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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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경제신문과 한경닷컴은 매주 월요일 대치동 교육 현실의 일단을 들여다보는 '대치동 이야기'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수능·내신 챙길 필요 없어요"…'SKY 입학' 패스권 쥔 학생들 [대치동 이야기⑨]
"주변에 특례(재외국민 특별전형) 준비생들을 보면 의대나 서울 상위권 대학에만 지원해요. 그 보다 떨어지는 대학 학과를 갈바엔 차라리 해외 대학을 가겠다는 생각이에요."

대학으로 가는 길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수시전형이 확대되면서 대학에 가는 길은 엄청나게 다양해졌다. 특히 해외 생활을 한 학생들을 정원 외(外)로 뽑는 재외국인 특례입학 제도는 주요한 명문대 입학 통로로 자리 잡았다.
특례학원이 모여있는 대치동 학원가 모습. 강영연 기자
특례학원이 모여있는 대치동 학원가 모습. 강영연 기자
특례는 부모가 해외에서 소득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외국에서 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이 국내 대학에 진학하는 걸 돕기 위해 마련된 전형이다. 외국에서 지낸 학생들이 한국 교육을 따라가지 못 할 것으로 간주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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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원 늘어나며 특례 지원자도 급증

특례는 한국의 경제 발전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시작은 1978년 박정희 정권에서 공무원, 국제기구 근무자를 위해 만든 정책이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해외 진출 기업이 늘어났다. 그 결과 2000년대 초반까지 북미나 유럽 거주 경험이 있는 학생이 주로 시험을 치렀다.

2000년대 중반~2010년대 중반까지는 중국 거주 학생이 다수였다. 한국 기업과 개인들의 중국 진출이 활발했기 때문이다. 2010년 말 부터 지금까지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서 거주한 학생 비율이 높다.

특히 중국에서의 사업이나, 직원 파견이 많았던 2000년대 중반~2010년 초반까지는 특례 최고 호황기이자, 꼼수가 제일 많았던 시기였다. 해외에 사업체를 차리고 정확히 3년만 해외 거주하기도 하고, 한국에 머무를 수 있는 일수를 계산해 대치동 학원을 다니는 학생도 많았다.

특례학원에서 15년 이상 일한 A씨는 "2000년대 중반에는 연초마다 중국 베이징, 상하이, 선전에 직접 가서 출장 입시 설명회를 개최했다"며 "당시 대기업 주재원 등이 많았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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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초기 특례 제도는 지금보다 세분화돼 있었다. 해외 거주 기간도 2년, 3년, 6년, 9년, 12년으로 나눠져 있었다. 이후 제도가 정비되며 2021년부터는 3년, 12년 특례만 뽑는다.

현재 3년 특례는 보통 서류와 면접을 통해 선발한다. 과거에는 학교마다 시험을 보는 곳도 있었다. 문과는 국어 시험을 보고, 이과는 수학 시험을 보는 식이다.

대학마다 모두 전형과 기준이 다르고 복잡하기 때문에 대부분 대치동 학원을 다니면서 준비했다. 지금도 지방대의 경우는 시험이 남아있는 곳이 일부 있다.

12년 특례는 초중고 정규교육을 모두 해외에서 받은 경우다. 드물기도 하고 정원 외로 뽑기 때문에 3년 특례보다 확실히 상위권 대학에 가기 쉽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대 같은 경우도 면접을 보지 않고, 서류전형으로만 12년 특례를 선발한다.

대치동 틈새시장 된 특례학원

특례학원은 대치동의 '틈새시장'으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대치동에서 유명한 특례학원은 문과 G학원, 이과 S학원이다.

이 학원들은 대학별로 '맞춤형'으로 지도하는 게 경쟁력의 원천이었다. 과거 논술을 보는 대학에 대비하기 위한 'A대 논술반', 국어 시험이 어렵기로 유명한 B대에 대비하기 위한 'B대 국어반'을 만드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학생들은 한달에 100만원 이상인 종합반을 다니는 동시에 자신이 지원하려고 하는 대학에 맞춤형 강의도 들었다. 보통 평일에는 종합반 수업을 듣고, 토요일에 학교별 특강을 듣는 식이었다.

