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5월 24일 오전 10시 15분

대형 증권사들이 앞다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분야 사모펀드를 조성하고 있다. 부동산 PF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자 증권사들이 새 먹거리로 PF 투자 펀드를 속속 출시해 시장을 선점하려는 모양새다.
[단독] KB·미래·하나證 'PF 펀드' 조성 뛰어든다
30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KB증권은 2000억원 규모의 ‘KB뉴스타부동산제1호사모투자합자회사’(가칭) 펀드 조성을 준비하고 있다. 이르면 다음달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본격적으로 자금 모집을 시작할 방침이다. KB증권이 20%에 해당하는 400억원을 후순위로 뒷받침할 계획이다. KB금융 계열사들도 출자자(LP)로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

이 펀드는 국내외 실물 부동산, 국내 개발사업 토지 브리지론, PF 대출 등 부동산 전 단계에 투자할 수 있도록 설계된 부동산 블라인드 펀드다. 아파트, 주상복합, 오피스, 지식산업센터, 데이터센터 등 다양한 자산군에 투자할 수 있다. 목표 내부수익률(IRR)은 연 12%다. 기관 전용 사모펀드란 연기금, 금융회사 등 일부 전문투자자만 투자할 수 있다.

KB증권을 비롯해 올해 증권가에서 모집하는 부동산 사모펀드 금액은 2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사 중에선 NH투자증권이 가장 먼저 뛰어들었다. ARA코리아자산운용과 손잡고 2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다. 밸류애드(가치 부가)와 오퍼튜니스틱(일시적 유동성 부족에 자금 대여) 전략을 섞은 펀드다. 부동산 PF 분야의 강자로 꼽히는 메리츠증권도 펀드레이징에 들어가 3000억원 규모 펀드를 조성하고 있다. 이외에 미래에셋증권(3000억원 목표), 하나증권(3000억원), 한국투자증권(2000억원), 현대차증권(2000억원)도 목표금액을 설정하고 펀드 조성에 한창이다.

증권사들이 PF 전용 펀드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부동산 PF 구조조정이 임박했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올해 안에 상당수 PF 사업장이 정리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당국은 230조원에 달하는 국내 PF 사업장 가운데 5~10%가 구조조정 대상에 오를 것으로 관측했다. 23조원에 달하는 PF 부실 물량이 나올 수 있는 셈이다. 금융당국은 은행, 보험 등을 통해 최대 5조원 규모 공동 대출을 조성하기로 했다. 여기에 증권사도 대거 나서 경색된 PF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구원투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증권사들은 기존 PF에 물린 대규모 손실 상당 부분을 이번 PF 전용 펀드로 만회하겠다는 계획이다. 주식이 떨어지자 일단 손절하고 저점 매수를 노리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증권사들은 주로 부동산 PF 선순위 대출에 집중적으로 돈을 담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물 부동산의 선순위 담보대출에 투자할 수도 있다. 부실채권(NPL)이나 브리지론을 본PF로 전환하는 데도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들이 앞다퉈 PF 펀드를 조성하는 배경엔 PF 부서의 일감이 없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부동산 PF가 급격히 부실화하면서 상당수 증권사 PF 임직원들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놓여 있다.

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