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의 시녀' 취급 받던 사진, 프랑스는 이렇게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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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곡미술관 ‘프랑스현대사진’ 기획전
프랑스 사진가 22명의 작품 86점 선봬
생성AI, 회화 기법 활용 등 사진의 지평 넓혀
프랑스 사진가 22명의 작품 86점 선봬
생성AI, 회화 기법 활용 등 사진의 지평 넓혀
회화나 조각처럼 사진도 시각예술로 볼 수 있을까. 프랑스에서 사진이 탄생한 이후 20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사진은 미술의 영역에서 늘 논쟁적인 장르였다. ‘사건을 기록하는’ 과학적 성취와는 별개로 기계의 힘으로 제작된 이미지는 예술적 허식을 품은 단순한 기술로 여겨졌고, 암실에서 태어났단 이유로 ‘어둠의 자식’으로 불렸다. 19세기 프랑스 화가들이 밝은 바깥으로 나가 찰나의 빛이 주는 아름다움을 담는 인상주의 회화를 탄생시킨 건 사진 예술에 대한 무의식적 반발이었을 지도 모른다.
비록 프랑스 낭만주의 거장 보들레르가 “사진은 과학과 예술의 시녀”라 격하하고,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은 모델 대신 값싼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며 예술의 보조도구로 치부하기도 했지만, 사진은 20세기를 거치며 독자적인 예술 장르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과거 사진이 세상을 분류하기 위한 도구였다면, 오늘날 사진은 세계와 카메라 사이 존재하는 관계를 모색하기 위한 작업을 수행하는 도구”라는 프랑스 사진가 수잔 라퐁의 말처럼 고전사진에서 현대사진을 넘어온 1970년대부터 카메라가 ‘개념을 시각화하는’ 도구가 된 것이다.
프랑스현대사진전은 19세기 중반 사진을 발명한 프랑스에서 발전한 오늘날 사진예술의 수준을 가늠하는 전시다. 인공지능(AI) 등 과학의 발달로 카메라가 구닥다리 기술이 된 지금, 사진이 오히려 단순히 시간을 담는 그릇이 아닌 현실과 상상, 가상을 중첩하는 새로운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는 첨단 미술을 제시하고 있다는 맥락을 읽는 자리다. 최근 국내에서 다채로운 사진전이 열리고 있지만, 프랑스 현대 사진가의 작업이 생소했던 터라 신선하다. 이수균 성곡미술관 부관장은 “사진은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적이고 평등한 매체라 최근 사진전 열풍이 부는 것도 납득이 간다”면서도 “정작 발명국인 프랑스 사진을 만날 기회는 없었단 점에서 이번 전시가 의미를 가진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의 엠마뉘엘 드 레코테가 공동기획자로 참여했다. 레코테는 퐁피두 센터와 파리시립미술관에서 10년 이상 사진 전문 큐레이터로 지내며 현장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는 쟁점을 연구해 왔다. 현재 파리 사진 축제인 ‘포토 데이즈’의 디렉터로 활동하며 이번 전시를 공들여 준비했다. 지난 29일 전시장에서 만난 레코테는 “전시 내내 전통적인 주제와 기법, 그리고 최첨단을 변용해 창작해내는 사진작업 방식에 일종의 긴장감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브로드벡과 드 바르뷔아 커플의 작품 ‘평행의 역사’ 연작은 생성AI 미드저니를 통 만들었다. 한 번에 눈물이 다섯 갈래로 떨어지는 모습이 기괴하다. 어느 시대, 누구의 작품인지 알려주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람 묘사를 통해 AI가 재창작한 것으로 인간의 인지와 기억이 AI의 데이터 저장과 어떻게 다른지를 살필 수 있어 재밌다. 레코테는 “AI가 사진, 예술에 어떤 기여를 하고 또 어떤 도발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작품에 녹아 있다”고 말했다. 라파엘르 페리아는 사진 이미지를 매개 삼아 데생에 가까운 작업을 한다. 전시에 걸린 그의 작품 ‘조류 시장 #4’의 경우 프린트 표면을 긁어낸 ‘그라타주’ 기법이 인상 깊다. 일부러 사진 표면을 규칙적으로 긁어 흰 부분을 드러내는데, 이를 통해 작가는 존재에 대한 기억에 물음표를 던진다. 특히 복제 가능하다는 사진의 특성과 달리 이 작품은 단 한 장으로만 존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작가의 의도가 보다 명징해진다.
