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에 사는 김모(93세)는 국가유공자이다. 해가갈수록 거동이 불편해지고 있지만 전쟁 당시의 기억은 어제 마냥 또렷하다. 김씨는 부모님과 함께 고향에서 농사를 짓다가 6.25 전쟁이 일어나자 자원 입대했고, 전투부대를 지원하는 공병부대에 배치됐다. 전시 상황에서 전방 후방이 따로 없었다.

상황이 위급하다보니 고작 일주일간 기본 군사 훈련을 받은 후 전쟁에 투입됐다. 소속부대는 대한민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폭파된 다리를 재건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전 국토 기반시설이 끊어진 상황에서 전쟁에서 승기를 가져올 수 있도록 군용물자를 비롯해 국민생활 필수품이 유통될 수 있는 주요 시설을 닦았다. 김씨는 군의 요청으로 전시 복구를 위해 2년간 더 복무한 후 25살의 나이로 제대했다. 이후 줄곧 고향에 머무르면서 농사를 지었으나, 현재는 직접 농사를 짓기 어려워 정부의 기초생활수급에 의지하면서 살고 있다.

'2021년 국가유공자 생활실태조사' 결과 국가유공자의 15.4%는 김씨와 같이 중위소득 50% 미만의 저소득층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가보훈 기본법에는 국가보훈 대상자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유공자와 가족 및 유족이 영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 의지가 표명되어 있으나, 일부 국가유공자들에게는 지원의 손길이 닿지 않고 있다.

김씨의 집은 준공 시기조차 공부상 확인할 수 없는, 흙벽과 슬레이트 지붕으로 이뤄진 오래된 주택이다. 큰 비가 내리고 나면 어김없이 흙벽은 무너져 내렸고, 주변 지인의 도움으로 무너진 곳을 다시 쌓아 올렸다. 뒤틀려 틈이 벌어진 슬레이트 지붕 사이로는 비가 들이쳐 이불과 가재도구가 젖었고, 마른 날 가재 도구를 말렸다.

지난해 여름 집중 호우 때는 집 안까지 비가 쏟아져 내렸다. 김씨는 거동이 불편한 고령의 나이에 혼자서 집 밖으로 물을 퍼내느라 고생했던 이야기를 하며 한숨지었다. 폭우 이후 보수했던 화장실 외벽도 다시 기울어지고 있어 화장실 이용도 불안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남은 여생을 다하기를 바라지만, 보수할 여력도 없어 참고 견디어야 하는 불편함은 커져갔다.

김씨는 국가유공자를 위한 ‘명예를 품은 집’ 사업으로 더 이상 폭우 걱정없이 살 수 있게 됐다. ‘명예를 품은 집’은 보훈영웅 소유의 노후 주택을 개보수하는 LH 사회공헌 사업이다. 국가보훈부에서 주거취약 보훈영웅을 선별해서 LH에 추천하면 개보수 필요 여부, 작업 대상 등을 가려 주택 개보수를 진행한다. 지난해 8월부터 진행된 '명예를 품은 집' 사회공헌사업에 LH는 총 3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주거취약 보훈영웅 111세대의 주거환경을 개선했다. 올해에는 노후주택 120가구에 대한 보수를 추가 진행한다.

김씨의 경우 ‘명예를 품은 집’ 사업을 통해 슬레이트 지붕을 교체했고 기울어진 화장실 흙벽도 보수했다. 창호를 교체해 기밀성을 높이고, 난방 효율이 높은 최신 보일러로 교체했다. 김씨는 “그 시절 대한민국 장정이라면 누구나 감내해야 할 의무를 다했을 뿐”이라면서, “이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 그냥 살았는데, LH 덕에 걱정없이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명예를 품은 집’ 사업에는 기초 생활시설 개선을 포함해, 노령의 나이·장애 등 대상자 특성에 맞춘 유니버설 디자인과 폭염과 한파를 대비하는 에너지 효율 개선 시공이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미끄림 방지 매드, LED 비상조명등, 투척용 소화기 및 화재감지기 등 보훈영웅의 생활 주거안전과 화재예방을 위한 물품도 함께 제공한다.

LH는 국가유공자 소유의 노후주택을 개보수하는 ‘명예를 품은 집’ 외에도 국가유공자를 위한 주택을 신축(신축다세대 주택)해서 임대주택으로 공급한다. 국가유공자 특화주택인 ‘보훈보금자리’는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하고, 공원, 병원 등 생활편의시설이 두루 갖춰진 곳에 입지한다. 냉장고, 세탁기 등 기본적인 생활 가전제품도 구비되어 있다. 보훈보금자리 입주대상자는 국가보훈부 추천과 임대주택 입주자격 검증을 거쳐 선정한다. 2022년 7월 서울 강동구에서 18가구가 첫 입주를 완료했고, 지난해 7월에는 의정부에 37가구를 공급했다. 올해에는 수원에서 18호가 새롭게 들어선다. 보훈보금자리 외에도 LH 임대주택에는 국가유공자 가족 약 7500가구가 거주한다.

LH 조경숙 경영지원본부장은 “국가를 위해 헌신했던 국가유공자들의 영예로웠던 삶이 마지막까지 편안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불편하고 낡은 집을 ‘명예를 품은 집‘으로 지속적 변모시켜 나갈 예정”이라면서 “국가유공자와 그 후손이 더욱 존중받는 사회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솔선수범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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