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휘의 재계 인사이드] 구본무의 배터리 선견지명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에 관한 얘기 중 우리가 잘 몰랐던 ‘스토리’가 하나 있다. 이 제품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나라는 미국도 일본도 아닌 한국이다. 엄연한 사실인데도 내막을 자세히 아는 이는 드물다. 늘 ‘빠른 추격자’에 만족해야 했던 터라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설원 위의 첫걸음’을 내딛고도 그 진가를 스스로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자만, 미국의 실책

[박동휘의 재계 인사이드] 구본무의 배터리 선견지명
‘배터리 기술 원천국’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한국을 먹여 살리는 15대 수출 품목만 봐도 알 수 있다. 반도체, 컴퓨터 등 배터리를 제외한 14개 품목의 원천 기술은 미국 등 해외 선진국에서 개발됐다. 한국 산업사(史) 최초이자 앞으로도 재현되기 힘든 이런 업적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연원을 알려면 출발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최초 스토리의 주인공은 고(故)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가운데)과 김명환 전 LG화학 배터리연구소장(사장)이다.

LG화학 과장으로 그룹에 입사한 구 회장은 배터리를 자동차의 주 동력원으로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실천에 옮겼다. 1992년 영국 출장길이 계기가 됐다. 당시 부회장이던 구 회장은 한 번 쓰고 버리는 건전지가 아니라 충전하면 여러 번 반복해 사용할 수 있는 2차전지를 접하고 새로운 성장 사업이 될 가능성을 직감하고는 귀국길에 샘플을 챙겨왔다.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건 1995년 LG화학에 배터리연구소를 설립하면서부터다. 연구소를 이끌던 김 소장은 엄청난 ‘행운’을 발견했다. ‘납축전지’로 불리는 전자 기기용 배터리의 강자인 파나소닉 등 일본 기업들이 관련 특허를 일본 내에만 출원한 것이다. 당시 일본은 2차전지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었다. 아사히카세이 출신인 요시노 아키라 박사가 리튬이온 배터리의 음극재를 처음 개발했다. 이때가 1985년이다. 이 공로로 요시노 박사는 2019년 노벨화학상 공동 수상자 3명 중 한 명에 선정됐다.

하지만 일본 기업은 리튬이온 배터리를 자동차에 장착할 수 있다는 발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배터리에 관한 한 초격차를 달성했다는 자신감은 해외에 특허를 출원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막았다. 지나친 자신감이 독이 된 것이다. GM의 실패도 호재로 작용했다. GM은 1996년 납축전지를 장착한 최초의 전기차 ‘EV1’을 내놨지만, 시장 창출에 실패하고 2002년 전기차 상용화 계획을 백지화했다.

기술 강국이 머뭇거리는 사이, 구 회장의 선견지명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저마다 새천년 비전을 발표하던 2000년, 구 회장은 전기차용 배터리가 향후 LG그룹의 핵심 미래 사업이 될 것임을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그리고 2002년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인픽스에서 열린 레이싱카 대회에서 리튬이온 배터리를 장착한 차량을 출전시켜 1997년 도요타 니켈MH 전지를 탑재한 프리우스의 종전 기록을 갈아치웠다.

배터리 특허, 中 막을 방파제

현재 전기차 배터리에 관한 특허는 약 100만 건으로 추정된다. 이 중 LG에너지솔루션이 보유한 특허는 5만8000건에 달한다. LG엔솔의 ‘특허 지뢰’를 밟지 않고선 전기차용 배터리를 만들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LG에너지솔루션이 이 같은 ‘대규모 특허 포트폴리오’의 힘을 사용하지 않은 건 산업 활성화와 시장 확대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랬던 LG엔솔이 그 힘을 활용해 시장 정화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중국의 배터리 굴기를 견제하고, 공급 과잉에 따른 공멸을 막기 위해서다. 한국 기업이 글로벌 시장의 규율을 만드는 데 선두에 설 수 있다니 감개무량한 일이다. 선견지명과 뚝심으로 묵묵히 사업보국을 실천한 기업인의 힘은 이렇게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