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지적대로 '재량지출=GDP연동' 원상복구 땐 채무비율 '껑충'
내년에 3차 장기전망 내놔야…기재부 "결정된 바 없다"

이준서 박원희 = 국가채무비율 장기전망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문재인 정부 시절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전망치를 축소·왜곡하라고 지시했다는 감사 결과가 발표되면서다.

감사원은 4일 홍남기 전 부총리가 지난 2020년 2차 장기재정전망 과정에서 "2060년 국가채무비율이 세 자릿수로 높게 발표될 경우 직면할 국민적 비판 등을 우려해 '두 자릿수로 만들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장기전망의 전제를 임의로 변경해 국가채무비율을 당초 153.0%에서 81.1%로 끌어내렸다는 게 감사원 지적이다.

'지시'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시나리오의 적합성도 공방이 가능한 부분이다.

홍 전 부총리는 별도의 입장문에서 "의견과 판단을 달리하는 여러 지적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당시 재정여건과 예산편성, 국가채무, 대외관계를 모두 감안해 최선의 판단을 내렸다"고 반박했다.

경제 컨트럴타워로서 정책판단의 영역이지, 감사원 주장처럼 왜곡을 따질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채무비율 장기전망' 또 논란…재정당국도 딜레마
감사원이 문제로 삼은 부분은 재량지출의 추계 방식이다.

총지출은 법적 지급의무가 명시된 '의무지출'과 정부 필요에 따라 줄일 수 있는 '재량지출'로 나뉘는데, 정책 의지를 반영하는 재량지출을 어떻게 전망할지가 변수다.

기존엔 경상성장률(성장률+물가)만큼 재량지출이 늘어난다는 전제에서 전망치를 내놨다면, 의무지출까지 아우르는 총지출을 경상성장률에 연동하는 방식으로 바꾸면서 채무비율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의무지출이 저출산·고령화로 급증하는 흐름에서 총지출이 경상성장률에 묶인다면, 재량지출을 늘릴 여력은 거의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재량지출이 실제보다 낮아지면서 결과적으로 국가채무비율이 과소추계된다는 게 감사원 판단이다.

국회 예산정책처 등이 재량지출을 경상성장률에 연동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재정학회장을 지낸 전영준 한양대 교수는 "재량지출의 많은 부분이 국방비·SOC 투자 등인데, 그렇게 줄인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고 국가의 정상적인 재정 기능을 안하겠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호도하는 추계가 아니었나 싶다"고 말했다.

'국가채무비율 장기전망' 또 논란…재정당국도 딜레마
반대로 재량지출을 경상성장률에 연동시키는 종전 방식 또한 국가채무비율을 실제보다 부풀린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당장 올해 총지출 증가율은 2.8%로 한국은행의 경상성장률 전망치 5.1%(성장 2.5%·물가 2.6%)에 크게 못 미친다.

내년 예산안에서도 재량지출 증가율은 사실상 '제로'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재량지출이 해마다 5.0%가량 늘어난다고 가정하는 건 오히려 채무비율을 비현실적으로 끌어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대외신인도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한다면 정책당국자로서 충분히 취할 수 있는 선택지라는 의견인 셈이다.

홍 전 부총리는 "재량지출이 경상성장률 수준으로 계속 늘어난다고 전제하는 것은 실제 채무추이보다 그 이상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실제로도 의무지출이 급증하면 경상성장률 수준으로 재량지출을 반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반박했다.

감사원 의견에 따르면 국가부채비율이 과다추계될 가능성이, 홍 전 부총리 당시의 전제조건을 적용하면 과소추계될 여지가 모두 존재하는 셈이다.

'국가채무비율 장기전망' 또 논란…재정당국도 딜레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장기재정전망 논란이 불거지는 것도 이런 통계적 불확실성과 맞물려 있다.

재정당국으로서는 대외적으로 가장 낮은 국가채무 추계치를 보여주고자 하는 판단이 우선시되고, 정치적으로는 왜곡 논란으로 번지는 셈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5년에 발표된 제1차 장기재정전망을 놓고서도 과소추계 지적이 나온 바 있다.

2020년 5월 감사원은 '중장기 국가재정 운용 및 관리실태' 감사보고서에서 "재량지출 증가율과 경상성장률 간의 관계를 분석하는 시나리오를 다양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 발표는 현 재정당국에도 고민거리를 안겨주는 모양새다.

감사원 지적을 반영해 과거 추계방식으로 되돌아가면서 국가채무비율이 다시 치솟게 된다.

건전재정을 강조하며 재량지출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는 현 정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택지가 될 수 있다.

5년마다 장기재정전망을 새로 내놓은 스케줄에 따라 기획재정부는 내년에 3차 장기재정전망을 내놓아야 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장기재정전망은 가정에 따라 많이 달라지게 된다"며 "내년 전망과 관련해선 결정된 바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