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게임 체인저’로 통하는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기 위해 1조원 이상을 지원한다. 시장 판도를 바꿀 ‘꿈의 배터리’ 패권을 잡기 위해 전력투구에 나선 것이다. 중국 배터리 기업들도 이르면 2026년부터 전고체 배터리 양산 계획을 밝히는 등 적극 공세를 펼치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로 판세를 뒤집으려던 한국 배터리 업계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분석이다.

30일 현지 매체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전고체 배터리 연구·개발(R&D)에 총 60억위안(약 1조13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하고, 올해 초부터 자금 투입에 나서고 있다. 배터리 기업 CATL, 비야디(BYD)를 포함해 상하이자동차, 지리자동차, 이치자동차 등 6곳이 지원 대상이다.

한국 정부의 지원 금액(2028년까지 1172억원)의 10배다. 각 기업이 자체로 투자하는 금액을 고려하면 격차는 훨씬 클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정부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자, 기존엔 나트륨 배터리를 차세대 제품으로 밀던 중국 배터리 업계가 전고체 배터리로 개발 방향을 일제히 틀고 있다.

세계 1위 배터리 기업인 CATL의 태도 변화가 가장 눈에 띈다. 쩡위친 CATL 회장은 지난 3월 실적 발표회에서 “전고체는 기술 난제가 많아 상품화까지 멀었다”고 말하며 보수적인 입장이었다. 그러나 지난달엔 2027년부터 전고체 배터리를 소량 생산하겠다고 밝히며 방향을 꺾었다.

상하이차는 전고체 배터리 생산라인을 내년에 갖추고 2026년부터 양산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한국 기업 중에선 삼성SDI가 2027년 상용화로 가장 빠르고 SK온은 2028년, LG에너지솔루션은 2030년 양산 목표다. 중국 기업과 시점이 같거나 느리다.

나트륨 배터리 개발이 예상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는 점도 중국 배터리 업계가 전고체 배터리를 향해 달려가는 이유로 꼽힌다. 나트륨 배터리는 리튬 배터리보다 가격을 확 낮춘 차세대 제품으로 주목받았지만, 상용화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 관계자는 “나트륨 배터리 상용화가 어려워지자, 개발을 주도하던 중국 교수들이 정부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다는 소문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 배터리 업계는 중국의 ‘전고체 굴기’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중국이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로 저가 시장을 잡는 대신 한국 기업들은 삼원계 배터리로 고급 전기차 시장을 점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이 전고체 배터리를 양산하게 되면 고가 시장에서도 경쟁을 펼쳐야한다.

한국 기업들이 LFP 배터리 개발을 등한시 해 고객사를 뺏긴 사태가 고가 시장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기업들이 양산 목표를 실제로 지킬 수 있을진 미지수”라면서도 “정부 주도로 막대한 자금과 인력이 투입되는 만큼 결코 안심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