했죠. 그래서 유기견 봉사를 한 지 20년 정도 됐고, 유기 동물을 위한 서명운동에도 동참하고, 동물단체와 함께 법안도 통과시켰어요. 취미가 스쿠버다이빙인데, 강사 자격증까지 따고 나서 '이렇게 예쁜 바다를 정화해보자'해서 바다 정화 환경 운동을 하게 됐고요. 동생이 그런 단체를 만들었길래 저도 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폐그물이나 버려진 어구도 주워오고, 불가사리도 잡아서 나오고 했죠. 이제 모든 겸임이 안 되니 4월 11일 이후 바로 사임계를 냈어요.(웃음) 그래도 시간이 나면 계속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해나가고 싶어요.
▲ 정치인으로서 시작점이 조국혁신당인데, 어떤 인연이 있었나요?
(조국) 당대표님을 개인적으로 전혀 몰랐어요. TV에서만 봤죠. 입당 제안을 받았던 날이 아직도 생생해요. 밤 10시쯤이었는데, 늦은 저녁을 먹으려 버섯을 볶고 있었거든요.(웃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을까, 말까' 하고 받았는데 '여보세요, 조국입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직접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이전부터 해왔어요. 이태원 참사, 광화문 촛불집회 등 제가 마음이 가는 집회에는 남몰래 참여하기도 했는데, 그곳에서 시민들의 아픈 마음, 열망을 알았어요. '바뀌었으면 좋겠다' 이런 것들이요. 저는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얼굴과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라 사실상 어항 속 물고기 같은 삶을 살았어요. 마음대로 행동 못하고, 술을 먹으면서도 편하게 널브러지지도 못하고요. 화가 나도 화를 내지 못했죠. 항상 유해 보이고, 좋아 보이지만 스스로 마음이 많이 다쳤어요. 본격적으로 정치를 하게 되면 화를 낼 땐 화도 내고, 민원도 많아질 텐데 이런 것들을 제가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 고민도 됐지만 '일단 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사실 제가 칭찬에 약하기도 하고요.(웃음) 제가 잘할 것 같다고, 필요하다고 하시니 '그럼 일단 열심히 해봐야겠다' 하게 된 거 같아요.
▲ 전혀 몰랐던 사이였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해주셨을까요?
주변에서 여러 사람이 저를 추천해주셨다고 하더라고요. 저의 살아온 모습을 지켜본 분들이라 그런 기대, 그런 모습을 잘 지켜내야겠다 싶더라고요. 옳고 그름에 있어서 자신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남의 일이라도 잘 대변해주고, 싸워주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부분의 역할을 원하는 거라면 제가 해야겠다 싶었죠. ▲ 입당 후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진정성을 의심받기도 했어요.
전 대중가수였고, 소속사랑 헤어지고 난 후 저 혼자 활동하면서 생활이 왔다 갔다 하기도 했어요. 이 힘든 삶을 어떻게 유지해갈까를 고민하던 시기도 있었고요. 그때 아는 선배 가수가 '정권이 바뀌면 우리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고 하셨어요. 정치를 몰랐고, 그저 '도움이 된다'고 하니 갔었죠. 투자를 받기로 한 회장님이 '이곳에 가주세요' 하니 또 생각 없이 가고요. 솔직히 잘 몰랐고, 신경도 안 썼어요. 그러다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알게 됐어요.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갔죠. 그때 작곡가 김형석, 가수 강산에, 이은미 씨 같은 분들이 공연하셨는데, 저는 그때도 연이 없어서 무대엔 오르지 않고 혼자 몰래 개인적으로 참여했어요.
▲ 지난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던 이재명 당 대표의 등장곡을 부르기도 해서 조국혁신당 입당 선언 당시 관심이 더 쏠렸던 거 같아요.
