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뉴스는 나쁜 뉴스?…경기 둔화, 민감해진 월가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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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일 월요일> 주말 사이에 몇 가지 긍정적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3일(미 동부시간) 아침부터 유가가 급락하고 금리가 하락세를 보이자 뉴욕 증시는 강세로 출발했습니다. 미 공급관리협회(ISM)의 경제 데이터가 예상보다 나쁘게 발표되자 금리는 큰 폭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시장엔 일부 불안감이 나타났습니다. 경기가 둔화한다는 '나쁜 뉴스'가 더는 시장에 '좋은 소식'으로 작용하지 않는 그런 시점이 된 것일까요? 지난 2일 OPEC+ 회의에서는 올해 말까지이던 하루 366만 배럴 규모의 감산을 2025년 말까지 연장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수요 증가세가 강하지 않다는 이유였죠. 이 조치만 보면 유가 강세요인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속 내용을 따져보면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등 주요 8개국이 지난 1월 시작한 하루 220만 배럴의 추가 자발적 감산의 경우 올해 9월까지 이어가되 10월부터 내년 9월까지는 1년간 서서히 그 양을 축소하기로 했습니다. 말로는 연장했지만, 감산은 축소되고 생산량은 조금씩 늘어나게 되는 것이죠. 또 아랍에미리트(UAE)는 내년에 지금보다 더 많은 원유를 생산하는 것이 허용했습니다. 애초 하루 290만 배럴을 350만 배럴까지 늘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하비에르 블래스 에너지 컬럼니스트는 "OPEC+ 생산량은 12월까지 지금보다 하루 50만 배럴 이상 증가하고, 2025년 중반에는 약 180만 배럴 더 증가할 것이다. OPEC+는 그동안 배럴당 100달러 유가를 끈질기게 추구해왔는데 거의 모든 것을 포기했다"라고 정리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재고가 예상보다 많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발적 감산이 (유가에 불리한 방식으로) 단계적으로 폐지된다. 브렌트유 기준 배럴당 75~90달러로 유가 거래범위가 낮아질 위험이 있다"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발적 감산이 폐지되는 것은 남아도는 많은 생산 여력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유가는 폭락세를 보였습니다. 7월 인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3.60% 하락한 배럴당 74.22달러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지난 2월 7일 이후 넉 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브렌트유도 3.4% 하락한 배럴당 78.36달러에 거래됐습니다. 역시 지난 2월 5일 이후 최저가입니다. 유가 하락은 금리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4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가 1~3월과 달리 둔화하는 방향으로 나오고, 최근 경제 데이터도 둔화세가 나타나면서 금리가 다시 하향 안정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유가가 급락하자 금리 하락 폭은 커졌습니다. 또 지난 2일 대만 컴퓨텍스에서는 엔비디아와 AMD가 앞다퉈 인공지능(AI 칩 제품 주기를 앞당기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신규 AI 칩 모델을 '연 단위'로 출시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지금까지는 2년 단위로 새 칩을 내놓았죠. 그러면서 올해 하반기 블랙웰에 이어 2025년에는 블랙웰 울트라, 2026년에는 루빈(Rubin)이라는 차세대 플랫폼을 출시하겠다고 공개했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주요 제품 발표는 엔비디아의 AI 리더십 위치를 지속해서 강화한다. 우리는 여러 세대에 걸쳐있는 로드맵의 가시성과 광범위한 포트폴리오를 핵심 성장 동력으로 강조한다"라면서 엔비디아의 목표주가를 1500달러로 높였습니다. AMD의 리사 수 CEO도 3일 AI 칩 MI300 시리즈를 강화한 인스팅트 MI325X 시리즈를 내놓겠다고 밝혔습니다. 인스팅트 MI350 시리즈는 2025년, 2026년에는 인스팅트 MI400 시리즈를 선보이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차세대 AI 노트북용 칩인 라이젠 AI 300시리즈도 공개했습니다.
뉴욕 증시의 주요 지수는 0.1~0.8% 수준의 상승세로 출발했습니다. 엔비디아가 3.7% 폭등하면서 거래를 시작한 덕분에 나스닥이 날개를 폈습니다. AMD도 장 초반에는 2% 넘게 올랐습니다. 오전 10시 발표된 ISM 5월 제조업 PMI는 시장에 혼란을 줬습니다.
