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아동들이 왜 러 입양 사이트에?…"전쟁범죄 단서 포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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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헤르손 보호시설 아동 46명 행방 추적…인터뷰·영상 자료 등 토대
크림반도 이송→러 이름으로 개명해 러 시민권 발급→입양 수순
"러 강제이주 아동 1만9천여명 추산…헤르손 아동들은 '빙산의 일각" 러시아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우크라이나 아동 다수를 납치하거나, 강제적으로 러시아로 데려갔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이 같은 전쟁범죄 행위를 저지른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작년 3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마리야 리보바-벨로바 러시아 대통령실 아동인권 담당 위원을 상대로 체포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ICC 비회원국으로서 해당 조처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러시아는 러시아군이 위험에 처한 우크라이나 어린이를 대피시킨 것일 뿐 납치와 강제 이송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2일(현지시간) 전쟁 전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의 아동보호시설에 거주하던 아동 46명의 행방을 추적하는 장문의 기사를 실어 러시아 측이 어떻게 우크라이나 아동의 강제 이주를 자행했는지, 이 과정에서 러시아 당국이 어떻게 조직적으로 관여했는지를 조명했다.
헤르손은 우크라이나전 발발 직후 러시아에 점령된 지역이다.
NYT는 보도를 위해 1년여에 걸쳐 이들 아동을 전쟁 전 맡아 기르던 '헤르손 아동의 집' 상주 의사 등 돌봄 인력, 아동들의 친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당국자, 입양 기관 관계자 등 110명을 인터뷰하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정부 문서는 물론, 텔레그램과 러시아 국영 방송, 러시아 소셜미디어 등에 오른 영상과 사진, 글 등을 샅샅이 뒤진 끝에 러시아가 헤르손 아동들을 어떻게 강제로 러시아로 데려갔는지에 대한 다수의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NYT에 따르면, 전쟁 발발 전 '헤르손 아동의 집'에는 부모가 있지만 키울 형편이 되지 않거나, 부모에게서 버림을 받았거나, 뇌성마비나 자폐증 등 장애를 안고 태어난 영유아 46명이 돌봄을 받고 있었다.
전쟁 개시와 함께 헤르손이 격전지가 될 조짐을 보이자 이 시설 종사자들은 아동들의 안전을 우려해 이들을 인근 방공호로 대피시켰다.
하지만, 갓 태어났거나,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한 아기들이 난방도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것을 딱하게 여긴 헤르손 지역의 한 교회의 도움으로 아이들은 곧바로 인근 교회 지하실로 옮겨 겨울을 날 수 있었다.
하지만, 헤르손이 러시아의 점령에 들어간 2022년 4월 하순, 러시아 관리들은 교회로 찾아와 아이들을 다시 원래 시설로 옮길 것을 요구했고, 아이들은 다시 '헤르손 아동의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이 과정에서 시설 운영자 대다수를 친러시아 성향 직원들로 교체한 러시아 점령 당국은 아이들의 귀환 과정과 시설에서의 생활을 영상에 담아 방송에 내보냄으로써 점령지 헤르손에서 러시아가 어떻게 '구세주' 역할을 하는지를 선전하는 데 이용했다고 NYT는 밝혔다.
러시아 점령 당국은 그해 가을로 접어들며 헤르손 탈환을 위한 우크라이나의 반격이 거세지자 2022년 10월 21일, 전세버스와 앰뷸런스를 동원해 이곳의 아이들을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의 중심 도시로 데려갔고, 이후 2개의 시설에 아이들을 분산배치했다.
러시아 측은 이같은 조치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 '인도적인 개입'이라고 주장하며, 헤르손과 크림반도 모두 자신들의 관할지이기 때문에 적법한 행위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인권 전문가들은 전쟁 중에 안전을 위해 아동을 피신시키는 행위는 국제법상 엄격한 규범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면서, 러시아 측의 조치는 아동들의 소재를 보호자나 친권자 등에게 알리지 않고 이뤄지는 등의 문제를 안고 있어 '강제 이주'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스티븐 랩 전 미국 국무부 국제형사사법대사는 "러시아가 인도주의적 임무라고 간주하는 것은 실은 '노골적인 전쟁 범죄'"라고 꼬집었다.
