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허브였던 홍콩, 이젠 中 변방도시로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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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INSIGHT
글로벌 경쟁서 밀려나는 홍콩 현장 리포트
영어가 사라졌다
어디서나 영어 쓰던 식당가
대부분 중국어 메뉴판만
영어 못하는 종업원 더 많아
떠나는 글로벌 기업들
中 정부, 홍콩 자유 박탈하자
구글·MS·GM 등 대탈출 행렬
웹사이트 차단·검열도 강화
美 기업인들 임시폰 사용도
서두르는 '홍콩의 중국화'
中본토기업의 홍콩 진출 가속
식당엔 와인 대신 고량주 늘어
"더이상 국제도시가 아니다"
글로벌 경쟁서 밀려나는 홍콩 현장 리포트
영어가 사라졌다
어디서나 영어 쓰던 식당가
대부분 중국어 메뉴판만
영어 못하는 종업원 더 많아
떠나는 글로벌 기업들
中 정부, 홍콩 자유 박탈하자
구글·MS·GM 등 대탈출 행렬
웹사이트 차단·검열도 강화
美 기업인들 임시폰 사용도
서두르는 '홍콩의 중국화'
中본토기업의 홍콩 진출 가속
식당엔 와인 대신 고량주 늘어
"더이상 국제도시가 아니다"

지난달 29일 홍콩의 한 식당에서 만난 이탈리아인 프란체스코 씨는 휴대폰에 깔린 구글 사진 번역 앱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과거 홍콩에 왔을 땐 메뉴판에 중국어와 영어가 동시에 표기돼 있었는데, 이제 중국어로만 적혀 있는 식당이 대부분”이라며 “구글 번역 앱이 없으면 음식 주문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현실화된 홍콩 엑소더스
1980~1990년대 홍콩은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 도시로 손꼽혔다. 자유로운 외환 거래, 유연한 노동시장, 낮은 세율과 최소한의 규제는 전 세계 큰손들이 홍콩으로 몰려든 이유다. ‘중국인 동시에 중국이 아닌’ 매력적인 지위를 활용한 홍콩은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세계 금융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했다.하지만 홍콩 민주화 운동으로 위기를 느낀 중국 정부가 홍콩의 자유를 박탈하고 통제를 강화하면서 글로벌 금융 중심지 홍콩의 위상도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홍콩 사모펀드와 벤처캐피털의 자본 조달액은 102억달러에 그쳤다. 이는 2021년 533억달러의 자금을 유치한 것과 비교해 81% 줄어든 수치다. 자본시장이 냉각되면서 골드만삭스, JP모간, 씨티그룹 등 글로벌 금융기업도 홍콩 지사 인력을 연달아 감축하는 추세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금융업 인력 감축의 여파가 올해 홍콩 경제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국적 회사들도 같은 이유로 아시아 시장의 중심지를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옮기고 있다.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제너럴모터스, 다이슨 등 다국적 기업 4200곳이 싱가포르에 아시아 지역 본부를 새로 마련한 점이 이를 보여준다. 반면 홍콩에 진출한 미국 기업 수는 4년 연속 감소해 2022년 6월 기준 1258개로 쪼그라들었다. 2004년 이후 가장 적은 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홍콩의 매력이 줄면서) 점점 더 많은 기업이 중국 본토에 직접 진출하거나 홍콩의 금융·비즈니스 라이벌인 싱가포르에 아시아 허브를 설립하고 있다”고 전했다.
통제 강화하는 중국 정부

광둥성의 한 도시가 된 홍콩
영어가 사라지는 홍콩의 현실도 홍콩의 쇠락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중국 정부가 홍콩이 국제도시로 거듭나기보다는 중국의 일부분으로 존재하길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외국 기업이 떠나고 있는 것과 달리 중국 본토 기업의 홍콩 진출은 오히려 늘고 있다. 경제·산업 분야에서도 중국 본토의 입김이 강해지다 보니 보통화 구사 능력의 중요성도 자연스럽게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지난달 28~30일 홍콩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제와인박람회 ‘비넥스포 아시아’에 참가한 한 한국 와인 수입업체 대표는 “6년 전 방문한 백화점 내 식당을 이번에 다시 갔는데, 영어로 응대 가능한 직원이 거의 없어 난감했다”며 “주류 메뉴에서 프랑스·미국 와인은 줄어드는 대신 중국 와인과 고량주 등이 많아졌다”고 했다. 홍콩에 진출한 한 국내 금융회사 관계자는 “과거 홍콩은 하나의 독립국가처럼 기능했다면 지금은 광둥성의 한 소도시 수준으로 변모하고 있다”며 “외국인 기업과 투자자 입장에서는 홍콩에 대한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베이징=이지훈 특파원/홍콩=이선아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