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50분까지는 나옵시다" …조기출근 권유, 직장내 괴롭힘일까
얼마 전 X사를 방문해 팀장들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항상 8시 59분에 출근하고, 성과도 부진한 A팀원에게 출근 10분 전까지 나와서 9시 정각에 곧바로 업무를 시작하도록 권유하는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이 되는지에 관한 사전 질의를 받고 이를 주제로 질의 응답 시간을 가졌다. 그러자 그때까지 조용하던 강연장이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팀장들 발언으로 돌연 활기를 띤다. 나중에 들어보니 실제 팀장이 그런 권유를 하는 일이 잦고, 그때마다 직장 내 괴롭힘인지 스스로 돌아보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고 했다.

이런 조기출근 권유와 그에 따른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다른 기업에서도 충분히 있을만하다. 찬찬히 한번 살펴 보자.

우선 팀장 권유에 충실히 따른 A팀원의 사업장 도착시간과 원래의 출근시간 사이에 있는 10분(사이시간이라 하자)이 근로시간인지가 선결 문제다.

그 10분이 근로시간으로 인정된다면 X사는 A팀원 동의 없이 시간 외 근로를 시킨 셈이다. 이는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따라서 그 위반에 직접 원인이 된 권유는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이루어진 행위로 팀장의 권유는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 10분의 사이시간이 근로시간인지는 권유에 따른 A팀원 출근시간은 도착시간인 8시 50분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논의를 이어갈 수 있다. 즉, X사가 규정으로 정한 출근시간이자 A팀원 업무가 본격 개시된 시간이 9시라는 사실은 큰 의미가 없다. 대법원이 "일반적으로 출근시간은 근무처에 도착하는 시간으로서 작업준비시간을 거쳐 작업에 착수하는 작업개시시간과 같지 않다"고 한 바 있기 때문이다(대법원 92도1855 판결). 이 판결은 노조의 출근 방해가 업무방해죄가 되는지가 주 쟁점이고 위 인용 부분은 그 과정에서 딱 한 줄로 나온 방론이긴 하다. 그러나 대법원이 출근시간을 도착시간이라는 입장을 표명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A팀원의 출근시간이 8시 50분이라 해도, 업무를 본격 개시하기까지 10분의 사이시간이 근로시간이라는 결론(따라서 권유가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결론)으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 10분 동안 ①X사가 업무 지시를 했는지 ②A팀원에 업무수행과 참여 의무가 있는지 ③A팀원이 수행과 참여를 거부한 경우 불이익을 받는지 ④A팀원에 시간 사용과 장소에 어느 정도 재량이 인정되는지를 종합 고려하여, 그 10분이 A 팀원이 X사의 지휘 명령을 받으며 실제로 근무한 시간, 즉 실(實)근로시간인지가 추가 검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021. 8. 고용노동부 '근로시간 제도의 이해' 참고).

화장품 업체 Y사와 백화점 매장 판매직원 수백명 간에 있었던 사이시간의 근로시간성 분쟁에 대한 판결은, 이 실근로시간 문제는 도착시간 외에도 여러 요소를 종합 고려해서 정해지는 복잡 미묘한 문제임을 잘 보여준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7가합562931 판결).

Y사 매뉴얼에는 “9시 30분보다, 또는 11시보다 2~30분 더 일찍 출근하는 것이 아까운가요? 손해 보는 것처럼 느껴지나요?”라는 기재가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일부 판매직원들은 30분 조기출근해서 상사에게 출근 보고를 하고 개점 준비를 했다. 그러나 법원은 위 매뉴얼 기재는 (조기출근 지시가 아니고)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업무상 조기출근이 필요하다는 언급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판단에 더해 Y사가 조기출근하지 않은 직원들에게 불이익을 가한 정황이 없다는 점을 고려, 법원은 판매직원들의 30분 사이시간은 근로시간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여기에 이르면 X사의 10분 사이시간이 근로시간인지는 쉽게 답할 수 없기 때문에 근로시간이 아니라고 판단될 경우까지 전제해서 팀장의 조기출근 권유가 직장 내 괴롭힘인지를 다시 살펴야 완전히 답변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즉, 가능한 경우를 더 생각해 보고 각 경우 별로 세밀한 검토가 필요한 것이다.

더 깊이 들어가 보자. X사 팀장의 조기출근 권유는 강제성이 없었고 팀장이 10분 사이시간 동안 지휘 명령을 한 바도 없어 근로시간은 아니라고 가정하자.

이 경우 팀장의 권유는 일견 적법하고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닌 듯 보인다. 그러나 이번에도 선뜻 그렇게 답할 수 없다. 다시 가능한 여러가지 세부 경우를 생각해 보고 각 세부 경우 별로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되는지 검토해야 하기 때문이다.