NYT는 46명의 아이들의 헤르손과 크림반도 이주 과정에서 러시아 하원 의원인 이고르 카스튜케비치 등 러시아 정치인들이 현장에 빈번하게 방문하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전했다.
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한 리보바-벨로바 위원 역시 우크라이나 아동들이 수용돼 있던 헤르손과 크림반도의 보호시설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NYT는 리보바-벨로바 위원의 크림반도 보호 시설 방문 후 아이들을 러시아 사회에 공식적으로 통합시키는 작업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크림반도의 아동 보호시설 관계자들은 우선 아이들의 이름을 러시아식으로 바꿔 러시아에 출생증명서를 신청했고, 의료 지원을 받게 한다는 명목으로 러시아 사회보장번호를 신청했다.
아이들에게는 이어 러시아 시민권이 발급됐는데, 이는 궁극적으로는 러시아 가정에 입양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위한 절차였다고 NYT는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정체성을 제거하기 위해 이름과 국적을 바꾸는 것은 유엔 아동권리협약 위반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NYT는 덧붙였다.
국적과 이름 세탁 작업이 마무리된 뒤 이들 아동 가운데 22명의 프로필이 러시아 연방 정부의 입양 사이트에 게재됐다고 NYT는 전했다.
출생국은 언급되지 않은 채 크림반도 출신의 어린이라고만 기재됐다.
이들 가운데 이미 적어도 2명은 러시아 가정으로 입양이 완료됐으며, 7명은 우크라이나의 부모나 친지가 뒤늦게 아이들의 행방을 알게 된 후 우크라이나 당국과 카타르 중재자들의 도움을 받아 우크라이나로 데려갔다고 한다.
NYT는 우크라이나 당국은 전쟁통에 러시아로 강제로 끌려간 아동 수를 1만9천500명으로 추산하고 있으나, 정확한 수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헤르손 아동의 집'에 살던 어린이 46명의 사례는 이런 거대한 현실의 '축소판'일 뿐"이라고 짚었다.
/연합뉴스
크림반도 이송→러 이름으로 개명해 러 시민권 발급→입양 수순
"러 강제이주 아동 1만9천여명 추산…헤르손 아동들은 '빙산의 일각" 러시아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우크라이나 아동 다수를 납치하거나, 강제적으로 러시아로 데려갔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이 같은 전쟁범죄 행위를 저지른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작년 3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마리야 리보바-벨로바 러시아 대통령실 아동인권 담당 위원을 상대로 체포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ICC 비회원국으로서 해당 조처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러시아는 러시아군이 위험에 처한 우크라이나 어린이를 대피시킨 것일 뿐 납치와 강제 이송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2일(현지시간) 전쟁 전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의 아동보호시설에 거주하던 아동 46명의 행방을 추적하는 장문의 기사를 실어 러시아 측이 어떻게 우크라이나 아동의 강제 이주를 자행했는지, 이 과정에서 러시아 당국이 어떻게 조직적으로 관여했는지를 조명했다.
헤르손은 우크라이나전 발발 직후 러시아에 점령된 지역이다.
NYT는 보도를 위해 1년여에 걸쳐 이들 아동을 전쟁 전 맡아 기르던 '헤르손 아동의 집' 상주 의사 등 돌봄 인력, 아동들의 친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당국자, 입양 기관 관계자 등 110명을 인터뷰하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정부 문서는 물론, 텔레그램과 러시아 국영 방송, 러시아 소셜미디어 등에 오른 영상과 사진, 글 등을 샅샅이 뒤진 끝에 러시아가 헤르손 아동들을 어떻게 강제로 러시아로 데려갔는지에 대한 다수의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NYT에 따르면, 전쟁 발발 전 '헤르손 아동의 집'에는 부모가 있지만 키울 형편이 되지 않거나, 부모에게서 버림을 받았거나, 뇌성마비나 자폐증 등 장애를 안고 태어난 영유아 46명이 돌봄을 받고 있었다.