제도가 표준화하면서 대치동 특례학원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2021년부터 학생 이수 기간, 해외 체류기간 등이 균일해졌다. 지필고사 대신 서류와 면접으로 뽑는 것이 대세가 됐다. 이 때문에 대치동 학원에서 과목별 단과 수업을 운영하는 것도 무의미해졌다.
"수능·내신 챙길 필요 없어요"…'SKY 입학' 패스권 쥔 학생들 [대치동 이야기⑨]
그렇다고 해서 학원의 중요성이 작아진 것은 아니다. 상담, 컨설팅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재외국민 전형은 준비해야할 서류가 매우 다양하다.

해외 학교 성적, 외국 거주 증명, 부모 해외 소득 증명 등 형식적인것부터 포트폴리오까지 수십가지 서류가 필요하다. 또 국가별 국제학교 여건이나 현지 상황 등을 잘 알아야하기 때문에 특례학원 컨설턴트들의 역할은 더 커지고 있다.

단순히 서류를 대행해주는 것은 100만원 정도지만, 포트폴리오 등을 함께 작성해주면 비용은 수백만원으로 올라간다. A원장은 "주요 대학이 지필고사 전형을 폐지하고 면접전형 중심으로 학생을 뽑으면서 강의식 수업 대신 상담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대형학원이 위축되고 상담 중심 군소학원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재외국민 입시는 사실상 한국의 정규 교육과정과 무관하다. 수능을 보거나 내신을 잘 받아서 합격하는 게 아니다. 한국의 학교 수업을 통해서 대비할 수 있는 시험이 아니라는 얘기다.

재외국민 특별전형에서는 해외 학교에서의 내신 성적(GPA)과 미국 대학입학자격 시험(SAT) 점수, AP(대학과목 선이수제, Advanced Placement), IB(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토플 등의 성적이 중요하다.

AP는 대학교 1학년 교양 수준의 과목을 미리 선이수할 수 있는 시험 제도다. 과목별로 시험을 봐서 성적을 따는 방식인데 5점이 만점이다.

해당 과목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아도 개인적인 자격으로 시험을 볼 수 있다. 3년 특례의 경우 SKY 대학을 가려면 8개 이상의 AP 점수가 있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IB는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교육 방식이다. 특례에서 중요한 것은 졸업을 앞두고 보는 시험의 성적이다. 45점 만점으로 40점 이상은 돼야 상위권 대학에 지원할 수 있다.
특례학원이 모여있는 대치동 학원가 모습. 강영연 기자
특례학원이 모여있는 대치동 학원가 모습. 강영연 기자
최근 서류 전형이 중요해지면서 필요한 성적 수준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특례 학원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상위권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SAT는 1500점 이상, AP는 5점만점의 과목으로 6과목 이상, 토플은 110점 이상은 돼야한다"며 "만약 의대를 목표로 한다면 GPA는 만점, AP는 최소 13개 이상, SAT는 1560~70점이상, 토플은 117점 이상은 돼야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학생들은 학원에서 SAT수업을 듣고, AP를 준비한다. 대치동에서 특례를 준비했던 한 학생은 "대치동 인근 학교들은 그래서 특례 학생들을 정규수업에서 빼주고 따로 입시를 준비하게 했다"며 "아침조례 끝나면 바로 특례반으로 가 특례입시에 필요한 시험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특례=특혜’라는 비판도 꾸준하다. 재외국민 전형이 모두 입학사정관 형식의 면접 중심 입시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성적을 수치화, 정량화 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공정성 논란이 나온다. 또 ‘외국에서 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의 국내 대학 진학을 위해 마련된 전형’이지만 체계화된 사교육을 받아야만 합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입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꾸준하다.

A원장은 "해외에서 학교를 다닌 학생들은 외국어도 능통하고, 글로벌 마인드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경쟁력이 있다"며 "이들을 잘 선발해, 교육할 수 있는 제도로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부의 사교육비 대책에도 사교육비는 매년 사상최대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 사이의 격차도 심화하고 있습니다. 다들 사교육이 문제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요. 한국경제신문·한경닷컴은 사교육으로 대표되는 대치동의 속살을 살짝 들여다볼 수 있는 '대치동 이야기' 시리즈를 기획해 매주 월요일 게재합니다. 대치동을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스템을 모르면 한국 교육의 업그레이드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대치동이 어디인지, 대치동의 왕좌는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그 안에서 살아가는 학생, 학부모, 강사들의 삶은 어떤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대치동 이야기를 써 내려갑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거나 포털에서 [대치동 이야기]로 검색하면 더 많은 교육 기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강영연/김영리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