민주당은 제가 뭘 하려고 하거나, 요청한 적도 없어요. 노래도 제안받아서 했고요.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을 응원할 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있었어요. 그때 저도 '현장의 얘길 전하자' 이 정도의 입장이었고요. 이후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 지지 선언을 하셨던 황석영 선생님이 저희 아버지 친구분이셨어요. 이 후보가 대선 준비한다는 시기에 만남이 있어서 운전기사로 갔는데, 저에 대해 이미 알고 계시더라고요. 그때 '현장에 있고, 대중친화력이 있으니 현장 조사를 해달라'고 해서, 그 일을 했던 거고요. 대선 이후 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중심으로 개인적으로 행동했어요. 이태원 참사가 났을 때 음료 봉사를 하고, 유족분들이 심적으로 힘들어하시는데, 국가에서 하는 심리 상담이 불편하다는 얘기가 있어서 민간 상담을 발족시키고요. 대중적으로 알려진 사람이라 얘기하기 편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 생각지도 않았지만, 국회의원이 됐어요. 국회 입성 확정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떠셨나요?
정말 생각 못했죠. 애견 미용에 관심이 생겨서 입당 전화를 받기 전날까지 작업실에서 강아지 털을 깎았거든요.(웃음) 입당 선언을 한 다음부터 선거 유세를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토요일 밤에 전화를 받고, 일요일에 파란 양복을 사고, 월요일 오전 10시에 연설을 해야 했죠. 그다음부터 유세를 돌고, 쉼 없이 달려왔어요. 엄마가 혈관 질환이 있으신데, 선거 당일 응급실에 가셨다가 일반 병원으로 이동했어요. 병실을 확인하고, 집에 와서 유튜브로 선거 개표 방송을 켰는데, 순번 발표가 딱 나오더라고요. 눈물이 나왔어요. 그동안 너무 힘들었던 것도 있고, 앞으로 '어떡하나' 싶기도 했고요. 그러다 점점 책임감을 느꼈고요. '앞으로 화도 내자', '사람들 관계도 뿌리를 쳐야 겠구나' 싶었죠. 인생이 다른 방식으로 살아지겠다 싶었어요.
▲ 국회의원 김재원으로서 발의할 1호 법안이 궁금해요.
블랙리스트 특별법 재개정을 준비 중입니다. 언론, 문화예술인은 특정한 감시, 견제, 검열을 받아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걸 없애지 않으면 지원 혜택도 못 받고, 받는 사람들만 받을 거예요. 제가 모르고 응원했던 선배들처럼, '이번 정권에서 잘 받아서 우리 식구들 먹여 살리자' 이런 게 반복되지 않겠어요? 블랙리스트를 보면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 실무에 있던 사람이라 어떤 입법 활동을 할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문화예술계 생태계가 보다 건강해질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주요 대형 매니지먼트사가 중심이 되는 형태가 아닌, 다양한 색깔의 아티스트들이 나올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고요. 요즘의 실태를 보면 약간은 편향적이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10대 때부터 '연습생'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기르고, 스무살만 넘어도 안 받아주는 곳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예술의 가치가 예쁘고 잘생겨야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또한 우리나라는 문화예술을 보는 눈도 탁월하고, 콘텐츠 생산 능력도 뛰어나요. 김대중 대통령이 혜안을 갖고 '인터넷에 힘써야 한다'고 하신 후, 온라인을 기반으로 해외 시장이 열렸잖아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저작권 문제, 자본의 문제는 여전한 거 같아요. 그래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고민하고 있어요.
▲ 벌써 '이런 법 좀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 같아요.
맞아요.(웃음) 그런데 일정과 미팅이 쏟아져서 정작 제 분야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어요. 특히 5월엔 행사가 많았어요. 이동하면서 눈꺼풀이 열리지 않는데 회의하고, 요즘 매일 5시간 정도 자는 거 같아요. 전 원래 낮과 밤이 바뀐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리듬도 많이 깨져 있어요. 마음 같아서는 잠을 더 줄여서 운동도 하고, 화장도 하고, 업무를 시작할까 싶기도 하지만, 오늘도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더 줄이지 못하겠더라고요.