플로르의 작업 ‘외젠 D.의 정원’ 연작은 사진의 틀을 가졌지만, 판화에 가깝다. 작가가 파리 들라크루아 미술관 정원에서 채집한 식물 사진을 동판에 새긴 뒤 잉크에 묻혀 찍어내는 ‘포토그라뷔르’ 작업으로 완성했다. 에릭 푸아트뱅의 ‘무제’는 꽃을 따왔단 점에서 플로르 작업과 비슷하지만, 스튜디오에서 실제 식물 크기와 똑같이 찍은 보다 사진에 가까운 작업이다. 마치 사진이 아닌 정물화 같은 엄격함이 느껴지고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는 19세기 암실 작업을 재해석한 것이다. 사진인 듯, 아닌 듯한 이 작품들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예술 하기’로 요약된다. 관점을 뒤틀거나 기묘한 미장센을 구축해 이미지 이면의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고전적인 사진의 개념에서 벗어나 AI같은 과학기술에 촬영을 맡기고, 사진을 깔보던 회화의 기법을 끌어들이는 것 모두 결국은 사진이란 매체를 통해 예술이 보다 풍성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의 제시다. 전시는 8월 18일까지.
유승목 기자
비록 프랑스 낭만주의 거장 보들레르가 “사진은 과학과 예술의 시녀”라 격하하고,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은 모델 대신 값싼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며 예술의 보조도구로 치부하기도 했지만, 사진은 20세기를 거치며 독자적인 예술 장르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과거 사진이 세상을 분류하기 위한 도구였다면, 오늘날 사진은 세계와 카메라 사이 존재하는 관계를 모색하기 위한 작업을 수행하는 도구”라는 프랑스 사진가 수잔 라퐁의 말처럼 고전사진에서 현대사진을 넘어온 1970년대부터 카메라가 ‘개념을 시각화하는’ 도구가 된 것이다.
사진이 태동한 프랑스에서 수확한 현대사진
한국 미술애호가들에게 사진이 회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시각예술 매체로 소개된 것 역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미술관과 이름난 갤러리들이 사진전을 열기 시작했는데, 대다수가 독일이나 미국 중심의 현대사진전이었다. 작품들도 고전적인 스트레이트 사진이 많았다. 사진의 본질적 목표인 재현(再現)을 뛰어넘는 표현매체의 가능성과 실험적 성취를 보여주기엔 아쉬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서울 신문로2가 성곡미술관에서 30일부터 열리고 있는 ‘프랑스현대사진(French Photography Today: A New Vision of Reality)’ 전시가 반가운 이유다.프랑스현대사진전은 19세기 중반 사진을 발명한 프랑스에서 발전한 오늘날 사진예술의 수준을 가늠하는 전시다. 인공지능(AI) 등 과학의 발달로 카메라가 구닥다리 기술이 된 지금, 사진이 오히려 단순히 시간을 담는 그릇이 아닌 현실과 상상, 가상을 중첩하는 새로운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는 첨단 미술을 제시하고 있다는 맥락을 읽는 자리다. 최근 국내에서 다채로운 사진전이 열리고 있지만, 프랑스 현대 사진가의 작업이 생소했던 터라 신선하다. 이수균 성곡미술관 부관장은 “사진은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적이고 평등한 매체라 최근 사진전 열풍이 부는 것도 납득이 간다”면서도 “정작 발명국인 프랑스 사진을 만날 기회는 없었단 점에서 이번 전시가 의미를 가진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의 엠마뉘엘 드 레코테가 공동기획자로 참여했다. 레코테는 퐁피두 센터와 파리시립미술관에서 10년 이상 사진 전문 큐레이터로 지내며 현장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는 쟁점을 연구해 왔다. 현재 파리 사진 축제인 ‘포토 데이즈’의 디렉터로 활동하며 이번 전시를 공들여 준비했다. 지난 29일 전시장에서 만난 레코테는 “전시 내내 전통적인 주제와 기법, 그리고 최첨단을 변용해 창작해내는 사진작업 방식에 일종의 긴장감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AI부터 판화까지…“사진인 듯 아닌 듯”
