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아프리카 정상들이 4일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정상들은 이날 ‘핵심광물 대화체’ 신설에 합의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아프리카 정상들이 4일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정상들은 이날 ‘핵심광물 대화체’ 신설에 합의했다. 대통령실 제공
한국과 아프리카 48개 국가가 핵심 광물의 안정적 공급 및 기술 협력 방안을 논의할 대화체를 신설하기로 4일 결정했다. 아프리카는 백금, 망간, 코발트 등 핵심 광물의 주요 생산지다. 아프리카와의 핵심 광물 관련 협력이 확대되면 전기차, 배터리 등 미래 산업에 필요한 원자재 공급이 보다 원활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과 아프리카연합(AU) 소속 48개국 대표들은 이날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하고 이런 내용이 담긴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정상들은 선언문을 통해 “핵심 광물의 안정적 공급을 보장하고 관련 기술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증진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이어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국 기업이 아프리카에 투자하고 핵심 광물 자원 개발에 가치를 더할 기회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단순히 아프리카 내에서 광물을 채굴해 수입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한국 기업들이 현지에서 설비 투자를 하고 인력을 채용해 광물을 정련·제련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동안 아프리카 국가들은 중국, 유럽연합(EU) 등이 광물에만 관심을 두고 부가가치가 높은 설비 투자에는 인색하다는 불만을 제기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과 아프리카가 이번에 출범시키는 ‘핵심 광물 대화’는 호혜적 협력을 통해 공급망의 안정을 꾀하면서 전 세계 광물 자원의 지속가능한 개발에도 기여하는 모범 사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과 아프리카 국가들은 경제동반자협정(EPA) 및 무역투자촉진프레임워크(TIPF) 등 양측 사이의 무역장벽을 낮추는 협정도 맺기로 의견을 모았다. EPA와 TIPF는 자유무역협정(FTA)과 큰 틀에서 비슷하다. 다만 EPA는 무역장벽 해소 외 개발 지원, 기술 이전 등의 내용도 담고 있다. TIPF는 FTA 협상이 쉽지 않은 국가들과 공급망 등의 협력이 필요할 때 체결하는 협정이다.

정부는 이날 정상회의를 계기로 대(對)아프리카 정부개발원조(ODA) 규모를 2030년까지 100억달러(약 14조원)로 키우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보다 2배가량 늘리겠다는 뜻이다. 아프리카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을 위한 수출금융 규모도 지난해 43억달러에서 2030년 140억달러로 키운다. ODA 및 수출금융 규모 확대를 통해 한국 기업들의 아프리카 진출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게 정부 전략이다.

인프라 협력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정상들은 선언문에서 “아프리카 내 도로, 철도, 교량, 항만, 공항, 댐, 담수화시설, 전기 등 양질의 인프라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을 강화해 나갈 필요성을 표명한다”며 “한국이 높은 수준의 경쟁력을 보유한 스마트 인프라 분야에서 협력을 다져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밖에 아프리카 청년들의 디지털 교육을 위한 ‘테크 포 아프리카 이니셔티브’를 신설하기로 했다. 한국의 디지털 기술을 아프리카 청년에게 전수하고 관련 청년 기업가를 양성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취지다.

이날 한국과 아프리카 국가들은 모두 46건의 조약 및 협정,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아프리카 전문가인 조원빈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아프리카에서는 중국의 영향력이 워낙 컸지만 일부 국가에서 중국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며 “한국이 이런 상황을 잘 파고들어 아프리카와 관계를 다지고 미래를 내다보는 투자를 한다면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의 개회사를 통해 “함께 만드는 미래가 한·아프리카 협력의 대원칙”이라며 “글로벌 중추국가라는 대한민국의 비전을 실현하는 데 아프리카 국가들은 핵심적인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정상회의 공동 주재자인 엘 가즈아니 모리타니아 대통령은 “한국과 아프리카의 동반자 관계를 더 높은 수준으로 격상해야 한다”며 “한국의 투자자들이 아프리카에 많은 관심을 두기를 희망한다”고 화답했다. 이어진 회의에서 에머슨 음낭가과 짐바브웨 대통령은 “한국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할 준비가 돼 있다”며 “짐바브웨가 보유한 리튬, 철광석, 니켈 등 핵심 광물을 활용한다면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병욱/김종우 기자 dodo@hankyung.com