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7시(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 국립대만대(NTU) 스포츠센터.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에 4200석 규모 체육관은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일요일 저녁에 열린 테크기업 행사로 대만대 체육관이 꽉 찬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트레이드 마크인 검정 가죽 재킷을 입은 황 CEO가 무대에 나타나자 환호가 쏟아졌다. 록스타의 공연장 같은 분위기였다. 한 외신 기자는 “애플도 이렇게 많은 사람을 불러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인파는 불과 2년 전 ‘게임용 반도체 회사’였던 엔비디아가 지금 어떤 위상을 갖게 됐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세계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의 90%를 장악하면서 엔비디아 주가는 2년 전과 비교해 7배 가까이 올랐다. 시가총액이 2조6960억달러(약 3730조원)로 세계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초거대 기업이 됐다.

이날 황 CEO는 연설의 대부분을 AI 소프트웨어에 할애했다. AI 반도체만 잘 만드는 하드웨어 기업이 아니라 AI 기술 구현의 관문 역할을 하는 ‘플랫폼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전략을 대내외에 공표했다. 이날 엔비디아는 의료, 우주, 로봇 등의 첨단 산업 분야에 특화한 AI 소프트웨어를 공개했다.

황 CEO는 여러 산업 분야에서 활용된 사례도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우주 탐사가 대표적이다. 미국 외계 생명체 탐사 연구소 SETI는 엔비디아 AI 소프트웨어를 통해 전파 망원경 데이터를 분석한다. 초당 테라비트에 달하는 데이터를 AI가 분석해 희귀한 천체 현상까지 감지한다는 설명이다.

황 CEO는 엔비디아가 공들이고 있는 ‘디지털 트윈’도 머지않아 상용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업들의 시행착오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황 CEO는 전자제품 수탁 제조사 폭스콘이 현실과 똑같은 가상의 ‘복제 공장’을 만들고, 미래에 투입할 AI 로봇을 실제 환경처럼 실험해 보는 것을 예시로 들었다. 차세대 AI 가속기에 특화한 반도체 패키지 ‘블랙웰’ 시리즈에 대한 언급도 빠뜨리지 않았다. 황 CEO는 “블랙웰 AI 가속기를 통한 차세대 산업혁명이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타이베이=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