PMI는 48.7을 기록해 4월(49.2)보다 더 떨어졌고, 살짝 나아질 것이란 월가 전망(49.6)을 밑돌았습니다. 여전히 위축 국면(50 이하)에 머무른 것이죠. 특히 세부 지수중 가장 중요한 신규 주문이 45.4로 4월보다 3.7포인트 급락했고 생산 50.2 (-1.1pt)도 하락했습니다. 그런데 고용은 2.5포인트가 증가한 51.1로 다시 확장 국면에 들어갔습니다. 인플레이션은 57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전월에 비해선 3.9포인트 낮아졌습니다. 기업 응답도 전반적으로 경기 둔화세를 보여줬습니다. 화학 기업은 "약간의 둔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라고 했고 기계업체는 "주문이 늘어나면서 쌓인 주문은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쌓인 주문이 감소하는 만큼 새 주문은 들어오지 않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전기 장비, 가전 업체는 "5월과 6월 예약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다만 가구 업체는 "비즈니스가 회복되고 있으며 예약이 늘어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ISM 측은 "현재 (제약적) 통화 정책 등으로 인해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는 모습을 보여 여전히 수요를 파악하기 어렵다"라고 분석했습니다. BMO는 "ISM 제조업 지수는 높은 금리와 수요 둔화로 인해 소폭 개선될 것이라는 예상을 무너뜨렸다. 이는 상품 수요 약세를 의미한다. 제조업은 Fed가 올가을에 통화 정책을 완화하기 시작할 때까지 계속 압박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5월 제조업 PMI 하락은 신규 주문이 12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경제가 모멘텀을 잃고 있다는 느낌을 더해준다. 지불 가격이 60.9에서 57.0으로 하락한 것도 Fed에게 좋은 소식"이라고 밝혔습니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고문은 "ISM 제조업 PMI가 5월에 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신규수주 감소 폭이 가파르게 나타나면서 지수 하락을 주도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 데이터는 대부분의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경제가 모멘텀을 잃고 있다는 다른 신호와 일치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다만 아침에 발표된 S&P 글로벌의 5월 제조업 PMI는 51.3을 기록하며 지난달 말 발표됐던 예비치 50.9, 시장 예상치 50.7, 4월 PMI 50.0을 모두 웃돌았습니다.
이에 대해 네드 데이비스 리서치는 "ISM과 S&P 글로벌의 상반된 5월 제조업 PMI 수치는 제조업 활동의 실제 상태에 대한 불확실성을 보여준다. 두 PMI의 평균은 5월 약간 상승하여 50.0을 기록했다. 이는 2022년 후반부터 대부분의 시간 동안 제조업이 위축된 후 점차 안정화되었음을 시사하지만, 전반적으로 여전히 부진한 상태"라고 분석했습니다.
상무부가 발표한 지난 4월 건설지출도 전월보다 0.1%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두 달 연속 감소세입니다. 민간 지출은 전월보다 0.1% 감소했고 공공 지출은 0.8% 증가했습니다.
ING는 "ISM 제조업 지수는 주문 감소와 생산 둔화로 예상보다 큰 위축을 기록했다. 건설경기도 예상보다 약세를 보였는데 이는 통화 정책이 제약적이며 경제활동에 제동을 걸고 있음을 다시 한번 나타낸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에 애틀랜타 연방은행의 GDP나우는 2분기 GDP 성장률 추정치를 기존 2.7%에서 1.8%까지 뚝 떨어뜨렸습니다. 골드만삭스도 2.8%를 2.7%로 낮췄습니다.
경기 둔화 조짐이 나타나자 월가에서는 다시 경기 침체가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인플레이션 지표가 아직도 금리 인하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Fed가 금리를 낮추지 않고 버티다가 결국 침체를 부를 것이란 얘기죠.
엘 에리언 고문은 "Fed에 대한 시장 콘센서스는 여전히 상대적으로 매파적이며, 많은 투자자는 올해 금리 인하가 한 번(또는 아예 없을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기대는 데이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Fed에 부합하지만, 이중 임무(물가 안정, 최대 고용)를 모두 충족시키려는 Fed와는 일치하지 않는다"라고 밝혔습니다.
르네상스 매크로의 닐 두타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조건은 양호하지만, 상황이 의미 있는 가속과 일치한다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Fed는 매우 불확실하다. 그들은 들어오는 데이터 흐름을 따르고 있다. 잠재적인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앞으로 네 가지 잠재적 시나리오가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⑴성장은 꾸준하고 인플레이션은 둔화하는 연착륙→주식과 채권 모두 상승
⑵성장이 둔화되고 인플레이션이 둔화하는 연착륙→주식이 어느 정도 압력을 받고 채권은 반등
⑶성장이 둔화되고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는 스태그플레이션→ 주식과 채권이 모두 매도될 것
⑷성장이 회복되고 인플레이션이 회복되어 다시 붐-플레이션으로 돌아감→주식은 괜찮지만, 채권은 압박을 받음
두타는 "시나리오 3)과 4)의 위험은 희박해 보인다. 주관적으로 15% 미만 확률로 본다. 반면 1)과 2)의 위험은 매우 크다. 나는 여전히 시나리오 1)의 위험이 2)보다 높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이것이 의미가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주식보다 채권을 택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바이탈 날리지는 "경제가 변곡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계속 느끼게 된다. 역풍이 불고, 상황이 둔화하고, 좋게 말하면 정상화되고 있다. 그것은 국채에는 유익할 것이다. 하지만 주식에 대해선 더 많은 혼합된 신호로 작용할 것이다. 왜냐하면, 주식은 금리가 낮아지면 혜택을 볼 것이지만, 더 냉각되는 제조업은 더 차가운 기업 이익 성장 전망을 뜻하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차가운 경제 데이터에 채권 시장엔 매수세가 몰렸습니다. 오후 5시께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12bp나 급락한 4.392%, 2년물은 8.1bp 내린 4.812%에 거래됐습니다.
