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만 20년을 맞은 지구당 부활 논의가 정치권에서 뜨겁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 양당의 유력 차기 당권주자들이 부활에 힘을 실었다. 청년·지역 정치 활성화를 위해 지구당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당 대표 권력 강화와 토호세력 발호 등 부작용이 크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논의 결과에 따라 한국 정치 지형이 다시 한번 바뀔 수 있어 주목된다.

○정치 신인 활로 넓어지지만…

2004년 정당법 개정 이전까지 운영된 지구당은 지역에서 독자 사무실을 내고 상근 인력을 채용할 수 있었다. 선거기간 이외에 후원금을 모금하는 것도 가능했다. 지금은 현역 국회의원만 할 수 있는 권한이다.

2002년 한나라당이 대기업들로부터 차량을 이용해 불법 정치 자금을 받은 이른바 ‘차떼기 사건’ 이후 “정경 유착의 폐해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폐지됐다. 지구당이 지역 기업 및 유력 인사들로부터 돈을 모금하고 이권을 몰아주는 통로 역할을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지구당이 폐지되면서 자금력이 부족한 정치 신인과 청년 정치인들은 지역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정치활동을 할 공간이 크게 좁아졌다. 지난 30일 지구당 부활을 골자로 하는 ‘지역정치 활성화법’을 발의한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역민과의 원활한 소통을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전 위원장도 “정치 신인과 청년들에게 현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지구당을 부활하는 것이 정치개혁”이라며 힘을 실었다. 이 대표 역시 비슷한 이유에서 지구당 부활에 찬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의 한 서울 지역 조직위원장은 “여야를 막론하고 원외 인사들에게는 절실한 제도”라면서도 “여야의 지지세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지역에서는 낙선한 상대 당 후보가 세를 불릴 수 있어 의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릴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치권·지역 간 검은 유착 부추겨"

반면 당 대표의 권한이 지나치게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여러 견제 장치를 도입하더라도 실질적인 지구당 위원장 임명권이 당 대표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양당의 차기 당권에 가까이 있는 이 대표와 한 전 위원장이 이득을 누릴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르면 7월 전당대회가 치러지는 여당의 대권주자들이 잇따라 반대 입장을 밝힌 이유다. 지구당을 폐지하는 ‘오세훈법’(정치자금법·정당법·공직선거법 개정안)을 2004년 발의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31일 자신의 SNS에 “지구당은 일극 제왕적 당 대표를 강화할 뿐”이라며 “(지구당 폐지는) 선거와 공천권을 매개로 지역 토호·지구당 위원장·당 대표 사이에 형성되는 정치권의 검은 먹이사슬을 끊어내고자 하는 것이 요체였다”고 밝혔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반(反)개혁일 뿐만 아니라 여야의 정략적인 접근에서 나온 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구당 위원장 본인이 다른 사람 진입을 막는 장벽을 치는 모습이 나올 수 있다”(이준석 개혁신당 의원)는 지적도 제기된다.

앞서 21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도 지구당 부활을 주장했고, 관련 법안이 발의됐으나 폐기됐다. 황우여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원내 중심으로 정치 개혁을 한 미국의 모델을 따라 당협 체제를 택했던 것인데, 장단점이 있다”며 “원외 인사를 포함해 다양한 의견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 지구당

과거 정당법에 따른 정당의 공식 지역 하부 조직. 지구당 위원장은 지역 사무실을 내고 상시 정치 후원금을 받을 수 있다.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 이후로 정치 개혁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2004년 ‘오세훈법’에 따라 지구당 대신 현행 당협위원회 체제가 정착됐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