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저렴한 가격은 언제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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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직구 트렌드 美→中 변화
저렴한 가격 따라 소비자 이동
과거 이마트도 초저가로 승기
유통 본질은 저렴한 가격인데
정부가 물결 되돌릴 수 없어
국내 유통사 최저가 지원 나서야
안재광 유통산업부 차장
저렴한 가격 따라 소비자 이동
과거 이마트도 초저가로 승기
유통 본질은 저렴한 가격인데
정부가 물결 되돌릴 수 없어
국내 유통사 최저가 지원 나서야
안재광 유통산업부 차장
미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TV를 구매한 건 4~5년 전쯤이었다. 한국산 TV를 ‘반값’에 살 수 있다는 지인의 말에 솔깃했다. 반신반의하고 쇼핑몰을 뒤졌는데, 정말 반값 구매가 가능했다. 한국에선 300만원에 가까운 제품을 배송비와 관세를 포함해 150만원가량에 샀다. 익숙하지 않은 해외 사이트를 찾고, 회원 가입해서 할인 쿠폰을 받고, 배송 대행을 맡기는 등의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아끼는 비용을 감안하면 만족스러웠다. 한동안 미국 직구를 잊고 지내다가 작년에 중국 직구를 새로 알게 됐다. 한 대기업 임원이 무선 이어폰을 몇천원에 샀다고 알려준 게 계기였다. 이건 또 뭔가 싶었다. 곧바로 접속해 무선 이어폰 두 개를 1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샀다. 기대한 것 이상이었다. 삼성과 애플의 수십만원짜리 무선 이어폰을 조잡하게 흉내 낸 것 치곤 음질이 좋았다. 압도적으로 저렴한 가격 앞에 늦은 배송, 유해물질 검출 등의 문제는 ‘문제’로 인식되지 않았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사람들이 해외 직구를 즐겨 하게 된 주된 이유는 저렴한 가격에 있는 것 같다. 상품의 구색과 품질은 그 뒤에 따라온다. 물건을 싸게 사고 싶은 건 현대 소비자의 근원적 욕망이다. 돌이켜 보면, 이런 욕망을 충족해 준 유통 기업이 늘 ‘승자’가 됐다. 지금은 온라인 쇼핑에 밀려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마트도 한때 그랬다. 1993년 서울 창동에 첫 매장을 열었을 때 이마트는 홍보 전단에 “최대의 고객 만족은 가격 만족이란 소매업의 기본을 이제야 실천할 때가 됐다”고 썼다. 이마트 홈플러스 같은 곳을 지금은 ‘대형마트’라고 하지만 당시엔 ‘할인점(discount store)’으로 불렀다. ‘대형’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가격’이 중요했다는 얘기다. ‘매일 최저가(Everyday Low Price)’ 경쟁이었다. 소비자가 다른 마트에서 더 싼 가격을 찾으면 차액의 몇 배를 내주고, 담당 직원은 시말서를 쓰는 게 흔한 풍경이었다. 쿠팡이 나타나선 갑자기 배송이 화두가 되는 듯싶었다. ‘로켓배송’을 앞세운 쿠팡은 온라인 쇼핑의 고질병인 늦은 배송을 단번에 고쳤다. CJ대한통운 같은 택배회사를 통째로 세워서 단 하루 만에 물건을 가져다줬다. 쿠팡은 “바보야, 문제는 배송이야”라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여기에 모두가 속았다. 롯데 신세계 GS 등 국내 유통 대기업이 앞다퉈 배송 강화에 나선 계기가 됐다. 하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처방이 잘못된 탓이었다.
쿠팡은 앞에선 빠른 배송을 외치고, 뒤에선 최저가를 구현하고 있었다. CJ제일제당 등 대기업과 전쟁을 하다시피 하면서 가격을 후려쳤다. 제조사로선 죽을 맛이었지만, 소비자들에겐 이득이었다. 롯데 신세계 등이 이 ‘성동격서’ 전략을 뒤늦게 눈치채고 빠른 배송에서 한 발 뺐지만, 쿠팡에 이미 가격 결정권까지 빼앗긴 판이었다.
그랬다. 승부의 관건은 매장 크기도, 배송도 아니었다. 중국 e커머스가 온갖 문제를 일으켜도 소비자들이 많이 쓰는 이유도 결국 가격에 있다. 이 도도한 물결은 거스르기 힘든 것이다. 그런데 과거 유통사들이 했던 실수를 정부가 또 저질렀다. 국가통합인증마크(KC)를 받지 않은 중국 직구 상품의 수입을 금지하겠다고 5월 16일 발표한 것이다. 국내 유통사들 반응을 취재했더니 ‘역시나’였다. “그런다고 사람들이 안 살 것 같으냐”고 했다. 가격 앞엔 장사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 발표는 사흘 만에 ‘없던 일’이 됐다.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반발이 확산된 영향이었다.