금리가 너무 가파르게 떨어지자 주식 시장의 투자자들도 약간 얼어붙었습니다. 3대 지수는 한때 모두 마이너스권으로 떨어졌습니다. 인터랙티브 브로커스의 호세 토레스 전략가는 "나쁜 소식은 더는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있다. 최근 몇 달 동안 투자자들은 Fed의 완화 시작을 가속할 수 있다는 기대를 바탕으로 예상보다 약한 데이터를 환영했다. 이제 투자자들은 약한 데이터에 두려움으로 반응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뉴욕 증시엔 엔비디아가 있었습니다. 엔비디아는 4.89% 급등세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TSMC도 엔비디아, AMD의 칩 공급 가속화 선언에 2.59% 올랐습니다. ARM도 5.48% 뛰었고요. 마이크론도 2.54% 상승했습니다. 반면 AMD는 장 초반 상승 폭을 모두 지우고 2.01% 하락세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안전자산' 빅테크도 잘 버텼습니다. 아마존은 1.08%, 애플은 0.93% 올랐고 메타는 2.28%나 뛰었습니다.
결국, 나스닥은 0.56% 상승세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S&P500 지수는 0.11% 올랐고요. 다우만이 0.3%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엔비디아와 반도체, 빅테크 외의 종목들은 약세를 보였습니다. S&P500 지수 11개 업종 중 4개(IT, 헬스케어,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임의소비재)는 올랐지만 7개 업종은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특히 에너지 업종은 유가 폭락 속에 2.60% 급락했습니다.
대표적인 밈(Meme) 주식 게임스탑은 오늘 주가가 21% 올랐습니다. 과거 게임스탑 상승세를 이끌었던 투자자 '포효하는 키티(Roaring Kitty)' 키스 길이 레딧에 자신의 게임스탑 포트폴리오를 공개하면서 매수세가 몰렸습니다.
시장에 대한 전망은 조금씩 엇갈리고 있습니다.
모건스탠리의 마이크 윌슨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현재로서 강세장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증가하는 정부 국채는 채권 시장이 아무런 긴장 신호를 보내지 않는 한 계속해서 재정 지출을 촉진하고 단기적으로 주식을 포함한 자산 가격을 부풀릴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반면 JP모건은 계속 약세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마르코 콜라노비치 글로벌 리서치 헤드는 "인플레이션 둔화 및 경제 '노랜딩', 기업 이익 가속화에 대한 컨센서스 불일치로 인해 여름 동안 시장 상승이 제한되는 것을 본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동안 강세론을 주장해온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사비타 서브라매니언과 권오성 전략가는 약간은 한 발을 빼는 분위기입니다. 서브라매니언은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역발상 감정 지표가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을 제시하면서 "극단적인 약세 정서는 더는 지수의 순풍이 아니며 적극적인 종목 선택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라고 썼습니다. 권오성 전략가는 "지난 두 달 동안 나쁜 소식은 주식에 좋은 소식이었다. 그러나 성장이 너무 악화하면 나쁜 소식이 나쁜 소식으로 변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월별 비농업 고용의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골디락스’ 범위를 12만5000~17만5000개로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12만5000개 이하로 떨어지면서 나쁜 소식이 좋은 소식이라는 추세가 반전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업률이 증가하면서 '샴의 법칙'에 따른 경기 침체 신호가 촉발될 수 있다고도 밝혔습니다. 이코노미스트인 클라우디아 샴이 만든 이 법칙은 3개월 평균 실업률이 12개월 최저치보다 0.5%포인트 높으면 경제가 불황의 초기 단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5월 현재 12개월 최저치는 3.5%로, 이는 실업률이 3개월 평균 4%를 유지한다면 경기 침체가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지난 2개월을 기준으로 볼 때, 실업률이 5월에 4.3%까지 상승하면 그런 상황이 발생합니다.
오는 금요일 노동부의 5월 비농업 고용 보고서가 발표됩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20만 개 일자리 증가를 예상합니다. 아직은 경기가 뜨겁다는 추정입니다. 실업률은 3.9%로 유지될 것으로 보고요.
월가 컨센서스는 18만5000개 수준입니다. 역시 실업률은 3.9%로 보고 있고요. 찰스 슈왑의 콜린 마틴 채권 전략가는 "예상보다 부진한 ISM 보고서는 통화 정책이 경제활동을 둔화시키고 인플레이션을 낮출 수 있을 만큼 제약적이라는 뜻"이라면서 "실업률이 4% 이상으로 상승하면 노동시장이 실제로 둔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올해 Fed의 금리 인하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