첫째, 팀장 본인이 일찍 출근하여 업무를 개시하는 루틴을 따른다는 이유로 팀웍을 강조하면서 A팀원을 포함한 팀원들에게 10분 먼저 출근하도록 권유한 것이라고 해보자. 이 권유는 업무상 필요하거나 사회통념상 상당하지 않다. 따라서 10분의 사이시간이 근로시간이 아니라 하더라도 '업무의 적정 범위를 넘는' 언동으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다른 세부 경우로, 위 팀웍을 내세운 권유가 단 1회에 그쳤거나, 업무가 부진하던 A팀원이 최근 부쩍 업무 개선 의지를 보이니 조기출근이 그런 노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개별적으로 판단하여 이루어졌다고 해보자. 이 때 팀장 권유는 부적절한 것일 수는 있어도 직장 내 괴롭힘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법원은 직장 내 괴롭힘 성립의 판단에 있어 행위자의 지속·반복성과 악의를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기 때문이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1나42155 판결 등).

마지막으로, 위 두 가지 세부 경우에 공통으로 A팀원이 직장 내 괴롭힘 성립요건인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할지도 생각할 문제다. A팀원이 조기출근 권유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주장한다고 해보자. 이는 A팀원만 직접 판단할 수 있는 내면의 일이다. 특히 업무상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권유로 일어난 스트레스라면 자연스러운 반응이니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상 정신적 고통은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것'으로서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이라면 그 행위로 인해 고통을 느낄 수 있음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게 문제다(광주지방법원 2020가합52585). A 팀원이 조기출근 권유로 스트레스를 받은 사실은 주어진 권유 상황에서 일반적이고 평균적 팀원이 겪었을 수 있는 객관적 고통이라는 결론으로 직접 이어지지는 않는다. 만약 다른 팀원들 대다수가 스트레스까지 받은 건 아니라고 한다면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닐 수도 있다.

결국 X사 사전 질의 사례에서 조기출근 권유가 직장 내 괴롭힘인지는 △사이시간이 실근로시간인지 △권유가 업무상 필요성과 사회통념상 상당성이 있는지 △팀장 권유에 지속·반복성과 악의가 있는지 △A팀원이 '정신적 고통'을 겪었는지에 따라 달리 판단된다는 결론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기업은 위 X사 사례에서 조기출근 권유가 직장 내 괴롭힘인지 아닌지에 관한 결론보다 앞서 검토 과정에서 자연스레 드러난, 적정한 인사 관리를 위한 아래 세가지 시사점을 더 주목해야 한다.

첫째, 기업이나 상사의 선의에서 비롯되는 조기출근 권유라 해도 실근로시간으로 인정되거나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될 수 있다. 그 선의는 입증하기도 어렵고, 입증이 되더라도 이런 위험을 방지하는 안전판이 될 수 없다.

둘째, 조기출근 권유는 단순히 직장 내 괴롭힘을 넘어 복합적 문제로 전개될 수 있다. 사전 질문은 A팀원이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만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Y사 분쟁에서 보듯이, 조기출근 권유는 시간 외 근로와 그에 따른 임금 미지급 문제로 발전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 결과 A팀원이 기업을 상대로 미지급 수당을 청구하고, 나아가 노동청 진정과 고소를 하거나 근로감독 청원을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X사는 최악의 경우 형사책임까지 질 수도 있다.

셋째, 조기출근 권유에 대한 반발과 문제제기가 본격화돼 분쟁이 생기면, 분쟁 규모와 불확실성이 예상보다 클 수 있다. 그 분쟁 끝에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라고 판명되더라도 이는 권유를 받은 직원들과 오랜 집단 분쟁을 거치고 여러 상충하는 요소를 종합 고려해서 판단을 받는 지난한 과정을 겪은 이후의 일일 것이다. 사전에 그 결과를 예측하기란 어렵다. Y사가 수백명(정확하게는 335명)의 판매직원과 2년이 넘는 동안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는 사실은 이런 위험을 잘 보여준다.

이런 시사점을 고려할 때, 기업의 조기출근 권유는 어떤 경우에서도 잠재 위험요소를 완전히 없앨 수 없고, 특히 직장 내 괴롭힘 제도 도입 이후 점점 더 그 위험성이 부각되면서 기업이 극히 조심해야 할 문제가 되어가는 중인 현실을 잘 인식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투명하고 공정한 인사 운영이 강조되면서 인사 조치 전반에 걸쳐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수시로 제기되며 예상치 못한 복합적 위험으로 전환될 수도 있는 시기에 있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맞춰 기업은 예전보다 더 신중하게, 그리고 더 멀리 보는 자세로 인사 관리에 임해야 한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노동조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