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4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사가 이동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사직서 수리로 전공의들에게 퇴로를 열어주는 출구전략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의정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4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사가 이동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사직서 수리로 전공의들에게 퇴로를 열어주는 출구전략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4일 전공의 사직을 전면 허용하고 복귀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은 100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의정 갈등을 일단락하기 위한 출구 전략이다. 지난 5월 말 대학들이 내년도 입시요강을 발표하면서 의대 증원이 마무리된 가운데 불필요하게 갈등 국면을 이어가기보다 최대한 많은 전공의가 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의대 증원 마무리되자 기조 전환

겉으론 "복귀없다"지만…'죄수의 딜레마' 빠진 전공의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료개혁 관련 현안 브리핑에서 “현장 의료진은 지쳐가고, 중증질환자의 고통이 커지는 상황에서 전공의 복귀를 위한 정책 변경이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이날 밝힌 정책 변화는 크게 ‘전공의 사직 허용’과 ‘복귀 전공의 행정처분 중단’으로 요약된다. 정부가 4월 의대 정원을 내년부터 2000명 증원한다는 원칙을 접고 각 대학이 의대 증원분의 50%까지 줄일 수 있도록 허용한 데 이어 이탈 전공의에 대한 ‘법과 원칙에 따른 처분’ 기조까지 사실상 철회하며 의료계에 양보하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정부는 사직서 수리 기한도 정하지 않았다.

정부의 이번 결정엔 일선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됐다. 의료계에 따르면 5월 복지부와 주요 대학병원장 간 수차례에 걸친 비공개 면담에서 병원장들은 사직서 수리가 허용되면 30%에서 최대 80%의 전공의가 복귀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정부는 복귀 전공의에 대해선 면허 정지 등 행정처분을 아예 중단해 ‘면죄부’를 주고, 미복귀 전공의에 대해서도 당분간 유연한 처분 기조를 유지하기로 했다. 누구에게나 공정한 법 적용을 강조해온 그간의 기조를 바꿔 의사 단체의 전공의 대상 행정처분 철회 요구를 사실상 받아들인 것이다.

전공의들은 선택 ‘기로’에

정부 결정에 병원은 후속 절차를 준비 중이다. 병원마다 사직서 수리 시한을 정해 통보한 뒤 기한 안에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는 최종 사직 처리할 방침이다.

전공의들은 표면적으로는 “복귀는 없다”며 강경한 입장이지만 내부적으론 상당한 동요가 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문의 수련 규정에 따르면 중간에 사직한 전공의는 다른 병원이더라도 1년 이내 동일 과목, 동일 연차로 복귀할 수 없다. 병원의 전공의 선발 일정을 고려하면 6월에 사직이 확정됐을 때 다시 전공의 과정을 밟는 것은 일러도 내년 9월에야 가능하다. 사직 선택으로 경력이 최소 2년가량 늦어지는 셈이다.

국내 상위 5대 병원 등 인기 수련병원 진입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도 전문의 자격 취득을 원하는 전공의의 복귀를 유도하는 요인이 될 전망이다. 의료계에선 오는 9월 필수진료과 결원을 중심으로 이뤄질 전공의 추가 모집에서 지역 상급병원 등으로 돌아온 전공의들이 상위 5대 병원으로 대거 몰려들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공의들이 저마다 속내를 숨기는 가운데 이번에 복귀한 전공의는 행정처분을 받지 않고 혜택만 가져가는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병원들은 약 30~40%의 전공의가 사직서 수리 전 복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전날 전공의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애초에 다들 사직서 수리될 각오로 나오지 않았느냐”며 “(정부 발표 후에도) 결국 달라진 것은 없고 저는 안 돌아간다”고 했다. 사직서 수리가 시작되면 일부 전공의가 업무 복귀를 저울질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내부 단속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황정환/이지현/허세민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