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유럽신장학회(ERA)에서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키워드’였다. 신장투석기 등 의료기기 개발업체들은 폐기물 배출은 최소화하면서도 환자의 편의성을 높인 새로운 기기들을 선보였다.세계 최대 인공투석기기 업체 프레제니우스 메디칼케어(FMC), 가정용 복막투석기로 유명한 박스터 등의 의료기기 기업들은 지난 23~26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럽신장학회(ERA 2024)에 참가해 최신 의료기기를 공개했다. 신장에서 혈액이나 노폐물이 제대로 걸러지지 못하는 신장질환 환자들은 신장 기능이 회복될 때까지 신장 투석을 받기도 한다. 혈액투석 시장은 미국 FMC와 박스터 등 미국 기업들이 독과점하고 있다.FMC는 투석기가 작동하는 데 필요한 혈액량(EBV)을 세계에서 최소화한 혈액투석기를 공개했다. 혈액투석이란 환자의 혈액이 관을 타고 체외로 나와 투석기를 통과한 후 다시 체내로 유입되는 치료다.마르코 루에고 FMC 마케팅 책임자는 “관은 PVC 프리의 친환경 소재 ‘바이오파인’을 사용했다”며 “바이오파인을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EBV를 줄이기 위해 혈액회로(bloodline)를 완전히 새롭게 다시 디자인했다”고 말했다.혈액량이 줄면 혈액에서 나온 노폐물의 절대량도 줄어들기 때문에 의료폐기물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루에고 책임자는 “혈액이 투석기를 도는 과정 자체를 압축, 단축시키는 연구개발(R&D)을 진행해 개발했다”며 “세계 다른 인공투석기기 개발 경쟁업체들과 비교했을 때 FMC보다 적은 EBV를 갖고 있는 곳은 없다”고 덧붙였다.박스터는 복막투석기를 선보였다. 복막투석이란 환자 복강에 관을 삽입하고 노폐물 등을 배출하는 치료법이다. 환자 몸 안에 깨끗한 투석액을 6시간가량 집어넣어야 하는데, 그 투석액을 보관하는 ‘복막투석액백(bag)’을 친환경적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지속 중이다.ERA 현장에서 만난 박스터 관계자는 “백 소재 자체는 친환경적으로 만들고 있지만 가정용 복막투석에서 사용되는 백은 재사용해서는 안된다”며 “재활용, 지속가능성은 여전히 숙제지만 발전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스톡홀름=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미국 법무부가 대마초 규제를 기존 1등급에서 3등급으로 낮추기 위한 규칙 제정 절차에 돌입했다. 3등급에는 의약용 마약류로 분류되는 케타민 등이 포함돼있다. 한국바이오협회는 이번 움직임을 계기로 대마초의 의학적 활용이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한국바이오협회는 미국 법무부가 보건복지부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자문을 토대로 대마초 규제 등급을 변경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고 20일 발표했다.대마초는 미국이 1970년 통제물질법을 만든 이후 계속해서 1등급 물질로 분류돼왔다. 1등급 물질은 중독·남용 위험이 높아 의료용으로 쓸 수 없다. 헤로인, 엑스터시, 리서직산디에틸아마이드(LSD) 등이 여기 포함된다.반면 3등급 약물은 의료용으로 활용 가능하다. 신체적·정신적 의존성은 ‘중간~낮음’으로 분류된다. 물론 3등급이라 해서 오락용으로 합법화되거나, 허가 없이 거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 내에서 대마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길은 대폭 넓어지게 된다.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는 “보건복지부의 의학적, 과학적 결정과 법무부 법률 고문실(OLC)의 자문에 비춰 법무부 장관은 등급 변경 절차를 시작했다”며 “법무부 산하 마약단속국(DEA)은 남용 가능성, 의학적 용도, 안전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등급 변경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이어 “미국에서 대마초 규제 등급이 낮아진다면, 의학적 연구에 대한 제한도 완화될 것”이라며 “앞으로 사용이 합법화돼 의학적 활용도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덧붙였다.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육아 지원’ 선진국으로 꼽히는 유럽에서 저출산이 다시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해 핀란드(1.26명)와 프랑스(1.68명)의 출산율은 각각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핀란드는 일본(2022년 1.26명)과 같은 처지가 됐다. 가치관의 다양화, 사회·경제적 불확실성이 확산한 탓이라는 분석이다.1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핀란드의 2023년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은 1.26명(속보치)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0.06명 하락해 2년 연속 최저치를 경신했다.핀란드는 임신 초기부터 부모와 아이를 꼼꼼하게 돌봐주는 ‘네우볼라’ 등 육아 지원이 잘돼있는 나라로 유명하다. 유엔 ‘세계행복보고서(WHR)’에서 올해까지 7년 연속 ‘가장 행복한 나라’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출산율은 최근 최고치였던 2010년(1.87명)의 3분의 2 수준까지 떨어졌다.프랑스에서도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2023년은 전년 대비 0.11명 하락한 1.68명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프랑스는 1990년대 초반까지 출산율이 계속 낮아지다가 육아 지원 확대와 근로시간 단축, 남성의 육아 참여 촉진 등으로 2010년 2.03명까지 회복했다. 그러나 2011년 이후로는 코로나 영향이 있었던 2021년을 제외하고는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왔는데도 출산율이 낮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리카 야로바라 핀란드 투르크대 교수는 “핀란드에서는 여러 가지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아이를 전혀 낳지 않는 사람이 늘고 있으며, 가족 수당을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카트린 스콜네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 부교수는 “지구 온난화, 높은 인플레이션 등 경제적 불확실성이 아이를 낳지 않거나 적게 낳고 싶어 하게 한다”고 말했다. 부모가 되지 않아도 긍정적이고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가치관의 확산도 배경으로 작용한다.위기감이 고조되면서 핀란드는 출산율 장기 목표를 1.8명으로 설정한 인구정책 가이드라인을 2021년 발표했다. 프랑스는 총 6개월의 출산휴가를 쓰면 최대 3세까지 육아휴직은 짧아지지만, 혜택은 대폭 늘리는 방안을 추진한다. 스콜네 부교수는 “여성의 취업을 더욱 지원해 가정과 일의 균형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다른 선진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미국은 2023년 출산율이 1.62명으로, 195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저출산은 동아시아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일본은 지난해 출생아 수가 전년 대비 5.1% 감소한 75만8631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일본종합연구소는 지난해 출산율을 1.20명 정도로 추산한다. 한국은 지난해 출산율이 0.72명으로 최저치를 기록했고, 2025년에는 0.65명으로 떨어질 것으로 추산된다.일본은 2023년 혼인 건수가 5.9% 감소했다. 결혼은 출산과 밀접하게 연관된 만큼 출산 감소는 피할 수 없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유럽처럼 결혼하지 않아도 아이 낳기 좋은 환경을 만들면 된다는 시각도 있지만,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고 지적했다.모테기 료헤이 스페인 폼페우 파브라대 연구원은 “유럽 11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커플이 이후 결혼해 자녀를 양육하는 비율이 60% 이상이었다”고 말했다. 육아에 있어서 결혼은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는 설명이다.일본의 저출산 문제는 결혼과 출산을 원해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모테기 연구원은 “결혼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 아이를 낳고 싶은 사람이 원하는 만큼 자녀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 투 트랙 정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도쿄=김일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