▲ 어떤 국회의원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업무 성과로 평가받았으면 좋겠어요.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을 돕는 법안을 만들어야겠다 싶고요. 그 과정에서 욕도 먹겠죠.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요.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려 해요. 그리고 지금 젊은 보좌진으로 구성하고 있는데, 제가 아무리 진보적인 마인드를 가져도 젊은 사람들 얘기를 듣고 따라가야 한다 생각하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이 마돈나인데, 그 언니가 1958년생이예요. 그런데 지금도 트렌디하게 활동하잖아요. 그분이 여태껏 계속 앞서나갈 수 있는 건, 계속 새로운 음악을 찾고 새로운 프로듀서와 작업하는 덕분이에요. 제 세상에 매몰되지 않고, 다른 눈을 가진, 진보적인 사람들과 함께 일해보려 합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김 당선인은 고등학생 시절 MBC 라디오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불러 우승한 후 가수의 길을 걸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H.O.T, 젝스키스, SES, 핑클 등 1세대 아이돌들이 출범하던 시기, 그와는 정반대 색깔의 음악과 비주얼로 등장해 '눈물', '개성' 등의 노래를 연속 히트시켰다. 이후 소속사 분쟁 등을 겪었지만,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갔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반대 등 정치적인 행동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도 김 당선인의 신생 정당인 조국혁신당 입당과 비례대표 출마는 "파격적인 선택이었다"는 평을 받는다. 김 당선인은 "저 역시 그분(조국 조국혁신당 당대표)과 개인적인 친분이 전혀 없었다"며 "처음 영입 제안 연락을 받았을 때도 모르는 번호였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러면서 "예전에 소속사 일로 힘들었을 때, 음악을 관두려 했을 때 다시 손잡아주고, 제 노래를 기억해주신다는 분들 덕분에 마음의 위안을 얻고, 관두는 걸 포기했었다"며 "그 후에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도움이 되는 삶을 살려고 했고, 이번에도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에 용기를 내게 된 것"이라면서 영입 제안부터 당선인이 된 지금까지의 시간을 전했다. ▲ '가수 리아'에서 '국회의원 김재원'이 됐습니다.
가수였는데, 정치 영역으로 뛰어들게 됐습니다.(웃음) 저를 보면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국회로 진출해야한다는 생각을 해주신 거 같아요. 저희 당이 갖는 젊은 에너지에 다양한 인물들의 국회 진출을 지지하는 분들이 투표해주신 거 같아요. '이런 사람들이 전통적인 정치의 툴을 깨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이런 기대감이요. 이런 시대적인 물결, 흐름 안에 저라는 문화예술 분야의 사람이 국회에 진출한 것이라 보기 때문에 어깨가 무겁고, 책임감도 느껴요.
▲ 가수의 모습이 더 익숙해서 '의원님'이라는 호칭이 신기하기도 해요.
저도 그래요.(웃음) 그리고 다들 제가 어떻게 할지, 어떤 사람인지 관심도 많이 가져주시는 거 같아요. 다른 당선인 분들도 마찬가지고요. 저랑 비슷한 세대이거나, 제가 불렀던 노래를 기억하시는 분들도 많고, 실물을 처음 보고 '신기하다'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 꾸준히 정치색을 드러내고, 정치적인 발언을 해오셨지만, 정치인이 되는 건 다른 부분인데요. 그런데도 국회의원이 돼야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있을까요?
전 노래로 사랑받았어요. 한동안 기획사 문제도 있고 음악을 관둬야 한다 생각한 적도 있는데, 그때 다시 손 잡아주고, 제 노래를 기억한다면서, 그걸로 위안받는다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저 역시 거기에서 마음의 위로를 받고, 관두는 걸 포기했어요. 그리고 더 열심히 하자고 결심하고, 노래 외에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에 손을 뻗고 행동하려 했죠. 그래서 유기견 봉사를 한 지 20년 정도 됐고, 유기 동물을 위한 서명운동에도 동참하고, 동물단체와 함께 법안도 통과시켰어요. 취미가 스쿠버다이빙인데, 강사 자격증까지 따고 나서 '이렇게 예쁜 바다를 정화해보자'해서 바다 정화 환경 운동을 하게 됐고요. 동생이 그런 단체를 만들었길래 저도 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폐그물이나 버려진 어구도 주워오고, 불가사리도 잡아서 나오고 했죠. 이제 모든 겸임이 안 되니 4월 11일 이후 바로 사임계를 냈어요.(웃음) 그래도 시간이 나면 계속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해나가고 싶어요.
