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프롬 로고(사진=로이터연합뉴스)
가즈프롬 로고(사진=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와 중국의 주요 가스 파이프라인 계약에서 중국이 협상력을 발휘함에 따라 협상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 가스 수출길이 막힌 러시아 입장에서는 중국이 ‘마지막 희망’인 셈이지만, 중국은 이러한 관계를 이용해 더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내려 한다는 게 외신의 평가다. 양국 간의 관계에서 중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제재에 막힌 러, 새 시장은 중국뿐

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문제에 정통한 세 사람을 인용해 러시아가 중국과 주요 가스 파이프 라인 계약을 체결하려고 하고 있지만, 가격과 공급 수준에 대한 중국의 ‘불합리한 요구’로 인해 이러한 시도가 좌초됐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시베리아 지역 가스전에서 생산된 가스를 몽골을 거쳐 중국 서부 신장위구르 지역으로 공급하기 위한 ‘시베리아의 힘-2’ 가스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 가스관이 독일 등 유럽으로의 가스 공급 확대를 위해 건설됐던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중국과 러시아를 잇는 가스관(사진=FT)
중국과 러시아를 잇는 가스관(사진=FT)
보도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중국은 러시아 현지 수준과 비슷한 가격으로 가스를 공급하도록 요구하고 있고 연 500억㎥ 수송 용량 중 일부만 구매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FT는 “‘시베리아 힘-2’에 대한 중국의 강경한 입장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가 중국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된 과정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러시아에 이 가스관 계약은 러시아 가스 기업 가즈프롬의 ‘생명줄’이라고 여겨질 만큼 매우 중요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 제재로 인해 가즈프롬의 유럽향 가스 판매는 급감했기 때문이다. 작년에 6290억루블(약 69억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는데 이는 25년 만의 최대 손실 폭이다. 유럽에 공급하던 러시아 서부의 가스전을 중국으로 연결하면 가즈프롬을 살릴 수 있다.

소식통들은 지난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 행렬에 알렉세이 밀러 가즈프롬 최고경영자(CEO)가 합류하지 않은 것은 러시아와 중국의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밀러는 중국 대신 이란을 방문했다. 콜롬비아 대학 글로벌 에너지 정책 센터의 타티아나 미트로바 연구원은 “밀러의 부재는 매우 상징적”이라고 평가했다.

○상대적 여유 있는 중국

중국을 국빈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지난달 1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앞에서 열린 공식 환영행사 도중 시진핑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중국을 국빈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지난달 1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앞에서 열린 공식 환영행사 도중 시진핑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중국 입장에서도 러시아를 통해 가스 공급처를 다변화해두는 것이 유리하다. 대만, 남중국해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해상 경로가 아닌 육상 경로로 안전하게 가스를 공급받기에 러시아가 최적이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기부에프 베를린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 센터 소장은 “(러시아 가스를 공급받을) 그만한 가치가 있으려면 중국은 매우 저렴한 가격과 유연한 조건이 필요하다”며 “러시아가 가스 수출을 위한 대체 육로 경로가 없다는 것은 가즈프롬이 중국의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은 시간이 자기 편이라고 믿고 있으며 러시아로부터 최상의 조건을 끌어낼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있다”며 “러시아가 이번 거래에 실패한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양국 관계에서 중국이 상위 파트너가 됐다는 것을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FT는 러시아가 중국으로의 공급을 늘리지 못하면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FT가 입수한 러시아 주요 은행의 미공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가즈프롬에 대한 기본 전망에서 ‘시베리아의 힘-2’는 제외돼 해당 프로젝트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됐던 2029년의 가즈프롬 연간 수익이 기존 대비 15%가량 줄었다.

한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