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혜진 대표/사진=크레아스튜디오
서혜진 대표/사진=크레아스튜디오
"제가 열심히 일해서 남의 돈 벌어주는 게 싫었어요. 남의 이름을 빛나게 하는 조연이 싫고, 거기에 내 노동력을 쓰는 게 싫었어요. 그래서 회사를 차렸습니다."

그가 히트시킨 수많은 프로그램 만큼 서혜진 크레아스튜디오 대표는 솔직하고 화끈한 입담의 소유자였다. 서 대표는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 '동상이몽' 시리즈, TV조선 '아내의맛', '연애의 맛' 등을 연속 히트 시킨 예능계 대표 '미다스의 손'이다. 특히 TV조선 이적 후 '내일은 미스트롯', '내일은 미스터트롯'을 선보이며 전국에 트로트 열풍을 일으켰고, 송가인과 임영웅이라는 국민 가수를 탄생시켰다. 이후 자신의 제작사인 크레아스튜디오를 설립, MBN '불타는 트롯맨'을 성공시켰고, 현재 '현역가왕'을 통해 한국 대표가수를 선발해 '한일가왕전'에서 선보이며 트로트 해외 진출의 플랜을 실행했다.

2022년 7월에 설립돼 이제 겨우 2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이미 방송가에서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명가 반열에 오른 크레아스튜디오다. 서 대표는 "일본은 한국보다 반응이 느린 편인데, '한일가왕전'을 하면서 마이니치와 같은 일간지에서도 우리를 다루면서 주목받게 됐다"며 "('한일가왕전'의 일본 버전인) '일한가왕전'이 오는 7월 방영 플랫폼 발표를 할 거고, 남자편 방송 역시 방영 플랫폼이 중요해 일본 공중파와 논의 중"이라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전했다.

"이전까지 한국에서 알려진, 일본에 포맷을 수출했던 오디션 프로그램의 경우 대부분 유튜브와 같이 온라인 플랫폼에서 하다가 마지막 결승만 공중파에서 하는 방식이었어요. 첫 방송부터 공중파에서 시작하는 건 저희가 처음일 거예요. 일본은 보수적인 성향이고, 뭘 하나를 결정하려고 해도 위원회라고 해서 그 구성원들이 모두 동의하는 구조더라고요. 그래서 플랫폼 안착이 쉽지 않았어요. 그 안에서 겨우겨우 여기까지 끌고 왔어요. '싹을 피웠으니, 묘목까진 키워보자'는 거예요. 배워가면서 하고 있죠."

일본에서 '엔카의 여왕'이라고 불린 김연자, 계은숙과 같은 가수도 있지만, 서 대표는 '엔카'가 아닌 '트로트'로 일본에 진출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더 넓은 시장으로 가겠다는 것. "우리 가수, 노래 중에 일본 시장에 먹힐 수 있는 곡을 번안해서 자연스럽게 퍼뜨리는 게 중요한 시점"이라며 지난 5월 28일 첫 방송을 시작한 MBN '한일톱텐쇼'를 선보이는 것도 "J팝에 한국 가요를 섞어 깊고 넓게 노래의 범위를 확장하려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쉽지 않은 도전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후발 주자들의 '베끼기'도 발생하고 있지만, 서 대표는 "우리는 충분한 역량이 있다"면서 자신감있는 모습이었다. 서 대표가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을 히트시킨 후 각 방송사에선 트로트 관련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서 대표의 일본진출 사례가 알려진 직후, 그의 친정인 TV조선에서 '미스터트롯' 포맷 및 일본판 제작을 위한 계약을 체결하고 올해 하반기 '미스터트롯 재팬'이 제작된다고 밝혔다. 한국과 일본 양국 동시 방송, 한국의 '미스터트롯3' TOP7과 일본 '미스터트롯 재팬' TOP7의 합동 공연 등을 기획했다는 점에서 '한일가왕전'과 흡사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이런 상황들이 안타깝진 않아요. 휴대전화를 만든다고 치면, 지금 가장 고도화된 게 AI폰인데 새로운 시장을 보고 그걸 실물화 시키는 분들이 있고, 거기까지 가지 못하는 제품도 있어요. 누구나 시도는 할 수 있지만, 실물화 단계까지 이루냐, 이루지 못하느냐는 역량의 측면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우리는 우리의 갈길을 간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게 제 역량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요. 출연자를 발굴하고, 트레이닝시키고, 캐릭터화 하는 능력을 모두 갖춘 노윤 작가님을 제가 보유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경쟁력이 아닌가 싶어요.(웃음)"

