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2024). 이유진갤러리 제공
여러분(2024). 이유진갤러리 제공
지난해 어느 여름날 밤, 서울 광화문역 근처를 지나던 김건희 작가(55)는 겹겹이 쌓여 있는 의자 더미를 발견했다. 시위대가 집회를 마친 뒤 정리해둔 수백 개의 의자들이었다. 그 모습에 홀리듯 빠져든 김 작가는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은 뒤 이를 그림으로 그리고, 다시 그 세부 곳곳을 크게 확대해 그리기 시작했다.

서울 청담동 이유진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김 작가의 개인전은 이런 작업의 결과물 20여점을 내건 전시다. 특별할 것 없는 의자들의 모습에 ‘꽂힌’ 이유에 대해 작가는 “의자들이 세상의 ‘불확실성’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시위라는 건 자기 신념을 강력하게 표현하면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방법이잖아요. 그런데 살다 보니 세상엔 옳고 그름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일보다 그렇지 않은 미묘한 일들이 훨씬 더 많더군요. 시위가 끝난 뒤 남겨진 의자들의 지저분하면서도 쓸쓸한 모습이, 세상의 ‘진짜 모습’인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전시 제목을 ‘그렇다. 그리고 그렇지 않다’로 정한 것도, 원래 풍경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확대한 이미지들을 여러 장 그린 것도 세상의 이런 불확실성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흥미로운 건 작품 대부분이 캔버스가 아니라 갱지에 그린 유화라는 것이다. 작가는 “처음에는 값이 싸서 갱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유화물감과 갱지가 만나 만들어낸 독특한 질감에 푹 빠져 계속 그리게 됐다”고 말했다.
'페인팅 #1'(2024). 이유진갤러리 제공
'페인팅 #1'(2024). 이유진갤러리 제공
딸을 홀로 키우며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그림을 포기하지 않은 작가의 의지, 구상화가 추상화로 바뀌는 과정을 연작으로 표현한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전시다. 전시는 오는 22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