정부가 발암물질투성이 제품을 국내로 실어 나르는 중국 e커머스를 규제하고 싶었다면 처방이 잘못됐다. 국내 유통사들이 물건을 지금보다 더 싸게 팔 수 있는 방안을 내놨어야 했다. 소비자도, 기업도 원하는 것 말이다. 유통사들은 그 방안도 갖고 있다. 일반상품 대비 20~30% 저렴한 자체브랜드(PB) 제품을 육성하고,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을 완전히 풀어 온라인 쇼핑과 치열한 경쟁을 유도하며, 네이버 등 플랫폼 기업의 가격 비교 기능을 활성화하는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정부는 관심이나 의지가 없어 보인다. PB 제품과 플랫폼 육성은 규제로, 마트 영업시간 제한은 유지로 가닥이 잡혔다. 이러고도 국내 유통사에 알리, 테무와 싸워서 이기라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사람들이 해외 직구를 즐겨 하게 된 주된 이유는 저렴한 가격에 있는 것 같다. 상품의 구색과 품질은 그 뒤에 따라온다. 물건을 싸게 사고 싶은 건 현대 소비자의 근원적 욕망이다. 돌이켜 보면, 이런 욕망을 충족해 준 유통 기업이 늘 ‘승자’가 됐다. 지금은 온라인 쇼핑에 밀려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마트도 한때 그랬다. 1993년 서울 창동에 첫 매장을 열었을 때 이마트는 홍보 전단에 “최대의 고객 만족은 가격 만족이란 소매업의 기본을 이제야 실천할 때가 됐다”고 썼다. 이마트 홈플러스 같은 곳을 지금은 ‘대형마트’라고 하지만 당시엔 ‘할인점(discount store)’으로 불렀다. ‘대형’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가격’이 중요했다는 얘기다. ‘매일 최저가(Everyday Low Price)’ 경쟁이었다. 소비자가 다른 마트에서 더 싼 가격을 찾으면 차액의 몇 배를 내주고, 담당 직원은 시말서를 쓰는 게 흔한 풍경이었다. 쿠팡이 나타나선 갑자기 배송이 화두가 되는 듯싶었다. ‘로켓배송’을 앞세운 쿠팡은 온라인 쇼핑의 고질병인 늦은 배송을 단번에 고쳤다. CJ대한통운 같은 택배회사를 통째로 세워서 단 하루 만에 물건을 가져다줬다. 쿠팡은 “바보야, 문제는 배송이야”라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여기에 모두가 속았다. 롯데 신세계 GS 등 국내 유통 대기업이 앞다퉈 배송 강화에 나선 계기가 됐다. 하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처방이 잘못된 탓이었다.
쿠팡은 앞에선 빠른 배송을 외치고, 뒤에선 최저가를 구현하고 있었다. CJ제일제당 등 대기업과 전쟁을 하다시피 하면서 가격을 후려쳤다. 제조사로선 죽을 맛이었지만, 소비자들에겐 이득이었다. 롯데 신세계 등이 이 ‘성동격서’ 전략을 뒤늦게 눈치채고 빠른 배송에서 한 발 뺐지만, 쿠팡에 이미 가격 결정권까지 빼앗긴 판이었다.
그랬다. 승부의 관건은 매장 크기도, 배송도 아니었다. 중국 e커머스가 온갖 문제를 일으켜도 소비자들이 많이 쓰는 이유도 결국 가격에 있다. 이 도도한 물결은 거스르기 힘든 것이다. 그런데 과거 유통사들이 했던 실수를 정부가 또 저질렀다. 국가통합인증마크(KC)를 받지 않은 중국 직구 상품의 수입을 금지하겠다고 5월 16일 발표한 것이다. 국내 유통사들 반응을 취재했더니 ‘역시나’였다. “그런다고 사람들이 안 살 것 같으냐”고 했다. 가격 앞엔 장사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 발표는 사흘 만에 ‘없던 일’이 됐다.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반발이 확산된 영향이었다.
정부가 발암물질투성이 제품을 국내로 실어 나르는 중국 e커머스를 규제하고 싶었다면 처방이 잘못됐다. 국내 유통사들이 물건을 지금보다 더 싸게 팔 수 있는 방안을 내놨어야 했다. 소비자도, 기업도 원하는 것 말이다. 유통사들은 그 방안도 갖고 있다. 일반상품 대비 20~30% 저렴한 자체브랜드(PB) 제품을 육성하고,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을 완전히 풀어 온라인 쇼핑과 치열한 경쟁을 유도하며, 네이버 등 플랫폼 기업의 가격 비교 기능을 활성화하는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정부는 관심이나 의지가 없어 보인다. PB 제품과 플랫폼 육성은 규제로, 마트 영업시간 제한은 유지로 가닥이 잡혔다. 이러고도 국내 유통사에 알리, 테무와 싸워서 이기라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