▲ 정치인으로서 시작점이 조국혁신당인데, 어떤 인연이 있었나요?
(조국) 당대표님을 개인적으로 전혀 몰랐어요. TV에서만 봤죠. 입당 제안을 받았던 날이 아직도 생생해요. 밤 10시쯤이었는데, 늦은 저녁을 먹으려 버섯을 볶고 있었거든요.(웃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을까, 말까' 하고 받았는데 '여보세요, 조국입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직접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이전부터 해왔어요. 이태원 참사, 광화문 촛불집회 등 제가 마음이 가는 집회에는 남몰래 참여하기도 했는데, 그곳에서 시민들의 아픈 마음, 열망을 알았어요. '바뀌었으면 좋겠다' 이런 것들이요. 저는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얼굴과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라 사실상 어항 속 물고기 같은 삶을 살았어요. 마음대로 행동 못하고, 술을 먹으면서도 편하게 널브러지지도 못하고요. 화가 나도 화를 내지 못했죠. 항상 유해 보이고, 좋아 보이지만 스스로 마음이 많이 다쳤어요. 본격적으로 정치를 하게 되면 화를 낼 땐 화도 내고, 민원도 많아질 텐데 이런 것들을 제가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 고민도 됐지만 '일단 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사실 제가 칭찬에 약하기도 하고요.(웃음) 제가 잘할 것 같다고, 필요하다고 하시니 '그럼 일단 열심히 해봐야겠다' 하게 된 거 같아요.
▲ 전혀 몰랐던 사이였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해주셨을까요?
주변에서 여러 사람이 저를 추천해주셨다고 하더라고요. 저의 살아온 모습을 지켜본 분들이라 그런 기대, 그런 모습을 잘 지켜내야겠다 싶더라고요. 옳고 그름에 있어서 자신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남의 일이라도 잘 대변해주고, 싸워주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부분의 역할을 원하는 거라면 제가 해야겠다 싶었죠. ▲ 입당 후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진정성을 의심받기도 했어요.
전 대중가수였고, 소속사랑 헤어지고 난 후 저 혼자 활동하면서 생활이 왔다 갔다 하기도 했어요. 이 힘든 삶을 어떻게 유지해갈까를 고민하던 시기도 있었고요. 그때 아는 선배 가수가 '정권이 바뀌면 우리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고 하셨어요. 정치를 몰랐고, 그저 '도움이 된다'고 하니 갔었죠. 투자를 받기로 한 회장님이 '이곳에 가주세요' 하니 또 생각 없이 가고요. 솔직히 잘 몰랐고, 신경도 안 썼어요. 그러다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알게 됐어요.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갔죠. 그때 작곡가 김형석, 가수 강산에, 이은미 씨 같은 분들이 공연하셨는데, 저는 그때도 연이 없어서 무대엔 오르지 않고 혼자 몰래 개인적으로 참여했어요.
▲ 지난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던 이재명 당 대표의 등장곡을 부르기도 해서 조국혁신당 입당 선언 당시 관심이 더 쏠렸던 거 같아요.
민주당은 제가 뭘 하려고 하거나, 요청한 적도 없어요. 노래도 제안받아서 했고요.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을 응원할 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있었어요. 그때 저도 '현장의 얘길 전하자' 이 정도의 입장이었고요. 이후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 지지 선언을 하셨던 황석영 선생님이 저희 아버지 친구분이셨어요. 이 후보가 대선 준비한다는 시기에 만남이 있어서 운전기사로 갔는데, 저에 대해 이미 알고 계시더라고요. 그때 '현장에 있고, 대중친화력이 있으니 현장 조사를 해달라'고 해서, 그 일을 했던 거고요. 대선 이후 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중심으로 개인적으로 행동했어요. 이태원 참사가 났을 때 음료 봉사를 하고, 유족분들이 심적으로 힘들어하시는데, 국가에서 하는 심리 상담이 불편하다는 얘기가 있어서 민간 상담을 발족시키고요. 대중적으로 알려진 사람이라 얘기하기 편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 생각지도 않았지만, 국회의원이 됐어요. 국회 입성 확정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떠셨나요?
