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요즘 세대'와 그들의 미래에 대한 변명
‘요즘 것들! 게으르고 자기밖에 모른다. 정치에 냉소적이고, 주인 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다. 소유보다 공유를 좋아하고, 가정이나 결혼 같은 가치를 거부하고, 저렴한 대량 생산품보다 수공예품을 선호하며 환경보호부터 따진다. 일할 때도 금전적 보상 이상의 의미를 요구한다.’

요즘 것들을 정확하게 묘사한 말인 것 같은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 아주 오래전에 실린 이 글은 미국의 베이비부머(1946~1964년생)가 ‘요즘 세대’였던 그 시절에 보인 행태를 질타한 글이다. 그 베이비부머가 나이 들고 나니 자기 젊을 때와 꼭 닮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기묘하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런 사례? 고대 중동의 쐐기문자부터 시작했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겹게 반복됐다. 나이가 들면 젊음의 가능성이 얄밉고 낯설게 보이는 건 알겠지만, 요즘에는 학문적 양념까지 가미돼 X, Y, Z, 알파로 현란하게 정의되며 참으로 특이하다고 설명된다. 그런 일로 먹고사는 학자들은 그렇다 쳐도 한 세대를 뭉뚱그려 하나로 퉁 치고 그들의 특이함이 문제라고 치부해버리는 지적 게으름은 문제다. 문제를 세대의 특성과 책임으로 몽땅 미뤄버리고 나면 해결책이 나올 구멍이 없다. 요즘 세대의 ‘높은 이직’과 ‘싸가지 없음’이 문제 같은가? 그들을 고용하는 기존 세대는 불편하기 짝이 없겠지만 이직률과 싸가지 없음의 증가는 자연법칙처럼 정해진 미래다.

세대란 ‘감수성이 예민할 나이에 같이 겪은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 유사한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공유하는 연령대’를 말한다. 그런데 그런 세대의 유사성에는 ‘진짜 세대’와 ‘사회적 변화’의 영향, ‘연령대 특유의 성향’이 뒤섞여 있기 마련이다. 그걸 구별하지 않고 퉁 쳐서 요즘 세대로 규정하고, 그 녀석들이 참으로 특이할 뿐이라고 결론 내리는 건 무책임하다. 자신의 젊은 시절도 까먹은 비루한 기억력이 한몫한 결과이기도 하다.

높아지는 이직률이나 싸가지 없음이 그 세대의 특징이 아니라 시대적 변화를 빠르게 수용해서 선제적으로 행동한 결과라면? 낡은 경험에 발목 잡혀 그들의 특성이 문제라고 비판하는 우리가 문제일 수 있다.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하면 시간이 갈수록 엔트로피(무질서도)는 증가하고, 그걸 막으려면 상응하는 추가 에너지 투입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시간이 갈수록 퇴사율은 증가하게 마련이고 그들을 붙잡으려면 점점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더 큰 노력은 생각하지도 않고 ‘요즘 것들 다 그렇지’라고 퉁 치고 마는 속 편한 생각, 그게 ‘세대론’의 치명적 한계다.

안정된 평생직장? 10년을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을 찾아보기 힘든 판에 말이나 되는 꿈일까? 잘나가던 기업도 수시로 정리해고를 하는 판에 여전히 그런 걸 꿈꾸는 건 ‘멍청함’의 징표다. 이직률 증가는 그런 시대적 변화를 직면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으로 찾아낸 그들 나름의 해법일 수 있다. 신기술의 등장과 그것에 기반한 혁신이 가속화되면서 잘나가는 기업의 교체가 빨라지는 세계에서 오래 살아남기 위한 탈출구일 수 있다.

‘지금의 20대는 부모들보다 가난해질 것이다. 집값은 엄청나게 올랐고, 경제 성장도 정체되고, 학력 인플레로 경쟁은 더 치열해지기 때문이다.’ 이 말은 또 어떤가? 요즘 세대의 암울한 미래를 예견하는 것 같은가? 이 글은 무려 1983년 머니라는 잡지에 나온 기사이고 그렇게 자신들의 미래가 암울하다고 엄살떨던 당대의 베이비부머는 부모 세대보다 잘 먹고 잘살았고 이제는 자녀들로부터 ‘너희들이 다 해 먹어서 우리에겐 미래가 없다’는 똑같은 내용의 비난을 듣고 있다. 이것도 역사에서 반복돼온 현상이다. 요즘 세대의 미래? 빛나고 밝을 것이다. 단군 이래 최고의 교육을 받은 아이들인데 어련하겠나! 기묘한 MZ세대라고 오해받고 있지만 변화하는 세상에 치열하게 적응하려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그 아이들하고 꼭 닮은 손자 세대가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 세대의 복수를 해줄 거니 부모 세대를 비판하는 MZ세대에 맞대응할 생각은 접고 우리 노후를 어떻게 보낼지를 걱정할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