그동안 서 대표가 만든 '미스터트롯', '불타는 트롯맨' 등을 통해 발굴된 출연자들의 논란들에 대해서도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이들의 과거와 관련된 논란을 제작진의 '검증' 책임으로만 모는 것을 "오디션 무한 책임 주의"라고 꼽으며, "더 열심히 검증하겠다는 말은 당연히 드리겠지만, '말도 안되는 참가자를 왜 키워주냐'와 같은 비판들에 대해선 더 열심히 하겠다는 말씀만 드릴 수 있을 거 같다"고 말했다.

"열심히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그런 논란이 불거지는 것에 허탈하지 않냐"는 물음에 서 대표는 "허탈보다는 유감"이라고 전했다.

"오디션에서 인성교육까지 시킬 수 있다면 너무 좋겠지만, 자식을 키우는 엄마 입장에선 그 모든 게 다 어른들 탓 같아요. 인성은 '어른들의 무한 책임주의' 같아요. 정신을 차리고 아이들을 키워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도덕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하고요. 요즘은 다들 스마트폰만 보고 있는데, 이런 것부터 고쳐야 한다고 봐요. 특히나 아이를 스타로 키우고 싶다면 인성교육부터 해야죠."

서 대표는 트로트에서 저변을 넓혀 걸그룹을 뽑는 '언더피프틴'도 론칭했다. '보컬신동 걸그룹 육성 오디션'을 내걸고 만 15세 미만 보컬 신동 여자 아이들을 한국을 넘어 세계 각국에서 선발하겠다는 것. 이미 지난 4월부터 공개 모집을 시작했고, 하반기 공개를 목표로 한다.

서 대표는 "6살이 뽑힐지, 14살이 뽑힐지 몰라 아직 어떤 프로젝트를 구체적으로 할 지 말하기 어렵지만, 재능을 있는 친구를 발굴하는게 목표"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YG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 양현석, (SM엔터테인먼트 전 대표) 이수만 같은 분들과 저희들이 보는 눈은 분명이 다를 것"이라며 "크레아는 하이브 자본력의 100분의 1도 안되는 회사지만, 트레이닝과 캐릭터화 등 저희만의 강점, 차별성은 분명히 있다. 이걸 통해 매력있는 친구를 발굴하겠다"고 설명했다.

스튜디오 예능부터 리얼버라이어티까지 오디션 프로그램 외에도 다양한 장르와 포맷에서 강점을 보여왔던 서 대표였다. 그런 그가 크레아스튜디오를 설립 후 오디션에만 집중하는 것 역시 계획된 부분이었다. 서 대표는 "회사를 차리고, 안정된 플랫폼에 소속돼 있는게 아니다보니 IP 확보가 중요했다"며 "어디서 누구와 손을 잡고 플랫폼을 안정되게 가면서 회사의 IP를 쌓느냐가 저희에겐 숙제였고, 3년 동안은 그걸 쌓는 기간이라 생각해 오디션 특화에 가치를 뒀다. '이것도 저것도 하는애'가 아니라 '이걸 잘하는 애'가 되고 싶었던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저랑 같이 하는 연출자 중 '연애의 맛', '우리 이혼했어요'와 같은 사랑과 이별에 특화된 분도 계시다"며 "회사로서 가치를 쌓기 위해 일단 오디션 프로그램을 하고, 자산이 쌇이면 리얼 버라이어티를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