정말 생각 못했죠. 애견 미용에 관심이 생겨서 입당 전화를 받기 전날까지 작업실에서 강아지 털을 깎았거든요.(웃음) 입당 선언을 한 다음부터 선거 유세를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토요일 밤에 전화를 받고, 일요일에 파란 양복을 사고, 월요일 오전 10시에 연설을 해야 했죠. 그다음부터 유세를 돌고, 쉼 없이 달려왔어요. 엄마가 혈관 질환이 있으신데, 선거 당일 응급실에 가셨다가 일반 병원으로 이동했어요. 병실을 확인하고, 집에 와서 유튜브로 선거 개표 방송을 켰는데, 순번 발표가 딱 나오더라고요. 눈물이 나왔어요. 그동안 너무 힘들었던 것도 있고, 앞으로 '어떡하나' 싶기도 했고요. 그러다 점점 책임감을 느꼈고요. '앞으로 화도 내자', '사람들 관계도 뿌리를 쳐야 겠구나' 싶었죠. 인생이 다른 방식으로 살아지겠다 싶었어요.
▲ 국회의원 김재원으로서 발의할 1호 법안이 궁금해요.
블랙리스트 특별법 재개정을 준비 중입니다. 언론, 문화예술인은 특정한 감시, 견제, 검열을 받아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걸 없애지 않으면 지원 혜택도 못 받고, 받는 사람들만 받을 거예요. 제가 모르고 응원했던 선배들처럼, '이번 정권에서 잘 받아서 우리 식구들 먹여 살리자' 이런 게 반복되지 않겠어요? 블랙리스트를 보면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 실무에 있던 사람이라 어떤 입법 활동을 할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문화예술계 생태계가 보다 건강해질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주요 대형 매니지먼트사가 중심이 되는 형태가 아닌, 다양한 색깔의 아티스트들이 나올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고요. 요즘의 실태를 보면 약간은 편향적이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10대 때부터 '연습생'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기르고, 스무살만 넘어도 안 받아주는 곳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예술의 가치가 예쁘고 잘생겨야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또한 우리나라는 문화예술을 보는 눈도 탁월하고, 콘텐츠 생산 능력도 뛰어나요. 김대중 대통령이 혜안을 갖고 '인터넷에 힘써야 한다'고 하신 후, 온라인을 기반으로 해외 시장이 열렸잖아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저작권 문제, 자본의 문제는 여전한 거 같아요. 그래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고민하고 있어요.
▲ 벌써 '이런 법 좀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 같아요.
맞아요.(웃음) 그런데 일정과 미팅이 쏟아져서 정작 제 분야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어요. 특히 5월엔 행사가 많았어요. 이동하면서 눈꺼풀이 열리지 않는데 회의하고, 요즘 매일 5시간 정도 자는 거 같아요. 전 원래 낮과 밤이 바뀐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리듬도 많이 깨져 있어요. 마음 같아서는 잠을 더 줄여서 운동도 하고, 화장도 하고, 업무를 시작할까 싶기도 하지만, 오늘도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더 줄이지 못하겠더라고요.
▲ 어떤 국회의원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업무 성과로 평가받았으면 좋겠어요.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을 돕는 법안을 만들어야겠다 싶고요. 그 과정에서 욕도 먹겠죠.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요.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려 해요. 그리고 지금 젊은 보좌진으로 구성하고 있는데, 제가 아무리 진보적인 마인드를 가져도 젊은 사람들 얘기를 듣고 따라가야 한다 생각하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이 마돈나인데, 그 언니가 1958년생이예요. 그런데 지금도 트렌디하게 활동하잖아요. 그분이 여태껏 계속 앞서나갈 수 있는 건, 계속 새로운 음악을 찾고 새로운 프로듀서와 작업하는 덕분이에요. 제 세상에 매몰되지 않고, 다른 눈을 가진, 진보적인 사람들과 함께 일해보려 합니다.
[이일내일]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주변의 우려와 걱정에도 안정적인 일을 때려치고 '이 일'이 '내 일'이다며 자신만의 길을 진취적으로 걸어가는 분들을 만나 봅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기사를 놓치지 않고 받아볼 수 있습니다. 좋아요는 큰 힘이 됩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