전시에는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22명의 작가 작품 86점을 모았다. 촉망받는 20대 사진가부터 프랑스 사진계를 주름 잡아 온 80대 원로 작가까지 다양하다. 프린트의 경우 출력 방식과 종이 다양성을 고려해 절반 이상을 파리 현지에서 직접 출력해 보내고, 에디션 없는 빈티지 프린트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는 등 작가들도 이번 전시에 적잖은 기대감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전시장에 발을 들이기 전 일반적인 사진전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작품을 볼 때마다 ‘이게 사진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기 때문. 고전적 촬영 기법과 인화 기술을 쓰면서도 암실에서 벗어나 AI기술을 적용한 사진을 만들거나 젤라틴을 긁어내고 색소를 더하는 등 이미지에 물리적 개입까지 서슴지 않는 등 작품들은 하나같이 독특하다. 지극히 프랑스답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브로드벡과 드 바르뷔아 커플의 작품 ‘평행의 역사’ 연작은 생성AI 미드저니를 통 만들었다. 한 번에 눈물이 다섯 갈래로 떨어지는 모습이 기괴하다. 어느 시대, 누구의 작품인지 알려주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람 묘사를 통해 AI가 재창작한 것으로 인간의 인지와 기억이 AI의 데이터 저장과 어떻게 다른지를 살필 수 있어 재밌다. 레코테는 “AI가 사진, 예술에 어떤 기여를 하고 또 어떤 도발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작품에 녹아 있다”고 말했다. 라파엘르 페리아는 사진 이미지를 매개 삼아 데생에 가까운 작업을 한다. 전시에 걸린 그의 작품 ‘조류 시장 #4’의 경우 프린트 표면을 긁어낸 ‘그라타주’ 기법이 인상 깊다. 일부러 사진 표면을 규칙적으로 긁어 흰 부분을 드러내는데, 이를 통해 작가는 존재에 대한 기억에 물음표를 던진다. 특히 복제 가능하다는 사진의 특성과 달리 이 작품은 단 한 장으로만 존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작가의 의도가 보다 명징해진다.
플로르의 작업 ‘외젠 D.의 정원’ 연작은 사진의 틀을 가졌지만, 판화에 가깝다. 작가가 파리 들라크루아 미술관 정원에서 채집한 식물 사진을 동판에 새긴 뒤 잉크에 묻혀 찍어내는 ‘포토그라뷔르’ 작업으로 완성했다. 에릭 푸아트뱅의 ‘무제’는 꽃을 따왔단 점에서 플로르 작업과 비슷하지만, 스튜디오에서 실제 식물 크기와 똑같이 찍은 보다 사진에 가까운 작업이다. 마치 사진이 아닌 정물화 같은 엄격함이 느껴지고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는 19세기 암실 작업을 재해석한 것이다. 사진인 듯, 아닌 듯한 이 작품들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예술 하기’로 요약된다. 관점을 뒤틀거나 기묘한 미장센을 구축해 이미지 이면의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고전적인 사진의 개념에서 벗어나 AI같은 과학기술에 촬영을 맡기고, 사진을 깔보던 회화의 기법을 끌어들이는 것 모두 결국은 사진이란 매체를 통해 예술이 보다 풍성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의 제시다. 전시는 8월 18일까지.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