전쟁 개시와 함께 헤르손이 격전지가 될 조짐을 보이자 이 시설 종사자들은 아동들의 안전을 우려해 이들을 인근 방공호로 대피시켰다.
하지만, 갓 태어났거나,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한 아기들이 난방도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것을 딱하게 여긴 헤르손 지역의 한 교회의 도움으로 아이들은 곧바로 인근 교회 지하실로 옮겨 겨울을 날 수 있었다.
하지만, 헤르손이 러시아의 점령에 들어간 2022년 4월 하순, 러시아 관리들은 교회로 찾아와 아이들을 다시 원래 시설로 옮길 것을 요구했고, 아이들은 다시 '헤르손 아동의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이 과정에서 시설 운영자 대다수를 친러시아 성향 직원들로 교체한 러시아 점령 당국은 아이들의 귀환 과정과 시설에서의 생활을 영상에 담아 방송에 내보냄으로써 점령지 헤르손에서 러시아가 어떻게 '구세주' 역할을 하는지를 선전하는 데 이용했다고 NYT는 밝혔다.
러시아 점령 당국은 그해 가을로 접어들며 헤르손 탈환을 위한 우크라이나의 반격이 거세지자 2022년 10월 21일, 전세버스와 앰뷸런스를 동원해 이곳의 아이들을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의 중심 도시로 데려갔고, 이후 2개의 시설에 아이들을 분산배치했다.
러시아 측은 이같은 조치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 '인도적인 개입'이라고 주장하며, 헤르손과 크림반도 모두 자신들의 관할지이기 때문에 적법한 행위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인권 전문가들은 전쟁 중에 안전을 위해 아동을 피신시키는 행위는 국제법상 엄격한 규범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면서, 러시아 측의 조치는 아동들의 소재를 보호자나 친권자 등에게 알리지 않고 이뤄지는 등의 문제를 안고 있어 '강제 이주'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스티븐 랩 전 미국 국무부 국제형사사법대사는 "러시아가 인도주의적 임무라고 간주하는 것은 실은 '노골적인 전쟁 범죄'"라고 꼬집었다.
NYT는 46명의 아이들의 헤르손과 크림반도 이주 과정에서 러시아 하원 의원인 이고르 카스튜케비치 등 러시아 정치인들이 현장에 빈번하게 방문하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전했다.
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한 리보바-벨로바 위원 역시 우크라이나 아동들이 수용돼 있던 헤르손과 크림반도의 보호시설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NYT는 리보바-벨로바 위원의 크림반도 보호 시설 방문 후 아이들을 러시아 사회에 공식적으로 통합시키는 작업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크림반도의 아동 보호시설 관계자들은 우선 아이들의 이름을 러시아식으로 바꿔 러시아에 출생증명서를 신청했고, 의료 지원을 받게 한다는 명목으로 러시아 사회보장번호를 신청했다.
아이들에게는 이어 러시아 시민권이 발급됐는데, 이는 궁극적으로는 러시아 가정에 입양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위한 절차였다고 NYT는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정체성을 제거하기 위해 이름과 국적을 바꾸는 것은 유엔 아동권리협약 위반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NYT는 덧붙였다.
국적과 이름 세탁 작업이 마무리된 뒤 이들 아동 가운데 22명의 프로필이 러시아 연방 정부의 입양 사이트에 게재됐다고 NYT는 전했다.
출생국은 언급되지 않은 채 크림반도 출신의 어린이라고만 기재됐다.
이들 가운데 이미 적어도 2명은 러시아 가정으로 입양이 완료됐으며, 7명은 우크라이나의 부모나 친지가 뒤늦게 아이들의 행방을 알게 된 후 우크라이나 당국과 카타르 중재자들의 도움을 받아 우크라이나로 데려갔다고 한다.
NYT는 우크라이나 당국은 전쟁통에 러시아로 강제로 끌려간 아동 수를 1만9천500명으로 추산하고 있으나, 정확한 수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헤르손 아동의 집'에 살던 어린이 46명의 사례는 이런 거대한 현실의 '축소판'일 뿐"이라고 짚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